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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수련원에서

어린 시절 겪은 기이한 이야기

by 무긴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수련회에서 겪은 일입니다. 당시 저희는 청학동이라는 곳으로 수련회를 갔었습니다. 그곳은 산으로 둘러 쌓인 외진 곳이었습니다. 숙소도 콘도나 리조트가 아닌 오두막 집으로, 한 채에 두 반 아이들이 함께 생활을 했었죠. 남자 동과 여자 동이 나누어져 있어서, 제가 있던 오두막집 숙소에는 저희 반과 앞 반 남자 애들이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오두막집은 1층과 2층으로 되어 있고, 창문이 많았습니다. 1층에 밖이 시원하게 다 보이는 통 창이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큰 창문 있었습니다. 그리고 숙소 곳곳에 작은 창문들이 많아서 낮에는 햇살이 들어오는 온기가 느껴지는 자연 친화적 분위기의 숙소였죠.


저희 반은 숙소의 2층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때 남자아이들이라면 뭐든지 2층을 선택하려 합니다. 2층 침대가 있으면 무조건 2층을 사용하려는 것처럼요. 저희도 다르지 않았죠. 저희 앞 반과 2층 사용권을 가지고 소소한 언쟁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저희 반엔 학교에서 콧바람 좀 뀌는 친구(이하 짱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나서서 몇 마디 내뱉자 짧은 언쟁은 자연스럽게 종결되었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2층에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사건은 수련회 2일 차에 발생하였습니다. 그날은 오전과 오후에 작은 운동회와 산악 체험 같은 몸을 쓰는 프로그램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저를 포함한 저희 반 아이들은 방에 모두 뻗었죠. 오늘은 일찍 잠에 들자는 여론이 형성이 되었고, 짱 친구의 의견도 동일했습니다. 저희는 순서대로 빠르게 씻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한창 잠에 들려고 할 때 아래층에서 비명이 들렸습니다. 저희는 잠에서 깼고 저희 중 친구 한 명이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상황을 살폈습니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아래층에 있는 다른 반 아이들이 창문 밖에 검은 물체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정확히는 사람 손이 자신들을 향해 흔드는 실루엣을 보았다는 것이죠. 1층으로 내려간 친구는 용감하게도 바로 그 창문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곳엔 기다란 나뭇가지만 있을 뿐이었죠. 아무래도 아래층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나뭇가지를 잘못 본 것 같았습니다. 친구는 아이들에게 겁쟁이라 놀리며 주의를 주었고, 그렇게 시시한 해프닝으로 끝이 났습니다. 아니, 그렇게 끝나는 듯했습니다.


늦은 새벽, 아래층에서 다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희는 잠에서 깼습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주변을 보니 아이들 모두 기분이 언짢아 보였습니다. 특히 짱 친구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했죠. 저희들은 방에서 나왔습니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들어보니, 아무래도 배게 싸움 같은 것을 하는 듯했습니다. 짱 친구의 표정은 더욱 일그러졌죠. 그 친구는 저를 불러 아래층에 함께 내려가서 주의를 주자고 했습니다. -짱 친구는 이상하게 저와 함께 하는 것을 좋아라 했습니다.- 저 또한 짜증이 났었던 터라 함께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짱 친구와 저는 아래층에 내려가기 위해 계단에 섰습니다. 계단은 층계를 내려가면 중간에 코너가 있고, 코너를 돌아 내려가야 하는 구조였죠. 그리고 계단 중간층 벽 위에는 커다란 창문이 달려 있었습니다. 계단 앞에 서면 정면에 창문이 보였죠. 그 창문은 해가 있는 시간에는 초록의 나무들과 산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지만, 해가 지면 새까만 거울이 되었습니다. 창문 너머에는 약간의 빛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짱 친구와 저는 계단 앞에 서서 정면에 있는 거울 같은 창문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둘은 동시에 각 자의 반대 방향으로 튀어 올랐습니다.


