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지수 Feb 14. 2022

물리치료 선생님

코니

작년 가을 볼더 짐에서 내려오다가 잘못 떨어져 다리뼈가 부러졌다. 병원에서 철판과 나사를 박는 수술을 했다. 수술이 끝나고 며칠 뒤 집으로 돌아와 물리치료 예약을 했다. 한국에서 정형외과 수술을 받아본 친구 말에 따르면 병원에 입원해 매일같이 물리치료를 받는다고 하던데, 독일은 일단 집으로 가서 집 근처 물리치료센터에 알아서 가야 한다. 하우스닥터의 진단서를 받으면 6회 1세트를 예약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6회씩 3세트 물리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


같은 선생님이 쭉 해주면 좋겠지만 선생님이 자주 바뀌었다. 두 번째 세트에 코니를 만났다. 코니와 두 번째로 만났을 때였나, 하는 일이 뭐냐고 묻기에 글을 쓴다고 했더니 어떤 글을 쓰냐고 다시 물었다. 

“비거니즘 이야기를 써요.”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비건... 그건 좀 극단적인 게 아니냐고 했다. 덧붙여 자기는 유제품은 먹는 채식을 한다고 했다. 채식을 하게 된 계기가 철분 수치 때문인데, 육식을 멈추니 철분 수치가 좋아졌다고 채식의 이로움을 말했다. 그럼 왜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동물성 제품으로만 섭취가 가능한 비타민 이야기를 했다. 아마 서양에서 비건이라고 하면 꼭 나오는 B12를 말하는 듯했다.


음... B12는 동물이나 식물이 만드는 비타민이 아니며, 육식을 하는 사람들 역시 B12가 결핍되는 경우가 많다. 공장식 축산 육식 제품이 되는 동물들도 B12주사를 맞는다. 동물을 거치는 것보다 직접 영양제를 사 먹는 것이 낫다. 식물성 음료나 치즈 같은 비건 제품에는 B12가 첨가되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영양제를 챙겨 먹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지만 황성수 박사에 따르면 우리 장내 미생물이 비타민 B12를 만들 수 있으니 장내생태계 관리를 잘해주면 굳이 챙겨 먹지 않아도 된다.


내 설명을 가만히 듣고 난 코니는 갑자기 자기가 했던 비건 요리 얘기를 시작했다. 다짐육 대신 콩단백으로 볼로네제 스파게티를 만들었더니 아이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맛있게 먹은 얘기, 당근을 얇게 썰어서 양념해 비건 훈제 연어를 만든 얘기, 견과류로 넛 로프를 만들어 먹는 얘기... 나도 신나서 맞장구를 치면서 요즘엔 비건 제품도 너무 잘 나오고 결국엔 다 소스 맛이고, 영양소는 식물에 있고, 정 걱정되면 영양제 챙겨 드시면 된다고 말했다. 코니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자기는 사실 이미 비건으로 많이 먹고 있고, 앞으로 더 비건으로 먹어보겠다고 말했다. 


나도 귀찮아서 안 해본 당근 비건 훈제 연어도 만들어 드시는 분이 비건이 극단적이라고 말하는 게 조금 웃겼다.


*


한주가 지나고 다시 코니를 만났다. 물리치료 1회는 보통 20-30분이다. 치료를 받으며 이야기를 하는데 코니가 오늘 점심 도시락을 비건으로 싸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고, 나는 물개 박수를 치며 칭찬했다. 도시락 이야기를 하시니 특히 독일인들에게 반응이 좋은 병아리콩으로 만든 참치 없는 참치 샐러드를 소개했다. 

병아리콩을 불리고 삶아 으깨고요, 김가루랑 콩 마요. 소금 후추, 오이피클, 다진 양파, 레몬즙을 넣고 섞어요. 까먹으면 인터넷에 병아리콩 참치 샐러드라고 검색해보세요. 빵이랑 먹어도 좋고, 샌드위치를 만들어도 맛있어요.”

벌써 기대가 되는지 들떠 보이는 코니는 콩 요거트를 사서 비건 마요를 직접 만든다고 했다. 아니... 선생님 저보다 더 열정적으로 비건 음식을 만들어 드시는데요? 동네 유기농 마트에 파는 타이푼 두부와 라푼젤 초콜릿이 맛있다고 했는데 이미 다 알고 계셨다. 치료가 끝나고는 비건 제품을 많이 들여놓은 슈퍼마켓 지점과 맛있는 유제품 대체 브랜드를 쪽지에 적어서 드렸다.


*


3번째 6세트 예약을 했다. 담당 선생님에 코니는 없었다. 예약 시간이 되어 물리치료센터에 가서 앉아 있는데 코니가 오더니 어제 요리 해먹은 비건 음식 얘기를 시작했다. “어제 완. 전. 비. 건.으로 요리해서 먹었어요! 콜리플라워를 통째로 살짝 삶아서 아몬드 퓨레, 파프리카 가루, 소금, 후추, 파슬리를 섞어서 겉에 바르고 오븐에서 구웠는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리고 치코리를 반 갈라서 팬에 구워서 발사믹 식초를 뿌리고 같이 먹었어요. 완. 전. 비. 건.!!!” 완. 전. 비. 건.이라고 자꾸 강조하는 게 귀여워서 웃음이 났지만 “콜리플라워 구이 맛있죠! 치코리 저도 한번 따라서 해봐야겠어요!” 호들갑으로 응답했다.


*


독일 슈퍼마켓 리들 자체 비건 브랜드의 요거트가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비건 제품을 집어와 이것저것 먹어보니 괜찮은 게 꽤 많았다. 물리치료에 갔더니 마침 코니가 있어서 그쪽으로 다가가 인사를 한 다음, 리들에 비건 요거트랑 모짜렐라가 맛있으니 한번 가서 드셔 보라고 소식을 전했다. 코니는 근처에 있는 종이를 집어 적으며 안 그래도 맛있는 제품을 몰라 피자를 만들 때 치즈 대신 아몬드 퓨레를 올리고 있는데 잘됐다고 좋아했다. 물론 아몬드 퓨레를 올려도 맛있다고도 했다.


얼마 전 세 번째 세트 물리치료가 끝났다. 치료가 끝난 건 좋지만 코니를 만날 일이 없어진 건 조금 아쉽다. 코니 덕분에 처음으로 치코리(뾰족한 끝이 노란 작은 배추 같은 프랑스 채소)를 사서 구워 먹어 봤는데 푹 익히지 않았는지 씁쓸한 맛이 강했지만 비건 소시지랑 같이 먹으니 괜찮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건의 사생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