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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Mar 07. 2022

소꿉친구 Y

유치원 때 같은 반에서 처음 알게 된, 자주 만나지는 못하는 지금까지 가깝게 지내는 오랜 친구 Y가 있다. 우리는 같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 유치원 때 이후론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같이 등하교를 했다. 대학교에 다닐 땐 같이 내일로 기차여행으로 전국을 다녔고, 둘 다 일을 하기 시작하고는 제주도 여행을 가기도 했다.


내가 런던에서 비건이 되고, 비거니즘을 알리려 인스타그램 계정을 새로 만들었을 때 Y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인턴을 했다. 우리는 항상 별별 말을 다 하는 사이니까, 내 소식을 전했다.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받아들이고는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했다. Y는 자신은 지금 당장 비건이 되지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나 역시 당연히 내 사람들이 비건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Y로부터 자신도 비건이 되어보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들을 보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동물을 먹는 것을 그만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너무 반갑고 고맙고 한편으로는 괜히 안쓰러웠다. 내가 사는 런던은 그래도 비건으로 지내기가 수월한데 한국에서는 지금보다 비건 지향이 더 어려웠으니까. 


사실 나는 Y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비건이 되리라고 예상했다. 그는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학교에 다닐 땐 친구가 없는 애들을 챙겼고, 같이 영화를 볼 때면 자주 영화 속 사람들이 다치는 장면에서 마치 자신이 다친 것처럼 아파했다. 처음엔 장난을 치는 건 줄 알았고, 그 모습을 보고 웃기도 했다.


하루는 Y가 정보를 얻으려고 채식 오픈 카톡방에 들어갔다가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불필요하고 불편한 말을 자꾸 해서 나왔다고 했다. 그런 오픈 카톡방 몇 개가 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은 없다고 했다. 


“그럼 니가 만들면 되겠네.”

“과연 사람들이 들어올까?”


내가 비건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를 해준다고 했고, Y는 방을 만들었다. 그맘때쯤 또 비건 지향을 시작한 다른 친구 한 명을 초대해 처음에는 셋이 놀았다. 신기하게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Y가 그랬던 것처럼 검색으로 들어온 사람도 있었고, 인스타그램을 보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왔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아무도 혐오하지 않는 ‘모두를 위한 비거니즘’ 방이라는 뜻을 담아 비건포올(Vegan4ALL)이라고 이름 지었다. 


별일도 있었다. 우리 방이 페미니스트 방이라고 소문이 났나 갑자기 여성 혐오, 비건 혐오자들이 들어와서 분탕을 쳐대는 바람에 오픈 채팅방은 사적인 단톡방으로 따로 만들어야 했다. 일을 시작하고 너무 바빠진 Y는 나간 지 오래고 지금은 80명이나 있지만 어쩐지 조용한 방이 되었다.


언젠가 Y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을 땐 멸치육수나 해양 동물을 먹을 때도 있다고, 자신은 이제 비건이 아니라며 씁쓸해하며 말했다. 애초에 회사에 들어가면서부터 동물성 재료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해서 그나마 괜찮긴 한데 아무래도 힘든 점이 있었다. 회사 사람들끼리 같이 가는 식당에 먹을 음식이 없거나, 일하는 곳 근처에는 먹을 만한 곳이 거의 없었다. 서울 자취집은 요리하고 정리하기가 불편하고, 너무 일이 많아 그럴 시간조차 없이 좁은 월세 집은 잠만 자고 씻고 나가는 곳이 되었다.


“그래도 정말 어쩔 수 없을 때가 아니면 항상 비건으로 먹잖아.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니까 비건 맞아. 비건 지향.”


우리는 당시 Y가 살던 동네에 채식한끼 앱으로 찾은 순두부와 청국장 전문 식당에 갔다. 초당순두부와 청국장을 육수 대신 맹물로 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반찬에도 혹시 액젓이 들어간다면 먹지 않으니 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부엌에 들어가 물어보고 오신 직원 분은 감자조림은 식물성이니까 액젓이 들어간 다른 반찬 대신 감자 두 접시를 주셨다. 기본으로 나오는 비빔밥에도 “그럼 계란 후라이도 빼 줄까요?”라고 먼저 물어봐주셨다. 비빔밥도, 순두부도, 청국장도 정말 맛있었고, 숭늉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나왔다. 


우리는 비건 빵집에 가서 빵이랑 과자를 사 먹고, 아주 오랜만에 만화카페에 가서 만화책을 보고, 근처 천변 공원을 걸었다. 어릴 때 집 근처에 있던 우리가 다닌 중학교의 운동장을 돌고, 우리 강아지랑 같이 산 아래 약수터까지 자주 걷던 생각이 났다.


이제 Y에게는 주변에 같이 비건을 지향하며 같이 비건 식당을 찾아다니는 친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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