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이쁜 우리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내 직업이 의사라는 점이다. 남들과는 다른 '의술'이라는 재주가 있기에 어려운 경제적 여건 탓에 병원에서 치료 한 번 받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어머님들을 치료해 줄 수 있다는 점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우리맘을 통해서 만나는 어머님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 동안 고강도 노동에 시달려오셨던 터라, 무릎 관절 상태가 말이 아니다. 연골이 모두 닳아있는 것은 물론이고 무릎 뼈가 비정상적으로 자라있거나, 서로 맞붙어 아예 파고 들어간 케이스도 부지기수다.
이 정도 단계까지 이르렀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비명을 내지를 정도로 괴로우셨을 텐데, 어머님들은 행여나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병원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는 입 밖에 꺼내시지도 않는다. 그런 어머님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골 읍내 약국에 가서 진통 성분의 연고를 처방받아 듬뿍 발라주는 것뿐.
어느 날은 무릎이 온통 파스로 도배된 우리맘 어머님을 만난 적이 있다. 어머님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셨다. 지팡이나 보행기에 의존한 채 겨우 걸어다니셨고, 통증 탓에 집안 일을 못하시니 거의 집이 폐허 수준이었다. 옷가지도 여기저기 널려있고, 먼지도 뽀얗게 쌓여있었다. 얼마나 아프셨으면, 힘드셨으면 그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셨을까. 그 와중에도 안 그래도 형편이 어려워 근근이 살아가는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어머님은 파스로 간신히 통증을 잠재워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어머님을 만나 뵙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채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파스를 겹겹이 바르면서 당신은 괜찮다며 애써 웃어보시는 어머님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헌신하느라, 정작 당신의 몸은 조금도 돌보지 못하고 오히려 혹사시킨 어머님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 어머님들께 내가 의사로서 적합한 치료를 선물해 드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무릎 연골이 모두 닳아 움직일 때마다 극한의 고통에 시달리던 어머님들께 인공관절수술을 해드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웃으면서 걸어 다니신다. 물론, 인공관절에 완전히 적응하기 전까지 일정 시간이 소요되지만 재활치료를 잘 받으시면 금세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혼자 잘 걸으신다.
퇴행성관절염이 악화돼, 다리가 휘어졌던 한 어머님께서는 수술이 끝나면 꼭 딱 붙는 '백바지'를 입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님의 소원을 드리겠노라고 약속드렸고, 이를 지켰다. 수술 후, 다리가 일자로 곧게 펴진 어머님은 눈부시도록 하얀 바지를 입고 마을을 활보하실 수 있게 되셨으니 말이다. 수술 후 만난 그 어머님께서 아들 때문에 요즘 하루하루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며 말씀하실 때,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가 의사가 아니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어머님들께 건강한 무릎과 다리를
선물해 드릴 수 없었지 않을까.
지금처럼 어머님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힘찬 발걸음을 내디디시는 것을
결코 볼 수 없었지 않을까.
다시 한번 내가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이,
의술이라는 능력을 가진 것이 다행이라고 여기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