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 외래 진료와 회진까지 마치고 병원을 나서는 길. 내일이면 마냥이쁜우리맘 어머님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드리운다. 금요일 밤이라 유난히 막히는 도로,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볼륨을 높인다. 그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도착하면 가족들과 함께 모여 저녁을 멀고 일찍이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이른 새벽부터 우리맘 어머님을 뵙기 위해 일찍이 집을 나서야 하니까.
새벽 3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리면 곧장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한다. 세안으로 피로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어머님을 만나기 위해 차에 오른다. 우리맘 어머님들은 대부분 농어촌, 산간벽지에 거주하고 계시기에 서울에서 한참을 달려야 한다.
새벽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열심히 달리다 보면 우리맘 어머님들이 살고 계시는 마을에 도착한다. 대부분 주차할 곳이 마땅히 없기 때문에 마을 어귀에 차를 두고 어머님 댁까지 걸어서 간다. 이 순간이 가장 설렌다. 어떤 어머님을 만날지, 오늘은 어머님과 함께 어떤 추억을 쌓을지, 내가 아들로서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를 떠올리며 걸어가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대부분 내가 어머님 댁까지 찾아가지만, 간혹 나를 기다리다 못해 직접 맞이하러 나오시는 분들도 있다. 무릎 통증이 심하고, 휘어진 다리로도 어떻게든 집 밖으로 걸어 나와 나를 기다리는 어머님들을 먼발치에서 보기 시작하면 나는 있는 힘껏 달려가 어머님께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따뜻하게 안아드린다. 그때의 어머님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반달처럼 휘어지며 곡선을 그리는 눈, 한껏 올라간 입꼬리. 서울에서 당신을 보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아들이 얼마나 반가우시면 그렇게 웃으실까.
첫인사가 끝나면 어머님들은 7~80대 노인에서 10대 소녀로 돌아가 수줍게 나의 손을 잡으신다. 그리고 나를 집까지 손수 안내해주신다. 앞서가는 어머님을 따라 걷다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특히 다리가 휘어 절뚝이며 걸어가는 어머님들을 보면 때로는 가슴이 미어지기도 하며 동시에 결심한다. 기필코 내가 어머님의 저 무릎을 고쳐드리리라고. 미스코리아처럼 위풍당당하게 곧게 뻗은 다리로 집까지 걸어다니실 수 있게 하리라고.
반 년이 넘도록 마냥이쁜우리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정말 많은 어머님들의 무릎을 고쳐드렸다. 비수술부터 수술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치료법을 이용해서 말이다. 연골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어머님들께는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주사치료나 휜다리교정술을 진행해드렸고, 이미 연골이 모두 소실되어 퇴행성관절염 말기 소견이 보이는 분들께는 인공관절수술을 통해 손상된 무릎 관절을 절삭하고, 특수 금속 소재의 인공관절을 삽입해 다시 건강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도와드렸다.
얼마 전, 인공관절수술을 받고 한 달이 흘러 내원하신 어머님이 계셨다. 처음 찾아뵀을 때는 무릎이 아파 엉금엉금 기어 다니거나, 보행기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었다. 하지만 수술 뒤, 어머님의 무릎 상태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젠 마음껏 길을 걸어다니시기도 하고, 아버님과 함께 동네 마실도 수시로 다니신다며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더욱 빠른 회복을 위해서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며 자신감 넘치게 말씀하시는 어머님을 보며 나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진료실을 나와 엘리베이터까지 어머님을 배웅하고 돌아서는 순간,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의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의 이런 광경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지금의 이런 뿌듯함과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