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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Apr 19. 2022

[인터뷰] 독일사는 돌멩이

돌멩이 티스토리 selbstversorger.tistory.com(이미지 제공)

비건 2017~ / 독일 거주/ 논비건 파트너/ 취미 부자


비건이 되기 전, 비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비건의 정의에는 동물권이 포함되잖아요. 사실,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 환경 운동에 관심이 있어서 채식을 해본 적은 있는데 동물권에 대한 건 전혀 몰랐고, 비건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어서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지금은 ‘비건’ 하면 ‘책임감’ 같은 말이 떠올라요.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비인간 동물에게 주는 피해에 대한 책임감이요. 그리고 결국 비건도 결국 다 같은 사람이라는 것.


환경문제 때문에 비건 지향해도 비건 아닌가요?

‘환경 비건’이라고는 하는데... 제가 대학교 때 했던 채식을 생각하면 ‘동물권’에 대한 개념이 없었어요. 채식도 한 6개월 하다가 ‘먹고 싶어서’ 관뒀어요. 처음에는 ‘육식이 환경오염과 탄소배출의 원인이니까 먹으면 안 돼’ 의지를 갖고 시작했는데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냄새를 맡으면 이게 머릿속에 <음식>으로 분류되어 있으니까 ‘먹지 않는’ 게 힘들더라고요. 동물권을 알면 <음식>의 범주에서 동물이 아예 사라져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데, 그땐 먹을 수 있지만 내가 ‘참는다’고 생각했어요.


비거니즘을 알고 나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변화가 있었나요?

비건 지향 전에 저는 자기혐오가 심했어요.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까지 왔는데, 와보니까 그동안 전공한 걸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거예요. 평생 가겠다고 생각한 길을 실패했다는 절망감에 우울증 같은 걸로 정신적으로도 힘들었고, 그런 저를 도와주려는 친구한테 상처를 줘서 떠나보내기도 했어요.


죽고만 싶은 때가 지나고, 옆에 있어준 파트너의 도움으로 나중에는 상담도 한번 갔어요.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돌아봤더니 주변이 정리되어 혼자 남은 거예요. 졸업도 해서 이제 세상과의 연이라고는 파트너밖에 없는 상태가 되고, 트위터를 시작해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비건 하는 걸 보면서 ‘나도 채식했었는데...’ 그때 재밌었던 기억도 나고요.


처음엔 동물권 개념 없이 그럼 일주일에 5일은 채식을 하고, 주말에 한 번은 고기를 먹는 식으로 해보기로 파트너한테 선언을 했어요. 조각나 있던 정보를 기본으로 책이나 영상을 찾아보다 ‘동물권’에 대한 개념이 확실해지면서 비거니즘 자체를 이해하고는 일주일에 한 번 고기 먹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되는 게 돼버렸죠.


비건이 되고 자기혐오가 확실이 줄었고, 요즘에도 종종 호르몬인지 계절 영향 때문인지 이유모를 우울감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나마 ‘비건 지향을 하니까 살아있어도 괜찮은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거창한 것 같은데 비건 지향이 저한테 ‘살아도 되는 이유’가 되었어요.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재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에 여성으로서 저의 '약자 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이후 비거니즘을 접하면서는 성소수자, 성노동자, 장애인, 아동과 노인을 비롯한 비인간 동물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이해하고는 나만 피해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존재는 알았지만 내 일처럼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어요. <육식의 성정치>라는 책의 도움도 컸고요.


혹시 비건이 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영향이 있었나요?

가족들이랑은 떨어져 있으니까 자주는 아니지만 한국에 갈 때마다 갈등이 있긴 했죠. 엄마랑 올케는 같이 얘기도 이해도 잘하고 좋은데 아빠랑 남동생은... 특히 남동생은 고기가 없으면 안 되는 줄 알아요. 처음에는 같이 얘기도 하고 게리 유로프스키 영상도 봤어요. 보고 나서는 자기는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데 먹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고, 알면 알수록 더 못 먹을 것 같으니 알기를 거부하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한국에 가면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데 그럴 때에도 제가 비건이라 외식으로 비싼 거(육식)를 못 먹는다는 것에 불만이 많아요. 비건으로 먹을 수 있는 곳은 동선에 안 맞을 때도 있고 하니까 같이 여행하는 게 너무 곤혹스럽더라고요. 특히 바닷가에 가면 그렇게 횟집을 가려고 해요. 저는 냄새부터 너무 싫고, 내 눈앞에 다 보게 하면서 나는 미역국에 밥, 김 주고 끝이고요. 얘는 내가 한 번은 비건 식당이나 비건 옵션 있는 식당에 가니까 한 번은 누나도 참아라 뭐 그런 식이라 가족들하고는 아직도 해결이 안 났어요. 떨어져 있는 게 다행인 것 같아요.