짱 친구와 저는 창문에서 아주 기이한 모습을 동시에 목격했습니다. 그 모습은 절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죠. 그렇게 저희 둘은 너무 놀라 튕겨져 나가 듯이 몸을 날렸습니다. 저희는 각자 반대 방향의 벽 모서리에 웅크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았던 아이들은 저희 주위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아까 아래층에 내려가 창문을 용감하게 보았던 친구가 다시 나섰습니다. 우선은 저와 짱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고 판단한 그 친구의 똑똑한 판단이었죠.

저희 둘의 모두 들은 친구는 선생님에게 호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인터폰을 들어 선생님과 수련회 조교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저희끼리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도대체 그 친구는 어떤 이야기를 들었길래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요.


저의 시선으로 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짱 친구와 함께 아래층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려고 계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면을 보았죠. 거울 같은 큰 창문을 마주하게 되었죠. 그 안엔 당연히 저와 짱 친구의 모습이 비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창문에 비친 건 이해하기 어려운 기묘한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제 모습이 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당시 편한 반팔 티에 반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창문 안에는 짧은 머리스타일에 하얀 피부를 하고 있는 정체 모를 여성이 서있었습니다. 그녀는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키는 저보다 약간 더 커 보였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 함께 있던 짱 친구의 모습도 다른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모습을 보았던 시간이 찰나였기 때문에 자세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이었던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확실한 건 짱 친구의 모습이 아닌 검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와 친구 사이에 다른 존재가 보였다는 것입니다. 하얀 소복 같은 것을 입은 여자 아이였는데, 키는 5살 정도 아이만 했습니다. 그 아이는 제 손-정확히는 제 위치에 있는 정체 모를 여성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제 손을 잡고 있었지만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왼쪽 눈은 구멍이 뚫린 듯 까맿습니다.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는 그 모습을 목격하였고 두려움에 몸을 피한 것이었습니다.

짱 친구가 본 것은 이러했습니다. 그 친구는 사실 워낙 겁이 많아서 자신이 보았던 많은 부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공포심에 더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죠. 아무튼 짱 친구가 말했던 내용의 핵심은 바로 의문의 여자 아이였습니다. 계단 앞에 서서 창문을 보았고, 창문에는 자신과 제가 있었고, 저희 둘 사이에 꼬마 아이가 서있었습니다. 짱 친구는 여자 아이와 마주쳤다고 했습니다. 짱 친구가 설명한 여자 아이의 형상은 머리카락이 땅에 닿을 정도까지 길었고, 발은 땅에 닿지 않았으며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왼쪽 눈이 구멍일 뚫린 것처럼 까맿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친구는 선생님을 호출하였고, 새벽에 선생님과 조교님이 달려오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어른들이 저희 얘기를 모두 들었고, 창문도 재차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무엇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저희들이 피곤한 상태에 헛것을 보았다고 판단했고-사실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방이 아닌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오지 않는 잠을 청했고, 1층 거실에는 담당 조교님이 함께 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한 밤의 소동은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공포심으로 가득했던 저희는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잠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피곤했던 것도 있었지만, 아래층에 조교님이 함께라는 사실이 두려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한두 명씩 잠에 빠졌고, 가장 두려움에 떨었던 짱 친구도 곤히 잠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잠에 들지 못했죠. 단순히 무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께름칙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전부터 보편적이지 않는 형상들을 목격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나가다가 옆 벤치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주변 시야로 보고, 고개를 돌려 다시 그곳을 보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니면, 가끔은 제가 있는 공간 특정 부분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 들면, 그곳에 푸르스름한 연기 같은 형상이 보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푸르스름하다는 표현은 파란색은 아니고, 그런 기분이 드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바로 이 부분이 너무도 거슬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 이상한 형상을 볼 때면 뚜렷한 형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창문에 비친 형상은 이전까지와 다른 명확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장을 입은 남자와 흰 티와 청바지를 입은 여자, 그리고 흰 소복을 입인 왼쪽 눈이 없는 여자 아이. 그리고 그들이 아직 이곳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마주하고 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그들은 이곳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의문에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맨 발로 나무 장판을 밟는 소리였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점차 커지고 명확해졌습니다. 그 발걸음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아주 조심히 발걸음 내딛는 것 같았습니다. 아래층 거실에 있던 조교님이 저희들의 상태를 살피러 올라오는 것이라 생각했죠. 그러나 발소리는 계속 들렸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슬슬 2층에 올라올 때가 되었는데, 계속 계단 쪽에서만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마치 1층과 2층 사이를 반복해서 오르고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제 궁금증은 계단을 향해 있는데, 시선은 그쪽을 향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도 발소리는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뚜벅, 뚜벅, 뚜벅.

