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신비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by 도시 닥터 양혁재

어제는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수술이 빨리 끝나, 빠른 퇴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오후 8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아내가 저녁을 준비할 동안 샤워를 했다. 쏟아지는 뜨거운 물에 잠시 몸을 맡기고, 켜켜이 쌓인 피로를 털어냈다. 개운하게 씻고 나오니, 식탁 위에는 아내가 직접 차려낸 맛있든 음식들이 열지어 놓여있었다. 대충 몸에 묻은 물기만 털어내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밥과 구수한 맛이 일품인 된장 찌개. 그리고 아내가 나를 생각하며 공들어 만든 밑반찬까지. 눈 깜짝할 새,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냈다. 잔뜩 부풀어 오른 배를 부여잡고, 잠시 거실 소파에 앉아 마냥이쁜우리맘 재방송을 보다가 침대로 향했다.


봄을 맞아 아내가 준비해 준 차렵 이불을 덮고 누웠다. 피곤했던 나는 곧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다가 이런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걷고 있었다. 100m쯤 홀로 걸었을까, 어디에선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 나는 한참을 더 길을 걸어들어갔다. 그러자, 난데없이 커다란 정자가 등장했다. 마을 어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정자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신발을 벗고 정자 위에 올라서니 갑자기 한 무리의 어머님들이 등장했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리는 내게 꽃무늬 점퍼를 입은 어떤 어머님이 물으셨다.


"그래, 자네가 양혁재라고?"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 만난 어머님이 내 이름을 알다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머님을 올려다보니, 그분께서는 한참을 웃기만 하셨다. 어찌나 화통하게 웃으시던지.


그러자 또 다른 어머님이 내 앞에 다가오시더니 말씀하셨다.


"아니, 정말 내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깜짝 놀라 어머님을 쳐다봤다. 하지만 내가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던 분이었다. 선뜻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머님께서는 언젠가 당신의 무릎을 내가 치료해주었다고, 그리하여 지금 이렇게 천국에서도 잘 걸어다닐 수 있다고, 집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닌, 동네 친구들과 정자에 앉아 이렇게 고스톱도 치고, 관광 버스를 타고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됐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내가 꿈 속에서 안개를 해치고 도착한 곳은 천국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언젠가 내가 치료해드릴 어머님들을 만난 것이고. 꿈속에서 나름대로 상황을 정리하고 있을 때, 보라색 가디건을 입은 또다른 어머님께서 등장하셔서 내게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를 건네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아들, 그때 진짜 고마웠어. 이거 내가 주는 선물이야. 아들은 이 거북이보다 더 오래 살아야 해. 100년으로는 부족해, 200년이 좋겠어. 200년 동안 살면서, 나처럼 아픈 할머니들 많이 치료해줘. 꼭 그래야 해. 그게 내가 이 거북이를 아들에게 선물하는 이유야.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키우면서 내 말을 꼭 기억해."


그 어머님께서 건네주신 거북이가 내 품안에 닿았을 때, 나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가슴팍을 더듬었다. 거북이는 없었다. 아내가 준비해 준 차렵 이불이 덮혀져 있을 뿐이었다.


잠을 깨려 마른 세수를 하고 시계를 쳐다봤다. 새벽 4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를 벗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컵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 마셨다. 물 한 잔에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방금 꾼 꿈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거북이를 주신 어머님이라니, 그리고 천국이라...

한 번도 뵌 적 없는 어머님들인데, 모두들 내게 치료를 받으셨다니...


참으로 신비로운 꿈이다. 꿈은 금방 잊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이토록 신묘한 꿈을 그저 나 혼자 알기에는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바쁜 시간을 쪼개어 글로 남겨 본다.


언젠가 다시 또 이 꿈을 꾸게 된다면,

그땐 어머님들께 더 자세하게 묻고 싶다.


그리고 내 품에 안겼던 '장수'를 상징하는

그 거북이의 행방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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