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을 치료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일정이 빠듯하니, 사실 살림에는 크게 손대지 못했었다. 아내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늦은 밤까지 수술을 하고 자정이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돌아오는 일상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니까. 대신 설거지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 턱없이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으나, 그렇게라도 아내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아무리 늦은 밤에 귀가하더라도 졸음을 쫓아가며 고무장갑을 꼈다. 그렇게 자칭 '설거지 박사'에 등극하게 됐다. 아무리 기름때가 많은 그릇이라고 해도, 나의 손을 거치면 금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깨끗해졌다.
하지만, 마냥이쁜우리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설거지 박사'라는 타이틀로는 어머님들의 일손을 덜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밭에서 채소를 수확해, 그걸로 내가 요리도 직접해야 했고, 무릎이 아픈 어머님을 위해 빨래도 대신해야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수명을 다한 전구도 내가 직접 갈아드려야 했고, 곳곳의 먼지들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고장 난 세면대를 교체하는 일까지 모두 내가 해야했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서툴러, 어머님들을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나물과 잡초를 구분하지 못해, 엉뚱한 것을 뽑은 적도 있고 요리를 하다가 홀라당 태워먹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실패해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하고, 또 틈틈이 아내에게 살림 팁을 전수받기도 하면서 우리맘을 시작한 지 거의 1년 만에 살림 박사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이제는 빨래든, 설거지든, 청소든, 무엇이든지 다 잘할 수 있게 됐다. 어머님들도 나를 '살림 박사'라고 치켜세워 주실 정도다. 주부 9단인 성연 씨도 내게 어쩜 이렇게 살림을 잘 하냐며 칭찬해 주기 바쁘다. 역시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여전히 부족한 것도 많지만, 특히 요리는 아직 미숙한 부분이 없잖아 있지만 이마저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언젠가 어머님들께 잡채며, 갈비며, 팔보채와 같은 잔치 음식을 뚝딱 만들어서 대접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