저는 이곳에서 조교님을 소리쳐 부를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랬다간 조교님에게 혼날 것 같았습니다. 조교님이 일어나 2층으로 올라오면 저 발소리는 사라지고 저만 잠자지 않고 장난치는 아이만 될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거든요. 발소리는 점점 더 또렷하게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웠습니다. 저 발걸음의 존재가 제가 잠에 들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주변 친구들을 깨우기 위해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아이들은 기절한 것처럼 모두 일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공포심은 더 커졌습니다. 호흡은 더 빨라지고 거칠어졌습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죠.

갑자기 발소리가 멈췄습니다. 갑작스럽게 뚝 끊겼습니다. 저는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기묘한 이 현상이 끝났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두려움에 절대 잠들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상체를 일으키고 계단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그곳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구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누우려고 하던 찰나, 갑자기 빠르고 강한 발걸음으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다다다다다 다닥. 순간 저는 너무 놀라 재빠르게 누워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누군가 2층에 올라왔습니다. 누군가는 2층에 올라와 코로 거친 호흡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조교님 같았습니다. 조교님은 느리게 저희가 자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지막이 “장난치지 마. 얘들아. 얼른 자. 더 이상 장난치면 혼나.” 혼잣말을 했습니다. 조교님은 짧은 한숨을 쉬고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마도 조교님도 계단에서 나는 의문의 발소리를 들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수련회 마지막 날이 되었고, 그 사건 이후로는 다행히 별일 없이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저희는 버스에 짐을 싣고 있었죠. 호랑이 같았던 조교님들도 마지막 날엔 약간은 상냥해졌습니다. 짐을 옮기는 것도 도와주고, 따뜻하게 말도 걸어주고, 앞으로 학교로 돌아가서 건강하라는 등의 덕담들도 해 주더군요. 저희 반을 담당했던 무표정했던 조교님도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무표정 조교님은 제게도 다가와 말을 건네었습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으나 조금은 망설이는 모습으로 말이죠.


“사실은 말이야…” 조교님이 말해 준 내용은 충격이었습니다.


여기 청학동 수련원은 학교 수련회 시즌이 아닌 평소에는 일반인 예약을 받아 운영된다고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어느 가족이 숙소를 예약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네 살 정도 되는 아이, 화목해 보이는 세 가족이었습니다. 그 가족은 그곳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1층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2층에는 아이가 혼자 놀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가 식사 준비에 집중을 하는 사이, 아이는 2층 창문 앞에 놓여 있던 라디에이터에 오르며 장난을 쳤습니다. 그리고 라디에이터 위에 바로 붙어 있던 창문에 손을 댔습니다. 창문은 고정 장치가 풀려 있었고, 창문을 밀던 아이는 그대로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그 일이 너무 충격적이었고, 결국 그들도 숙소 주변에서 목을 매어 불행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묵었던 숙소가 바로 저희가 기묘한 형상을 목격한 바로 그곳이었던 것입니다. 조교님은 자신의 말에 신빙성을 더 하기 위해, 2층 창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2층 창문은 3분의 1만 열리는 반고정 장치가 설치되었고, 그렇기에 현재 모든 숙소의 2층 창문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친 조교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충격에 공포심도 당황스러운 기분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정신이 멍 해졌죠. 그런 저의 얼굴을 본 조교님은 약간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멍한 상태로 버스에 올랐고, 차는 출발했습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그 세 가족을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 여자 아이는 초등학생 오빠들이 노는 모습에 자기도 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모습을 드러내고 주변을 서성거렸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저희를 놀라게 했지만, 해코지를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버스 안에서 그 아이와 그 가족을 위해 짧은 애도의 기도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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