그렇게 가족들이랑 떨어져 와서 지금 논비건이랑 살고 있는데... 얘는 공장식 축산 나쁜 거 알고 있고, 제가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은 먹겠다고 했으니까 별 거부감이 없었어요. 또 그때는 따로 살면서 데이트할 때였거든요. 근데 선언을 하고 동거를 시작하면서는 제가 최고조로 비거니즘을 열정적으로 공부했어요. 그래서 이제 얘 먹는 것도 못 보겠고, 기분 좋게 데이트를 해도 독일은 비건 옵션이 있고, 나는 비건으로 먹는데 넌 굳이 그걸 먹어야겠어? 이렇게 되는 거죠...


한 번은 동물권 단체에서 시위를 하는데 활동가가 파트너를 붙잡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얘는 ‘동물 복지’를 지지하는 입장이거든요. 둘이 얘기를 하는 걸 듣는데, 나는 파트너랑 같이 살고 있는데 내 마음은 그 동물권 활동가랑 같은 거예요. 어쨌든 대화가 끝나고 돌아서 가는데 마음이 너무 착잡하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얘가 동물 복지 쪽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길게 오래 말하는 건 처음 보았고, 파트너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어요.


돌아가는 길에 제가 “나는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성소수자 차별하는 사람이랑 못 살고, 친구도 못해. 종차별주의자랑 내가 친구 할 수 있겠어?” 이렇게 물어보면서 이럴 거면 그냥 헤어지자고 했어요. 어쨌든 같이 살고 있었으니까 착잡한 마음으로 집에 왔는데 파트너가 하루 정도 생각해보더니 자기가 노력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솔직히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게 집에서 같이 먹을 때는 비건으로 먹었어요. 제가 고기 냄새, 특히 닭알 정말 싫다고 나 있을 때는 참아달라고 했더니 그것도 오케이 했거든요. 어쨌든 최종적으로 <인간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동물을 착취하고 죽이면 안 된다>에 동의하느냐 마느냐 그것만 듣고 싶다. 동의를 하면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바뀌겠지, 나는 그 희망만 있으면 된다 하면서 자기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노력을 하겠다 했어요.


그 당시에 너무 외로워서 한창 비건 데이팅 앱도 찾아보고, 비건 친구도 사귀려고 노력도 했어요. 지금은 특히 기후위기 문제도 그렇고, 얘도 제가 말하는 걸 듣고, 환경이나 공장식 축산문제를 다시 보니까 생각이 바뀌나 봐요. 자꾸 대체제가 나오기도 하고, 제가 하는 걸 보니까 충분히 가능하고 영양적으로도 문제없다는 걸 알게 되었죠. 파트너도 이제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동물을 착취할 필요가 없다>까지는 왔어요.


처음에 파트너는 비건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요가하고 명상하고 사이비 종교 같은 느낌으로 비건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가지고 있어서 제가 열정적으로 비거니즘 공부할 때 무서웠대요. 지금은 당연히 다 사라졌죠.


와, 파트너분 많이 발전했네요.

혼자였으면 정말 제 세계에 갇혀가지고 살았을 텐데 얘랑 얘기를 하다 보니까 왜 그런 거 있죠, 싸우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얘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도 그 사람들의 생각도 알 수 있는 건 있어요. 얘가 논비건이라 가능했던 일이랄까요.


생각해보면 인간관계는 비건 논비건 차이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서로 얼마나 이해하려고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씩 비건 가족이나 비건 커플의 삶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공통점이 있는 만큼 다른 나름의 고충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떨까 하는 생각이요. 궁금증이랄까? 가족들과 다 같이 비건 식사를 하고, 식사 자리에서 스트레스받지 않는 게 저는 거의 불가능하니까 특히 한국에서는. 파트너 식구들도 보면 남자들은 다 고기 좋아하는데 파트너 엄마가 가장 신경을 써주세요. 여자들은 확실히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다 그렇진 않겠지만.


제 생일이라고 엄마가 비건 생일상을 푸짐하게 차려주셔서 다 같이 먹은 적이 있어요. 너무 감동받았어요. 

맞아요. 경제적인 지원도 좋지만 ‘내가 나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배려’가 더 필요한 건데.


만약 남동생이랑 아빠가 우리 돌멩이,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같이 있을 때만이라도 나도 비건 지향 한번 해보자. 이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오래 있지도 않아요 솔직히. 1-2주? 3주 이상 있어본 적이 없고, 1-2주는 여행 다녔단 말이에요. 그럼 나랑 같이 있는 시간은 일주일 정도 되는데 그 사이를 못 견디는 거고, 또 너무 비교되는 거예요. 파트너 엄마는 제가 가면 항상 비건으로 먹거든요. 4일, 5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떨어져 있는 게 좋다가도 아쉬운 것도 있고... 가족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비건으로 직장 생활하기는 어땠어요?

