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술가의 장례식

by 무긴이

1.

작은 대기실.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전신 거울과 그 옆을 지키는 키 큰 스탠드 조명만이 방의 적막을 채우고 있다. 거울 앞에 C가 서 있다. 그의 손에는 땀에 젖어 꼬깃꼬깃해진 A4 용지 한 장이 들려 있다.

C는 마른기침을 두어 번 뱉어내고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린다.


“(마른기침) 그는 제게 은인 같은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서로를 위해주는 가족이었고… 실제 가족은 아니구요.”


C는 거울 속의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무표정한 얼굴 근육을 억지로 끌어올려 입만 벌린 채 ‘하하’ 웃는 시늉을 해본다. 소리 없는 웃음은 어딘가 기괴해 보인다.


“하, 하. 그는 훌륭한 교육자이자, 존경받는 예술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평범하지만 특별합니다. 그는 진정성 있는….”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툭 끊긴다. C는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본다. 찌그러진 미간이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C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뗀다.


“그는 진정성 있는….”


하지만 이번에도 혀가 굳은 듯 다음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C는 앞에 놓인 탁상으로 다가가 생수병을 집어 든다. 벌컥벌컥. 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그는 천장을 올려다봤다가, 바닥의 카펫 무늬를 세어보다가, 이내 깊은 고민의 늪으로 잠겨 든다.


그때, 작은 방의 문이 열리고 J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J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준비하라는 신호다. C는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2.

화이트 큐브. B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관람객은 많지도 적지도 않다. 전시장 내부는 기계나 폐전자제품에서 갓 뜯어낸 듯한 부품들로 어지럽게, 그러나 계산된 무질서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앙에는 도미노가 높이 쌓여 있다. 그것은 거대한 성이나 요새처럼 위압적인 동시에 위태로워 보인다.


J가 사람들 앞으로 나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전시장 특유의 울림 없는 공간에 그의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퍼진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J입니다. 이번 전시는 일상적 노동과 예술적 유희 사이의 위태로운 경계를 심문하는, 고도의 메타-비평적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 주체들을 예술적 권위의 장 안으로 소환해 낸 B의 혁명적 실천을 통해, 여러분은 그의 숭고한 예술관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3.

전시장 구석,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큐브의 예리한 모서리 틈새에서 ‘그것’이 사람들을 응시하고 있다. 시선은 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채다.

그것의 감각기관은 예민하게 곤두서 있다. 저 멀리 모여 있는 무리 쪽에서 구수하고도 비릿한 냄새가 풍겨온다. 그 냄새는 사람들 틈에 있을 수도, 혹은 그 너머의 무언가일 수도 있다.

그것은 본능적인 이끌림에 따라 천천히 머리를 내민다. 더듬이를 휘저으며 주변을 경계하더니, 구수한 무언가를 향해 소리 없이 검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4.

“B는 우리 곁을 떠났으나, 그의 존재론적 궤적은 이 오브제들 속에 형이상학적 잔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의 정신이 응축된 이 전술적 공간 안에서, 세속적 감각을 배제한 오로지 순수한 미적 사유로 작가와 공명해 주시길 제안합니다.”


J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조용한 박수를 쳤다. 기묘한 풍경이다. J는 마이크를 든 채 고개를 들어 누군가를 찾았다. 구석에 서 있던 C와 눈이 마주치자, J는 아주 옅은 미소를 띠어 보였다.

C는 아무도 모르게 코로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세련된 옷차림의 관객들에 비하면 C의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마른기침) 흠, 흠. 안녕하세요. 바쁘신 와중에 함께해 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C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지만, 누구도 박수를 치거나 호응하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만이 감돈다.


“저는 B와 20년을 함께 일해온 C입니다. B는 저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아, 실제 가족은 아니구요.”

C는 연습한 대로 농담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정적뿐이었다.


“… 그만큼 가까운 친구였다는 의미였습니다. B는 존경받는 예술가이기도 했습니다. 노동을 말하는 예술가죠. 아니, 노동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약자를 생각하는 사람이었죠. (짧은 침묵) 진심으로요. 그런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에 저와도 가까워졌습니다. 그가 저를 많이 도와줬거든요.”


5.

