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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을 사냥하는 사나이

by 무긴이

분명 큰 키라 할 수 있다. 남들은 뒤꿈치를 바짝 올려야 닿는 선반을 그는 땅에 발이 붙어 있는 채로 편안하게 접시를 꺼낸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매서운 인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서로를 보며 웃으며 대화할 때, 그와 대화하는 사람들은 협박당하는 사람처럼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퍽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인다. 대화를 할 때면 항상 담배를 물고, 연기를 눈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뱉어댄다.

그가 그렇게 무례한 이유는 아마도 거친 인생을 지나왔기 때문이리라. 그는 사냥꾼이다. 무엇이든 사냥하는 사냥꾼. 아, 정정이 필요하다. 그는 무엇이든 사냥하지만 동물은 사냥하지 않는다.-다시 정리하면 동물 빼고 무엇이든 사냥하는 사냥꾼이다.- 그는 매서운 인상과 다르게 가는 눈을 가지고 있다. 얇은 선 같은 두 눈 깊은 곳에선 보는 것과 다르게 날카로운 시선이 뿜어져 나온다. 진정한 사냥꾼의 눈빛 같은 것이랄까나.


“유기체를 사냥하는 것은 시시할 뿐이야.”


언젠가 그에게 동물을 사냥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들었던 답이다. 내가 알고 있는-유명인, 위인 등 실제로 만난 사이가 아니더라도-사람 중에 가장 터프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리고 말할 것이다. 그는 대체로 시간성과 관련 있는 것들을 사냥한다. 예를 들면 오늘보다 따뜻하지만 먼지 가득했던 어제라든가, 누군가의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이기적인 본심이라든가, 구름이 둥실 떠있는 화창한 하늘에 어울리지 않는 슬픈 이별이라든가 말이다. 그의 사냥법은 맹수보다는 파리지옥에 가깝다. 표적을 향해 달려가 쟁취하는 것이 아닌, 표적이 자신의 앞을 지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어느 날은 그에게 사냥의 이유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담배 연기를 내 얼굴에 수차례 내뱉고 불을 발로 비벼 끄고는 그것들을 비싼 값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것들을 비싼 값에 산다? 그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부자들이 정말 많다고 말하며 연기를 내 얼굴에 내뱉었다. 나는 연기가 섞인 탁한 공기에 호흡이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올려 깨끗한 공기 방울을 찾았다. 탁한 공기, 푸른 하늘, 그 위를 새 한 마리가 지나고 있다. 그 새는 담배 연기에도, 사냥 표적에서도 자유로워 보였다. 새가 머리 위를 지나 하나의 점이 되어갈 때, 문득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혹시 꿈이란 것이 있습니까?”

“꿈이라”

“예를 들면 세계 최고의 사냥꾼이 된다든가”

“으흠”

“이후에 하고 싶은 일이라든가 말이죠.”

“하나가 있는 거 같군.” 그가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 말이야. 꼭 사냥하고 싶은 것이 있어.”

“오, 그게 무엇이죠?”

“노을.”


노을이라. 그것을 사냥할 수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지만, 그가 사냥을 못하고 있는 존재가-동물은 안 하는 것이라 했으니-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는 질문에 답을 하고는 담배에 다시 불을 붙여 먼 하늘을 응시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허공으로 가득한 겨울 하늘이었다. 그런 허공에 담배 연기가 구름을 대신했다.


“노을은 굉장히 재빠르거든” 그가 말했다. “심지어 낮은 회색 구름 뒤에 숨어서 눈 깜짝할 새 지나가기도 해.”

“왜 노을을 사냥하고 싶어요?”

“왜라니, 노을이라고, 노을. 너는 노을이 무엇인지 모르는 건가?”

“그럴 리가요.”

“노을은 그림자를 길게 만들잖나.”


나는 당최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이, 노을을 사냥하는 것이, 그런 걸 비싼 값에 사는 사람들이, 담배 연기를 계속 내 얼굴에 내뱉는 것이, 그 무엇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든 말든 그는 세 번째 담배를 끄고는 옆에 있던 스포츠 백에서 짧고 굵은 엽총을 꺼냈다. 무거워 보이는 총을 어깨에 메고는 아무 말 없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지평선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여전히 하늘엔 허공이 가득했고, 떠있는 구름이라고는 담배 연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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