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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닥터 양혁재 Sep 19. 2023

수많은 상실과 슬픔 그리고 고통을 견디며

"동네에서 으뜸가는 인재였어. 수재라고 불렸지. 당장 끼니 해결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내로라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었을 정도니까. 부모님은 나를 물심 양면으로 지원해 주셨어. 그분들이 보시기에도 내 머리가 비상하다고 생각하셨었나 봐. 고등학교 졸업 후에 난 곧바로 옥천군청으로 발령받아 본격적인 공직 생활을 시작했어. 그러다 군수님 사모님 소개로 남편을 만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지. 참 좋은 시절이었어. 가세는 나날이 기울었지만, 남편과의 사이는 참 좋았거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었어. 그렇게 허망하게 나를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 마냥이쁜우리맘 63화 노성분 어머님과의 대화 中



햇살처럼 따뜻하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졌던 남편과 신접살림을 꾸리게 된 성분 엄마. 언제나 자신만을 바라보며 웃어주는 남편 덕택에 성분 엄마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해오셨다고 했다. 그러나 애지중지 키우던 큰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어머님의 인생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심장 판막 수술 이후, 갑자기 뇌경색이 찾아왔고, 게다가 자궁에 문제가 생겨 수차례 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던 큰 딸. 게다가 희귀병으로 아픈 아들까지. 이런 상황 속에서 남편마저 폐암 판정을 받게 된 후, 어떻게 손쓸 도리도 없이 세상을 떠나버리셨다고 했다. 아버님 이야기를 하는 어머님의 모습에서 깊은 좌절과 슬픔이 묻어났다. 


딸이 사경을 헤매는 상황에서 남편까지 폐암으로 아프니 막막했던 어머님.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국 아버님께서는 혼자 병원을 다니며 치료에 임하셨고, 끝내 세상을 떠나시게 된 것. 그렇게 허망하게 남편을 떠나보낸 어머님은 오랫동안 큰 상실감과 슬픔 그리고 고통 속에 빠져 계셨다고 했다. 


하지만 어머님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공병과 폐지를 모으며 당신보다 더 불우한 이웃을 도왔다. 남편이 곁을 떠나고, 딸과 아들이 아픈 상황 속에서도, 고통과 괴로움에 매몰될 만한 환경 속에서도 어머님은 수많은 상실과 고통 그리고 슬픔을 견디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나서셨다. 


내가 어머님 상황이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어떻게 어머님은 그런 극악의 상황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헌신하실 수 있으셨을까...어머님을 향한 존경이 샘솟던 찰나, 어머님께서는 내게 말씀하셨다. 


"우리 의사 아들도 엄마처럼 그러고 있잖아. 바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매주 지방까지 내려가서 엄마들을 도와주고 있잖아. 진짜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엄마보다 아들이 훨씬 나아. 그러니까 아들 그 마음 변치 말고 계속해서 다른 엄마들 많이 도와줘. 그 엄마들에게는 아들밖에 없을 테니까." 


어머님의 당부에 나는 꼭 그러하겠노라고, 끝까지 어머님들을 돕겠노라고 굳게 약속했다. 나의 맹약에 어머님은 "우리 아들 최고"라고 말씀하시며 엄지손가락을 높게 치켜세우셨다. 그리고 저 하늘의 태양처럼 눈이 부시도록, 활짝 웃어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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