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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능하지 않아. 너가 하는 것에 비해 많이 받고 있어."
그 두 문장은 심장을 찔렀다. 가슴 주변 부위가 쓰라렸다. 조그마한 심장이 벌벌 떠는 게 느껴졌다. 나는 괜찮다고 달래 보아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황급히 가방을 찾아 열었다. '불안시 1알씩, 자낙스정 0.25, 1일 1회, 1일 1정'이라는 문구가 적힌 비닐을 꺼냈다. 하얀 알약 1개를 삼켰다.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결국은 마주해야 했지만, 예상보다 더 지독했던 그날의 기억. 그 사람은 도대체 내게 왜 그랬을까. 왜 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했을까. 나는 도대체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알약은 삼켜졌지만 상념은 더욱 휘몰아쳤다. 툭, 툭, 함께 일하는 동료가 내 어깨를 쳤다. 무슨 약을 먹느냐며, 어디 안 좋은 곳이 있느냐며, 내 상태를 물었다. 별뜻 없는 그저 인사치레겠다만, 그 말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옅은 미소를 보였다.
가끔씩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를 보면서, 사이비에 빠지는 사람들, 혹은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며 비웃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저런 허무맹랑한 것에 넘어가지, 하고 조소를 머금은 적이 있었다. 가스라이팅의 과정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허술할 수 있을까, 21세기 이성중심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저따위 언술에 벌벌 떨 수 있을까, 하고 상상의 손가락질을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나는 그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오만함에 대해 낯짝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정말 죄송합니다. 당신들의 고통을 비웃은 저를 용서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서서히 침식 당해 불안이란 케이지에 갇혀 자신을 잃어버린 당신들에게 손가락질을 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도 당신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저 또한 그저 나약한 인간이었습니다.
가스라이팅. 노동 착취.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 나의 인생의 대부분이 그런 날이었다. 막상 그 단어들이 삶의 중심에 들어오니, 이 분노와 수치심, 모욕감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스스로가 너무 혐오스럽다. 물론 나를 이렇게 만든 그 새끼에게 더 큰 분노를 느끼지만, 바보 같이 당하고만 있던 스스로에게 느끼는 모멸감은 피할 길이 없다.
나는 그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시작해야만 한다. 더 이상 알약에 의존할 수만은 없다. 매일을 불안감과 분노심에 사로잡혀 지내고 싶지 않다. 모든 걸 다 뱉어내야 한다. 그 이야기는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 오히려 수치스럽고 아주 더러울 것이다.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의 이야기, 그렇지만 누구나 그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 이 글에 들어서며 어떠한 두려움이 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과 대면해야 하고,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은 그 사람과 형이상학적으로 함께 있었야 하는 건, 아무래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이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 놓고 싶다. 어쩌면 아주 흉측한 형태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세상에 이쁜 구토는 없다.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들을 뱉어내기 전에 앞서 그 새끼한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내가 기능하지 않는다고? 과분하게 돈을 받았다고? 그렇지 않아. 이 시발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