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는 가늠할 수도 없는 어머니삶의 무게

by 도시 닥터 양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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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쏟아지던 어느 날, 연녀 어머님을 만났다. 어머님은 유난히 미소가 아름다운 분이었다. 나를 만나자마자 서울에서 귀한 의사 아들이 여기까지 와주었다며 활짝 웃어보이셨다. 계속 잇몸이 보이도록 활짝 웃으시는 연녀 어머님은 사실 8년 째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간호하고 계셨다.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자부했던 연녀 어머님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한다. 손쓸 도리도 없이 팔과 다리에 마비가 찾아오기 시작했고, 다급하게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침대를 벗어나실 수 없었단다. 어머님은 어떻게든 남편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전국 방방곡곡의 병원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유명한 병원들을 헤매고 다녔던 어머님. 그러나 어머님의 노력에도 아버님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실 수 없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어머님은 본격적인 병간호에 뛰어드셨다고 했다. 사실 간병인을 쓸 수도 있는데, 자식들한테 의지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어머님은 한사코 본인이 하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고 했다. 다른 사람 손을 빌리게 되면 분명 당신의 남편이 불편함을 느낄 테니까. 게다가 젊은 시절, 크게 아팠던 자신을 남편이 업어서 병원을 뛰어다니면서까지 치료해 준 고마움을 생각하면 자신이 전적으로 나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렇게 어머님은 세안부터, 식사 용변 보는 것까지 살뜰히 챙기며 아버님의 손과 발이 되셨다고 한다.


24시간 동안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남편을 돌봐야만 하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연녀 엄마는 자식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돼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단다. 실제로 직접 어머님을 만나보니 과연 그러했다. 아픈 무릎으로도 밭을 관리하셨고, 또 뒷산에 올라 화목보일러에 넣을 땔감까지 직접 구해오셨다.

간병부터, 살림, 그리고 농사일까지...어머님의 어깨는 내가 여태껏 마냥이쁜우리맘을 통해 만난 어머님들 중에서 가장 무거워 보였다. 밥 먹는 것조차 혼자 할 수 없는 남편을 살뜰히 챙기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기 위해 농사까지 직접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어머님을 옆에서 바라보며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고단하셨을까. 당신의 위한 시간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삶. 늘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남편을 두고는 마을 회관도 마음 편히 갈 수 없는 삶. 그런 삶을 엄마는 한마디 불평도 없이, 자식들에게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없이 묵묵히 살아오셨다. 누군가는 여자로서, 아내로서 가장 어려운 조건 속에 놓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에도 어머님은 그저 울기보다는 웃으며 즐겁게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오롯이 감당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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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머님께 내가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참 고민을 많이 했다. 아픈 무릎을 고쳐드리는 것이야 얼마든지 나의 의술로 해드리면 되지만, 우선 그전에 어머님의 마음부터 살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내어 어머님과 대화를 나눴다. 또 성연 씨와 함께 어머님이 습관적 웃음이 아닌,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웃으실 수 있도록 재롱잔치도 열었다. 신명나는 트로트 가락에 맞추어 잠시 나이를 잊고 몸을 흔들었다. 막춤이면 어떠한가. 어머님이 웃으실 수 있다면 나는 더한 춤도 출 수 있었다.


덕분에 어머님도 아이처럼 즐겁게 웃으셨다. 누워계시던 아버님도 마찬가지였다. 하얀 눈 속에서 노니는 의사 아들과 배우 딸의 모습을 보시며 손뼉을 치셨다. 어머님은 물론, 아버님도 잠시라도 통증을 잊고 마음껏 웃으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춤을 추었는데 결국 두 분을 모두 웃게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얀 눈길 위에 선명히 찍힌 발자국을 따라 다시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어머님은 아들과 딸이 떠나간다며 많이 우셨다. 난 그런 어머님을 보며 말씀드렸다. 우린 곧 다시 병원에서 볼 테니 걱정하시지 마시라고. 의사 아들보러 얼른 서울에 오시라고. 이 의사 아들이 다시 어머님을 반갑게 맞이해드릴 테니 걱정 말고 편안하게 여행 간다 생각하시고 놀러 오시라고. 그러자 어머님은 눈물을 거두시고 다시 배시시 웃으셨다. 덕분에 유난히 무거웠던 발걸음을 한결 가벼이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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