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운이 완연할 때면, 어머님도 부디 다시 웃으시길

by 도시 닥터 양혁재

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때문에 전국에 계신 마냥이쁜우리맘 주인공 어머님들을 만나러 갈 때면, 이른 새벽부터 매서운 추위와 싸워야만 했다. 아무리 두꺼운 패딩을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챙겨도 소용없을 정도로 심한 추위 탓에 괴로운 순간도 많았다.


그렇게도 나를 괴롭혔던 겨울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이젠 얇은 코트만 입고 진료실을 나서도 될 정도로 날씨가 많이 풀렸다. 어딘가로 딱 나들이 가기에도 안성맞춤인 이 시기에 나는 이른 새벽부터 어둠을 뚫고 한참을 달려 전남 장흥군에 다녀왔다. 마냥이쁜우리맘의 주인공, 순자 어머님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서울에서 장흥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4시간여를 넘게 달려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출발했으나, 차도 어찌나 막히던지. 순자 어머님과 약속한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봐 나는 오른쪽 발에 힘을 주어 속도를 더욱 높였다. 다행히 막히는 구간을 통과하니, 길이 뻥 뚫렸고 덕분에 늦지 않고 장흥에 도착해 성연 씨와 함께 어머님을 만나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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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어머님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내 앞에는 순자 어머님 내외를 기다리고 있는 4~50마리의 소들이 축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600평에 육박하는 대형 축사를 관리하는 순자 어머님 부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가세가 기울게 되면서 어머님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고단한 시절을 보내셨다고 했다.


시아버지와 시동생 둘, 그리고 갓 태어난 아들 둘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던 아버님은 원양어선을 타고 3년간 거친 바다 위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고 하셨다. 아버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어머님은 집안 살림을 도맡는 것은 물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셨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시는데, 그 절절한 사연에 내 눈가에도 어느덧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보내는 동안 어머님의 몸은 많이 망가지고 말았다. 어깨부터, 무릎, 그리고 허리까지. 좀처럼 멀쩡한 곳이 없어 하루하루가 괴롭다는 어머님. 그러나 넉넉지 못한 형편 탓에 큰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 자녀들에게 의존하려고 해도 다들 딸린 자식들이 많아 먹고 살기 바쁘기에 어머님은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혼자 방에 들어가 숨죽여 참아내셨다고 한다. 그 불편한 몸으로도 어머님은 밤낮 할 것 없이 축사로 나와 소들을 살피고, 농사일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단다.


살면서 쉬어본 적이 없다는 순자 어머님. '쉼'이라는 단어조차 모르고 살아온 고단한 인생의 주인공, 순자 어머님을 위해 나는 일을 거들고자 옷을 갈아입었다. 축사에 들어가 잔뜩 놓인 분뇨들도 깔끔하게 치워내고, 여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령의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찾아 성연 씨와 함께 힘을 합쳐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해 나갔다.


축사 일이 끝나자 밭에 가서 잡초를 뽑고 양배추 수확도 거들었다. 양배추가 꽤 무게가 나가서 순자 어머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하셨었는데, 나와 성연 씨가 가세하니 이 역시 금방 끝마칠 수 있었다.


한바탕 일손 돕기가 끝나고 어머님의 몸 상태를 살펴드렸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어머님의 상태는 훨씬 더 심각했다. 통증도 심한 상태였고, 다리도 제법 휘어있었다. 잠시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고, 심한 어깨통증도 동반되는 상황이었다. 치료가 시급했다. 우선 육안으로 파악한 것을 기반으로 대략적인 치료 계획을 말씀드리니 어머님은 치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셨다. 혹시나 수술을 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크게 염려하셨다.


그런 어머님을 안심시켜드리며 나는 약속드렸다. 비수술이든, 수술이든,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봄이 완연해질 무렵에는 어머님을 다시 젊은 시절처럼 자유롭게 걷게 해드리겠다고. 이젠 통증 없이 편안하게 일도 하시고, 놀러도 다니시고, 손주들과 함께 여행도 다녀오실 수 있게 해드리겠다고. 의사 아들의 굳은 약속에 어머님은 다시 두려움을 거두시고 배시시 웃어 보이셨다. 성연 씨와 함께 어머님의 집을 떠날 때도 나는 다시 한 번 약속드렸다.


"어머님, 봄에는 꽃구경 다니실 수 있도록 제가 꼭 잘 치료해 드릴게요."


떠나가는 나를 향해 어머니는 환하게 웃어 보이시며, 곧 병원에서 만나자며 소리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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