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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도착한 편지 한 장

by 도시 닥터 양혁재

"어서 오세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진료실 문이 열리면 나는 늘 같은 마음가짐으로 환자를 맞이한다.

하루 수십 명의 환자를 만나지만, 내 진료는 빨리 끝나지 않는다.

증상을 묻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떤 동작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하나하나 듣다 보면, 진료 시간은 예상보다 길어지기 마련이다.


눈앞에 보이는 관절 통증 너머, 누군가의 삶이 조용히 숨어있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고집 때문에 간호사들은 종종 내 진료실 앞에서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온 환자들의 얼굴엔 약간의 짜증과 지침이 묻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진료가 끝날 즈음이면 대부분의 환자는 진료가 오래 걸리는 이유를 납득하곤 한다.


"아, 이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군요. 고맙습니다."


며칠 전, 외래가 끝날 무렵 병원으로 편지 하나가 도착했다.

"이OO 아버님이 보내신 편지예요."

투박한 하얀 봉투 안에는 하얀 A4용지에 꾹꾹 눌러쓴 편지가 들어있었다.

나이 탓이라며 참고 지내왔던 삶이 다시 시작된 기분이라고.

진료실에서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짧은 편지였지만,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틈날 때마다 책상 위에 놓아둔 편지를 다시 펼쳐 읽는다.

'이런 편지를 정말 받았구나'싶은 생각이 들면서, 조용히 웃음이 난다.


지금도 여전히 진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 시간을 줄이긴 어려울 것 같다.


그 대신, 내가 바라는 것 단 하나.

환자분이 진료실을 나설 때

'오길 잘했다'라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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