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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기타를 못쳤다.

어머니와 오랜만에 대화 아닌 대화

by 무긴이

어버이날이 이틀 지나고 어머니를 만났다. 어버이날엔 여러모로 일이 많았다. 그대로 지나갈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어머니를 봐야 할 거 같았다. 효심 같은 종류는 아니었다만, 그래야 내가 그리고 어머니가 서로 잘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우리는 무한리필 고기집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나는 고기를 구웠고 어머니는 셀프바에서 여러 찬들을 가지고 왔다. 역시나 그렇듯 어머니 양 손엔 다 먹지 못할 음식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싫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항상 그러지말라며 성을 냈었더랬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가게 직원의 눈치가 보이고 음식이 남는 건 여전히 낯부끄럽지만, 그러려니 하며 은근슬쩍 어머니 편에 선다. 앞으로 자주 그쪽에 서볼까 한다. 잘 될지는 스스로도 확신이 없지만.


어머니와 나는 입이 짧은 편이다. 무한리필 고기집에는 1시간 40분이라는 사용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어머니는 너무 짧은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우리는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가게를 나섰다. 매번 반복되는 레파토리다. 나는 어머니를 태우고 집을 향해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어머니는 혼자 가도 된다며 혼잣말 비슷하게 궁시렁 됐지만, 아들이 태워주는 차가 편안하다며 즐거워하셨다. 나는 즐겁다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수없이 거닐던 그 거리를 어머니를 태우고 차로 지나는 것에 감회가 새로웠다.


차 안에서 어머니와 이런저런 살아가는 대화를 했다. 정확히는 어머니가 말했고 나는 들었다. 한참을 대화 아닌 대화가 이어지던 중 갑작스런 침묵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창문 너머 거리를 보고있었고, 나는 정면 창문 너머 거리를 헤쳐나가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 사소한 질문이었는데, 아버지의 친구에 대해 물었다. 질문의 요지는 이러했다. 나는 지금껏 아버지에게 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이 아버지의 친구라며 내게 아버지에 대해 말을 해준 적도 없었다. 그러니 아버지에 대해 알고싶어도 어머니 외 누군가에게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아빠가 고아여서 친구가 없어"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의 대답에 조금, 아니, 꽤나 의아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고아와 친구는 무슨 연관이었을까. 어머니는 내 의아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어린시절 동네 성당에서 머물며 생활했었고, 교회에서 살 때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아버지를 좋아했었다는 사실과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 능숙하게 잘 해냈다고 했다. 마치 지금 동생처럼, 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는 어머니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버지가 기타도 잘 치셨잖아요."

"아빠, 기타 못쳤어"

"네? 앨범 사진에 기타 매고 찬양하던데요?"

"그거 그냥 폼 잡는 거야. 혼자 독학한다고 몇 번 만지다가 못하겠다 싶은지, 며칠 만에 기타 놨어."


지금껏 견고하게 자리 잡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워낙에 잘 모르고 있었다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혹은 어머니가 잘 모르는 건 아닐까? 아니, 그럴리가 있나. 하여튼 아버지의 억울함은 공기 중에 떠다니다 수증기처럼 증발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부재한 아버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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