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에서 만났던 옥수 어머님의 다리를 보고, 나는 좀처럼 얼굴에서 슬픈 기색을 지울 수가 없었다.
50대에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큰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 어머님은 차체에 다리가 깔리셨다고 했다. 간신히 피부 이식을 해서 다리가 완전히 망가지는 불상사는 막았지만, 한눈에 봐도 그때의 사고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겨우 뼈밖에 남지 않은 어머님의 다리를 보고, 성연 씨는 그만 눈물샘이 터져버렸고, 나 역시 깊이 슬퍼할 밖에 없었다. 나까지 울어버리면, 어머님께서 더 속상하실까 봐,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다.
한눈에 봐도 깊은 상처로 가득한 어머님의 다리. 어머님께서는 그렇게 아픈 다리로 생계를 위해 작은 나물 가게를 꾸려가고 계셨다. 날마다 아픈 다리로 산에 올라, 효험이 있기로 알려진 각종 나물과 나무들을 구해오신다고 했다. 불편한 다리로 산에 오르는 어머님의 뒷모습에서, 나는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당신의 아픔보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들과 또 손주를 먹여살리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에 오르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도무지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장 믿고 의지하던 큰 딸을 잃고, 남편마저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낸 후, 옥수 어머님은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고 했다. 하지만 남은 자녀들을 살펴야 했기에 다시 힘을 내셨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결국 큰 아들마저 뇌출혈로 쓰러져 자신을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고에 어머님은 더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셨다.
허나 어머님께서는 웃음을 잃지 않으시려 노력했다. 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당신이라도 웃어야 한다며, 슬픔이 진하게 베인 미소를 지어보이시는 어머님을 보며 자꾸만 가슴이 미어졌다.
촬영이 끝난 후에도 나는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카메라의 불이 꺼진 후에도, 나는 어머님의 옆에 앉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손을 잡아드렸다. 나의 온기가, 나의 마음이, 나의 바람이 어머님께 고스란히 전달되어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얼마 뒤, 나는 어머님을 병원으로 모셨다. 이식된 피부가 워낙 약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수술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 신경이나 혈관을 건드리지 않고 무사히 종료됐고, 어머님께서도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으시면서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수술이 끝나고 이틀 뒤, 어머님 홀로 일어서서 걸으시면서 얼마나 밝게 웃으시던지. 슬픔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이처럼 해맑은 어머님의 웃음에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 순간, 옥수 어머님의 행복한 모습을 영원토록 기억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