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슬픔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by 도시 닥터 양혁재

깊어지는 가을의 어느 날, 기영 어머님을 만났다. 처음 만난 날, 어머님은 내게 활짝 웃어 보이셨지만 어딘가 슬퍼 보이셨다.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때때로 허공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어머님이 말씀해주실 때까지 그저 기다렸다. 어머님과 함께 식사를 하고, 일손을 거들고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조금 더 사이가 가까워지자 어머님은 그제야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하셨다.


"아들, 사실은 내가 6개월 전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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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어머님은 반평생을 사랑했던 남편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셨다고 했다. 아버님은 유난히 어머님을 아껴주신 분이라고 했다. 언제나 "사랑한다"라고 말해주셨던 분이라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함께하며 오직 어머님만을 사랑해주셨던 마을에서 소문난 사랑꾼이라고 어머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랬던 남편이 끝내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황망히 떠나고 나니 어머님은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아직 남편의 옷도 치우지 못한 어머님. 남편이 그리울 때면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 옷장에 걸린 아버님들의 옷에 코를 묻으며 그리움을 달래셨다고 했다. 그런 남편이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 가는 것조차도 어머님은 버겁다고 하셨다. 근처에만 가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꼭 혼절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하지만 추석을 맞이해 큰 용기를 내어 납골당으로 발걸음을 옮기셨고, 애써 씩씩하게 남편에게 오랜만에 인사를 전했지만 결국 끝내 주저 앉아 펑펑 우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어머님 옆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는데 나도 결국 어머님이 보시지 못하게 고개를 돌린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님이 떠나고 홀로 지키게 된 기영 어머님은 많이 외로워보이셨다. 그리고 더없이 슬퍼하셨다. 아버님의 흔적이 남은 공간과 물건들을 볼 때마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가서 슬피 우셨다. 늘 슬픔 속에 잠겨있는 어머님께 아들로서 다시 행복을 되찾아드리고 싶었다. 분명 내가 모든 슬픔을 헤아려드릴 수는 없겠지만, 지금 당장 어머님을 곧바로 행복하게 만들어드릴 수는 없겠지만 노력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우선 김밥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재료를 준비해서 옆구리가 터지지 않게 말기 시작했다. 서투른 솜씨였지만, 좋아하실 어머님을 생각하니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소함을 더해줄 참기름까지 쓱쓱 발라 완성한 김밥을 어머님은 조금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드셔주셨다. 입맛이 없다고 하셔서 걱정이었는데 맛있게 드셔주시니 안도감이 들며 긴장이 풀렸다. 그런 나를 보며, 어머님의 손주들이자 일일 조카들인 아이들이 싱긋 웃어 보였다.


그렇게 애써서 준비한 김밥은 석모도 근처의 해수욕장으로 가서 먹었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이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배를 채우고 불멍까지 즐겼다. 그러자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 지금 이 순간을 가슴에 모두 넣고. 평생을 살 것 같아."


어머님은 나와 함께 보낸 1박 2일이 영원히 가슴속에 꼭꼭 담아주고 싶을 만큼 기쁘고 행복하셨나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점 밝아지는 어머님의 얼굴을 보며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을 만큼 행복했다. 정말로.


꿈만 같던, 1박 2일을 보내고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어머님 역시 아픈 무릎을 치료하기 위해 내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으로 오셨다. 어머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상태가 심각하셨다. 연골판은 이미 모두 닳아버렸고, 심지어 뼈에 멍까지 들어있었다. 다리도 상당히 휘어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필요한 검사를 모두 마치고 이튿날 곧바로 인공관절수술에 들어갔다. 대부분 '수술'이라고 하면 겁을 내시는데, 어머님은 의연하셨다. 아들이 해주는 수술이라면 무엇이든 걱정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휘어진 다리도 곧게 펴졌고, 3일 후부터는 곧바로 혼자 걸어다니실 수도 있게 됐다. 수술 후 2달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마냥이쁜우리맘 팀에서 어머님을 직접 찾아뵀는데 경과가 아주 좋다고 한다. 늘 종종걸음으로 다니기 바쁘셨던 어머님이 이제는 똑바로 걸어다니시고 동네 지인분들 그리고 자녀분들과 산책도 하시고 나들이도 자주 나가신다고 하셨다.


의사이자, 아들로서 이렇게 또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겼던 기영 어머님이 모든 슬픔을 딛고 다시금 행복을 되찾으셔서,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참 쉽지는 않지만, 이럴 땐 정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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