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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닥터 양혁재 Sep 19. 2023

이토록 선명한 기쁨 앞에서

"술이 문제였어. 평소에는 그렇게 다정하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180도 다른 사람이 되었지. 술에 빠지면, 처자식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어. 나를 그렇게도 아프게 했어. 술이 철전지원수인 걸 알면서도, 좀처럼 끊지 못하는 남편이 어찌나 원망스러웠는지 몰라. 남편을 떠날까도 오래 고민했지만, 자식들이 눈에 밟혀 참아온 게 벌써 십수 년이 흘렀네······."


- 마냥이쁜우리맘 68화 이정숙 어머님과의 대화 中



성실하고 인정 많던 모습에 반해서 백년가약을 맺게 됐지만, 끊이지 않는 남편의 음주로 인해 정숙 어머님은 힘든 시간을 보내셔야 했다. 어려운 형편에 학교에서 급식 일도 하고, 막걸리도 팔고, 떡 방앗간도 하셨던 어머님. 어떻게든 자식들 만큼은 배곯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어머님은 닥치는 대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항상 성실하고 건실했던 어머님의 남편은 술만 마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눈시울을 붉히셨던 어머님. 술을 마시고 돌아온 날이면 손찌검까지 서슴없이 하시던 남편분 때문에 어머님의 삶은 눈물로 얼룩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이야 남편분이 술을 드시지 않기에 그런 일이 없지만, 그 옛날 홀로 모든 그 고통과 짐을 끌어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전전긍긍하셨을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린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술에 잔뜩 취한 남편에 맞서보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맞거나 도망치기 바쁘셨던 어머님. 그럼에도 자식들 때문에 이혼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다시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가셨을 어머님의 뒷모습을 그리니 자꾸만 눈가에 눈물이 맺혀왔다. 


아내를 괴롭힌 것을 알면서도 생전에 단 한 번도 "미안하다"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으셨던 아버님. 그랬던 아버님이 나의 권유와 설득으로 드디어 용기를 내셔서 어머님께 사과를 전하게 되셨다. 그때는 정말 미안했다고, 쉽게 잊히지 않겠지만 앞으로 정말 잘 할 테니 지난날의 과오는 잊어달라고.  생전에 기대하지도 못하고 있던 남편의 진심 어린 사과와 참회에 한참을 우시던 어머님은 끝내 남편분을 안아주셨다. 한 번의 사과로 지난 날의 고통이 씻겨나가진 않겠지만, 그래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은 어머님의 얼굴에는 선명한 기쁨이 피어올랐다. 


이젠 남편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어머님. 의사 아들에게 아픈 무릎을 치료받으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 남편의 손을 잡고 멀리 여행도 다녀오고 싶다는 어머님. 그런 어머님을 위해 나는 정성을 다해 수술에 임했고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수술 후, 회복 중인 어머님을 찾아가서 나는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리고 손을 통해 나의 모든 에너지와 기운을 어머님께 전달해 드렸다. 잘 회복하셔서, 이젠 정말 행복한 일상만 누리며 지내시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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