저는 직장생활은 독일에서만 해봤어요. 마트 빵집에서 일했는데 가까이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제가 비건이라고 했을 때 그냥 그렇구나 했어요. 집에서 비건 요리하면 일부러 싸와서 저한테 먹어보라고 하는 동료도 있고, 비건 레시피 같이 공유하거나 산책하는 동료도 있어서 좋았는데 빵집 외로 나가면 좀 피곤했어요.


빵집 밖의 사람들이랑도 교류가 많았어요?

왔다 갔다 하면서 얘기를 하는데 마트 내에서 소문이 정말 빨리 돌고,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 할 얘기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새로운 소식이 있다 그러면 전파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언젠가 한 명이 “돌멩이는 오늘 뭐 먹을 거야?”라고 물었는데 어떤 사람이 “걔는 말처럼 풀만 뜯어먹어” 이런 걸 장난이라고 뱉는 거예요. 정말 정색하고 그때 확 싸웠어요. 자기는 그 뜻이 아니었다고 변명해서 풀긴 풀었는데 그 말에 다른 뜻이 뭐가 있어요.


마트에 정육 코너가 있잖아요, 평소에는 그쪽에 가지도 않는데 그 안에 식기세척기가 있어요. 그걸 쓰려면 꼭 정육코너 안쪽을 지나가야 했는데 정말... 거기에서 작은 크기로 잘라서 포장하는 작업을 하거든요. 그 새하얀 벽과 바닥, 핏자국과 죽은 동물 덩어리가 고리에 걸려있고, 또 그걸 자르는 기계가 있고...


처음에는 거의 패닉 상태였어요. 그 하얀 방에 사람들 다 하얀 비닐 옷 입고, 그걸 썰고 있고, 바닥에는 동물 살점이 막 떨어져 있어서 밟히고... 거기를 지나 들어가야 있는 식기세척기에 빵 트레이를 씻으러 간 거거든요. 그 일을 해야 되는 시기가 좀 있었어요. 근데 그것도 반복해서 보니까 익숙해지긴 하더라고요. 씁쓸했죠.


플라스틱은 계속 괴로웠어요. 플라스틱 포장을 하면 손이 덜 간다는 이유는 있지만 손님이 오면 그때그때 해주면 되거든요. 아니면 손님들이 비닐 포장을 원할 때도 있어요. 매일 나오는 양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것도 스트레스였어요. 자꾸 보니까 익숙해지긴 하는데 마트에 진열된 대부분의 상품이 육식, 환경파괴, 개인적으로는 불매하는 악덕 거대기업의 제품들이라는 걸 느꼈을 땐 그냥 솔직히 돈만 생각하고 하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현타가 오더라고요.


요즘 취미로 뜨개 하시잖아요, 마지막으로 ‘비건 뜨개’에 대한 이야기 해주세요.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뜨개를 하면 실 고르는 것부터 작품의 시작이다.” 다양한 실을 고를 수 있는 것도 좋은데 몇 종류의 실을 가지고 뜨개의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고, 이것저것 떠보고, 새로운 무늬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밌어요. 뜨개의 역사가 방대한 만큼 시도해볼 수 있는 게 정말 많아서 실 자체에 제약을 가한다고 해서 뭔가 부족함이나 아쉬움이 느껴지는 게 없었거든요. 만들어놓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풀어서 또 뜨면 되고요. 저는 굳이 동물을 착취한 실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뜨개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녕하세요, 미지수입니다.

공지는 하지 않았지만 저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워 매주 월요일에 <비건의 사생활> 매거진에 글을 올리고, 두 번은 저의 이야기, 한 번은 인터뷰 이런 순서로 글을 올리고 있었어요. 지난 4월 4일, 명상센터에 가서 수련을 하고 17일에 돌아오는 바람에 그동안 매주 월요일에 올리던 루틴이 깨져버렸네요. 부재에 대해 글을 남길까 하다가 그냥 다녀왔는데 혹시나 궁금하셨을 분도 계실까 이렇게라도 글을 남깁니다. 제 이야기를 쓸 차례였는데 어제는 독일이 부활절 휴일이어서 파트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묵언수행에서 돌아와서 아직 적응을 하느라 이미 정리해두었던 인터뷰를 먼저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새 글을 기다리시는 분이 있다면...  5,6월에는 한국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도 할 예정이라 아마 또 정기적으로 올리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양해의 말씀도 함께 드립니다...



비건으로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비건이 되기 전과 후에 느낀 저를 둘러싼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와 사회생활에 대한 저의 경험을 쓰고, 비건 동지들을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육식주의 세상을 사는 오늘날 비건의 가족관계, 친구관계, 연인관계, 학교나 직장생활, 단체생활, 취미생활 등 다양한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와 <비건의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분이 있다면 언제든 주저하지 말고 이메일 meejisux@gmail.com으로 연락 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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