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시도로 향하는 바다 위에서

by 도시 닥터 양혁재

미처 동이 트기도 전에 눈을 떴다. 혹시나 늦잠을 자지는 않을까라는 염려에 알람을 5분 간격으로 여러 개 맞춰뒀다. 절대로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잔뜩 긴장을 하며 잤던 탓인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무사히 일어났다.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용히 발걸음을 움직여 주방에 이르렀다. 피로를 물리쳐줄 냉수 한 잔을 마시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단장을 마쳤다.


유난히 어두운 새벽의 도로를 뚫고, 차를 몰아 대천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마냥이쁜우리맘 주인공 어머님이 살고 계시는 삽시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새벽녘 한적한 도로 위를 달리며 어머님을 생각했다. 어머님은 여태껏 만난 마냥이쁜우리맘 어머님들 중에서도 상태가 심각한 편에 속한다고 전달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생계유지를 위해 갖은 고생을 하셔서일까. 쪼그려 앉지도 못하고 엎드려서 일해야만 할 정도로 무릎 통증이 심하다고 했다. 하루하루 더해지는 통증에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러우실까라는 생각에 나는 오른발에 힘을 주어 속도를 높였다.


삽시도로 도착하자마자, 스태프들과 만나 바로 배에 올랐다. 대천항에서 삽시도까지는 40분이 걸린다고 했다. 다들 멀미가 심한 탓인지, 약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심한 편이 아니기에 먹지 않고 배에 올랐다. 파도가 거셀 것이라 예상했는데, 내가 어머님을 도우러 간다는 것을 바다도 안 것인지 다행히 물결은 잔잔했다.


DSC01202.JPG


잠시 스태프들과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나는 배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생각에 잠겨있는 나를 일깨워주기라도 하는 듯 갈매기가 소리를 내며 위를 배회했다. 배에 오르기 전에 미리 새우깡이라도 사놨으면 좋았을 것을. 어머님을 만나겠다는 생각에 미처 그 부분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손이라도 힘차게 흔들었다. 반갑다고, 나를 맞이해 주어서 고맙다고.


삽시도가 보일 무렵, 나는 그곳을 바라보며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오늘 만나게 될 어머님이 부디 빠르게 건강을 되찾으시어 행복해지셨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비느라 감았던 두 눈을 뜨니 어느덧 배는 삽시도에 도착해 있었다.


DSC01339.JPG


이른 새벽부터 서울에서 분주히 내려온 터라 사실 많이 피곤했다. 하지만 나를 반겨주는 귀자 어머님을 만나니, 피로는 눈 녹듯 사라졌다. 유난히 나를 반가워 해주시던 어머님의 손을 잡고 고즈넉한 집 구경도 하고 언제나 어머님의 곁을 지키는 강아지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무릎 통증이 심하시던 어머니를 의자에 앉혀드리며 쉬시게 하고, 배추 뽑기에 나섰다. 그동안 서른 명이 넘는 마냥이쁜우리맘 어머님들의 일손을 도운 경험이 있어서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지 않았도 척척 배추를 뽑고 다듬을 수 있었다. 의외의 실력에 놀라시는 어머님을 보고 난 활짝 웃어 보였다.


어머님이 부탁하신 여러 가지 일거리들을 해결하고, 함께 나들이에 나섰다. 그동안 무릎이 아파 마음껏 돌아다니지도 못했다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성연 씨와 함께 인근의 바다로 나섰다. 어머님은 행복해 보이셨다. 근심과, 걱정을 모두 내려놓고 아이처럼 즐겁게 웃으셨다. 의사 아들과 배우 딸과의 특별한 하루에 감동의 눈물까지 쏟으신 귀자 어머님. 눈물을 뚝뚝 흘리시는 어머님을 나는 아무말 없이 아들로서 그저 꼭 안아드렸다.


나와 성연 씨가 삽시도에서 떠나야 할 시간이 되니 어머님의 얼굴에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되냐며 눈물을 보이시려는 어머님께 말씀드렸다.


DSC01562.JPG


"어머님, 저희 곧 다시 만날 겁니다."

"제가 있는 병원으로 며칠 뒤에 모실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제야 어머님께서는 다시 웃어 보이셨다. 덕분에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유난히 차가 막혔다.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는 식구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며 일손을 도울 때 묻은 먼지들을 말끔히 털어내고 침대에 누웠다. 잠들기 전 베개에 뺨을 묻으며 귀자 어머님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반드시 어머님을 낫게 해드릴 것이라고. 어머님이 다시 마음껏 걸으실 수 있게 도와드릴 것이라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