그 시각, 그것은 전시장 바닥을 은밀하게 누비고 있었다. 냄새의 진원지는 거대한 도미노 성 안쪽이었다. 성채의 중앙, 겹겹이 쌓인 블록들 사이에 먹다 남은 김밥 하나가 놓여 있다. 시큼하고 구수한 냄새로 얼마나 이곳에 있었는지 가늠이 된다. 그것은 목표물을 확인하자마자 속도를 높여 달리기 시작한다.


6.

단상 위에서 C는 B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고난을 함께 이겨낸 아름다운 서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C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가 준비했던 대본이 아니었다. 긴장이 극에 달한 탓일까, 아니면 억눌려왔던 무언가가 터진 것일까. 그의 말들은 의식의 흐름대로 뱉어내기 시작했다.


“사실 B는 동영상 작업에는 소질이 없었죠. 솔직히 아무것도 못했어요. 그는 동영상을 만드는 것을 뺀 다른 일들을 했습니다. 비즈니스? 그런 것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거진 모든 프로젝트는 저 혼자 다 만들었습니다. 기획부터 인코딩까지 전부 다요.”


말을 뱉고 나서야 C는 아차 싶었다. 실수를 수습하려 급히 말을 덧붙인다.


“그렇지만… 저는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 그 정도는 해도 됩니다. 매일 밤새워 일을 했지만, 월 100만 원을 받은 적도 많았지만, 어쩔 땐 못 받기도 했구요.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와 저의 관계는 비즈니스가 전부가 아닙니다. 그가 제 인생에 준 좋은 영향은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거니까요….”


분위기가 술렁이기 시작하자 J가 특유의 웃음과 함께 조용한 박수를 치며 황급히 끼어들었다.


J가 억지로 웃으며 마이크를 뺏으려 했다. J가 마이크를 움켜쥐었지만, C는 놓지 않았다. J가 당황한 눈으로 C를 노려본다. C 역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으나, 손가락은 하얗게 질릴 정도로 마이크를 꽉 쥐고 있었다. 두 사람이 우스꽝스러운 힘겨루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꺄아아악!”


관객 중 한 사람이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반짝이는 검은 등껍질을 가진 그것이 사람들 한가운데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7.

전시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뒷걸음질 쳤다. 용기 있는 누군가가 발을 구르며 그것을 밟으려 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잽쌌다. 수많은 구두 굽과 운동화 발을 요리조리 피하며 그것은 오직 한 곳을 향해 질주했다. J와 C는 마이크를 서로 잡은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난장판이 된 전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것의 목적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구수한 냄새, 썩어가는 김밥에 닿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앞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8.

그것은 잠시 멈춰 숨을 고르더니, 등껍질을 쩍 갈랐다. 그 안에서 얇고 투명한 여러 겹의 날개가 펼쳐져 나왔다. 파닥. 파다닥.


그것이 날아올랐다. 바닥을 기던 공포가 공중으로 떠오르자 비명은 배가되었다. 그것은 도미노 성을 향해 빠른 속도로 비행했다. 하필이면 도미노로 향하는 길목에 마이크를 서로 쥐고 있는 C와 J가 서 있었다. 웅웅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다가오자 C는 본능적으로 몸을 잔뜩 움츠렸다.


“으아악!”


반면 J는 기겁을 하며 잡고 있던 마이크도 놓친 채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J의 뒤를 쫓았다. 정확히는 J가 도미노 성 앞에 서 있었기에, 그저 김밥을 향해 전진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J는 그 사실을 알리 없었다, 단지 혐오스러운 검은 물체가 날개를 흔들며 자신에게 달려올 뿐이었다.


울며불며 달리던 J는 결국 자신의 발에 걸려 중심을 잃고 도미노 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9.

거대한 요새 같던 도미노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마치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가듯 스르륵 주저앉았다. 정교했던 요새는 한낱 나무조각이 되었다. 관객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J의 주변으로 모였다. 바닥에 흩뿌려진 나무조각 위에 사람들이 올라가 있다.


C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난장판이 된 전시장, 무너진 도미노 더미 속에 파묻힌 큐레이터, 그리고 그 사이에 변색된 김밥 하나.


C는 그 꼴을 보고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입꼬리를 비틀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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