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배가 고픈지도 모를 정도로 바쁜 이 시기.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에 피로를 흘려보내고 침대 위에 누우면 보통 그대로 잠들어 버린다. 하루를 차분하게 정리할 틈도 없이, 금세 잠들어 버리고 마는, 그만큼 피곤한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의 연속이지만, 어제는 퇴근 이후 잠시 시간을 내어 마냥이쁜우리맘 어머님들과의 추억을 찬찬히 되돌아봤다. 핸드폰에 가득 담긴 사진들을 일일이 넘겨보며 말이다.
내 핸드폰에는 어머님들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마냥이쁜우리맘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인공 옥선 어머님부터 가장 최근에 고창에서 만났던 수정 어머님까지. 어머님들과의 한때가 모두 그대로 남아있다.
수 천장에 가까운 사진들을 일일이 하나하나 넘겨보며 나는 한참 동안이나 어머님들과 함께한 그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졌음에도 나는 쉬이 그 추억이 주는 잔잔한 울림과 감동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수 천장에 육박하는 사진들 가운데,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것은 보령 삽시도에서 만난 귀자 어머님과의 사진이었다. 초겨울 바람이 불어오는 바닷가에서 성연 씨 그리고 귀자 어머님과 나란히 찍은 바로 이 사진을 보며 나는 어쩐지 마음이 슬퍼졌다.
귀자 어머님의 사연은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참 안타까웠다. 그토록 사랑했지만 끝내 변심한 남편 탓에 홀로 자녀들을 키워내야 했던 어머님. 어떻게든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식당일을 시작해, 지금껏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는 어머님. 육지에서의 생활이 녹록지 않게 되자, 결국 삽시도로 들어와 바닷일을 하며 또 다시 가족들을 책임지게 된 귀자 어머님의 상황이 다시 한번 상기됐다. 홀로 외롭게 모진 세월을 견뎌내며, 좀처럼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살아온 어머님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특히 무릎은 연골이 거의 닳았고, 어머님께서는 홀로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하셨다.
황급히 병원으로 오시게 해 검사를 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연골이 모두 소실된 상태였다. 심지어 무릎 뼈가 변형돼 옆으로 자라서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다리의 변형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일상생활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버린 어머님의 상태에 나도 깜짝 놀라, 최대한 빠른 날로 일정을 잡아 인공관절수술을 진행했다.정말 혼신의 힘을 다한 수술이었다. 온 몸의 신경을 집중해 임한 결과,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다시 만난 귀자 어머님께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앞으로는 운동이 관건이라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끝났지만, 어머님이 운동을 열심히 하셔야 다시 예전처럼 걷고, 일도 하실 수 있다고. 호탕하신 어머님은 웃으시며 나의 말에 동의하셨고, 과연 수술 후 한 달이 지나서 만났을 때 놀라울 만큼 무릎 상태가 좋아진 것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동안 정말 사력을 다해서 재활과 운동에 임하셨다는 귀자 어머님. 일상생활 속에서도 항상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며, 아무리 힘들어도 아들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어머님의 손을 나는 따뜻하게 잡아드렸다.
이제는 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직접 두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훨씬 자신 있다는 어머님.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맘 어머님께 "수술 잘 받고 운동 열심히 하시면 저처럼 이렇게 잘 걸을 수 있어요"라며 용기까지 불어넣어 주신 귀자 어머님. 늦은 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귀자 어머님을 떠올리며, 나는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닷가에서의 단란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며 어머님의 기구한 삶에 가졌던 큰 슬픔을 거두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다니시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시는 어머님이 앞으로 더 행복하시길 바라는 염원만을 사진 속에 가득 담았다.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귀자 어머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다시 어머님을 마주하게 되면 꼭 말씀드리고 싶다.
의사 아들은 언제나 당신만을 응원한다고.
그러니까 이제 슬픔으로 얼룩진 과거는 모두 날려 보내시고,
그저 행복한 미래만 바라보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