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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서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by 도시 닥터 양혁재

정형외과 전문의로 일한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수술방에서 무릎과 어깨를 들여다보는 일은

이제 내 삶에서 가장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처음 흰 가운을 입던 날의 설렘도 반복되는 하루 속에 점점 잊히고 있었다.

그저 주어진 일상을 성실히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 익숙함에 마음 한편이 텅 빈 듯한 기분이 찾아왔다.

그런 내 일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 건 3년 전부터다.

평일 진료와 수술을 마치고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먼 시골 마을로 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지마을, 구불구불한 길 끝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곳엔 병원에 가려면 오랜 기다림 끝에 오는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야 했다.

허리가 굽고, 무릎이 성치 않아 밭일할 때마다 통증을 꾹 참아내야 하는 분들.

그중엔 60대임에도, 무릎 상태는 80대일 만큼 심각하게 망가져 있는 어머님도 계셨다.


나는 그분들을 찾아가 아픈 곳을 살피고, 밭에서 김을 매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시골의 토요일은 따뜻한 정으로 가득했다.


처음엔 그저 의사로서의 '의무감'이 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되려 내가 받는 것이 더 많았다는 걸 느꼈다.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쥐여주는 감자와 옥수수, 마당 끝에서 꺾어온 꽃 한 송이.

그리고 이제는 안 아프다며 기뻐하시던 어머님들의 미소.



지금까지 약 80 여분의 어머님을 만났다.

그분들 중 몇몇은 꾸준히 검진을 받기 위해 먼 길을 오시고,

어김없이 진료실 문을 열며 밝게 웃으신다.


지금은 어머님들이 몰라볼 정도로 좋아지셔서 만나기 쉽지 않지만,

서운하진 않다.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일 테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여전히 바쁘고 지친 날들이 많다.

그럴 때 스트레칭하며 진료실에 걸려있는 우리 맘들과의 가족사진을 바라본다.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날의 추억에 빠지며

너무 익숙해서, 너무 바빠서 놓치고 있었던 감사한 마음들이

조용히 내 안에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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