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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May 02. 2022

파트너

나와 파트너가 비건이니 우리 집은 비건 하우스다. 우리가 집으로 들이는 것들은 우리가 아는 한 비건, 크루얼티 프리다. 그는 독일인이지만 한식을 잘 먹고, 좋아한다. 나보다 김치를 더 좋아하며 쿠쿠 밥맛에 눈 뜨고는 매일 쌀밥을 먹고 싶어 한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된장국과 미역국도 이제는 맛있다며 잘 먹으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비빔밥이고, 명이 장아찌와 만두도 없어서 못 먹는다.


우리는 독일의 명상센터에서 처음 만났다. 명상센터의 음식은 채식이고 종종 유제품이 사용되지만 그 외의 육지와 바다 동물의 살이나 알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 여자와 남자는 밥을 따로 먹기 때문에 그가 유제품을 먹는지 안 먹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한국을 향해 여행하며 돌아가는 나와 별로 내 흥미를 끌지 않는 독일에 사는 그가 다시 만날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3주를 휴일 없이 봉사하다 그동안의 피로감이 몰려와 얻은 3일간의 ‘휴가’로 센터 근처의 센터 소유의 아파트에서 지내게 되었을 때, 그가 놀러 왔다. 센터에서 먹을 만큼 식재료를 가져가라고 해서 당연히 내가 요리하고 같이 먹은 건 다 비건이었다. 그는 6개월 전에 탈 육식을 했으며 우유는 마시지 않지만 가끔 치즈나 아이스크림 같은 걸 먹는다고 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명상을 할 때 꼭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규율을 하나하나 짚으며 왜 센터 안에서의 소젖 소비가 옳지 않은지에 대한 내 의견을 설명했다. 


봉사가 끝나고 나는 다음 여행지 프라하로 갔고, 그는 날 만나러 왔다. 시간이 늦어 어쩔 수 없이 비건 옵션이 있는 식당에 갔을 때 그는 나를 따라 음식을 비건으로 시켰다. 얘가 비건이 되기로 한 건지 아니면 그냥 나랑 같이 있으니까 맞추려고 노력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우연히 여행길이 겹친 캐나다에서 같이 살던 제시카와 로비를 만났다. 로비는 짓궂은 장난이랍시고 “너 아직도 비건인가 뭔가 하는 거야?”라고 물었고 나는 당연한걸 뭘 묻냐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제스가 파트너에게 “혹시 너도 비건이니?”라고 물었고 그는 맞다고 했다.


오?


언제부터 비건이 된 거냐고 물었더니 지난번 나를 만나러 왔다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부터 그랬다고 했다. 그가 비건인 것도, 나를 만나자마자 비건이 되었다고 호들갑 떨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물론 나를 만나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면 더 큰 호들갑으로 축하했을 테지만) 나는 비건 유튜버와 다큐멘터리를 추천했고 그는 그걸 찾아보았다. 지금도 Earthling Ed 새 유튜브 영상이 올라오면 꼭 같이 본다.


함께 에스토니아를 여행하던 어느 날, 야외의 계단을 오르고 뒤를 돌아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좀 전에 우리를 스쳐 지나간 커플이 우리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특히 남자는 윙크까지 날리는 게 아닌가?(알고 보니 습관적 윙크였다) 파트너를 보니 얘도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이건 뭐지? 혼란스러워하는데 그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너네 비건이니?” 우리는 당황했다. '음... 어떻게 알았지? 얼굴에 비건이라고 쓰여 있나?' 뒤쪽에 있던 여성이 따라왔다. 남자는 독일인 여자는 대만인. 베를린에 사는 비건 커플인데 점심때 들어갔던 비건 식당에서 밥 먹는 우리를 보았고, 신발이 비건 신발이라 그럴 것 같았다고 했다. 그들이 알아챈 건 파트너의 운동화였다(내 것도 비건 닥터마틴인데...). 아무튼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는 다음날 같이 미술관에 갔다가 그들이 추천하는 비건 식당에 가서 같이 밥을 먹었다.


파트너와 함께 비건이니 파트너 가족들과의 식사도 대부분 비건이거나, 비건 옵션을 꼭 챙겨주신다. 원래도 육식이 몸에 해롭고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잘 알고 이해하고 계신 분들이라 크게 설명하거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들어야 할 일이 없다는 것 또한 엄청난 장점이다. 재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다 같이 비건 식사와 디저트를 준비해 먹었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 파트너가 회사에 다니며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가 있었다. 한 번은 어떤 직원이 “비건이라고요? 그거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파트너는 동요하지 않고 “그래요? 저는 오로지 맛을 위해서 수많은 동물들을 착취하고 죽이는 게 더 극단적인 것 같은데요.”라고 응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불편한 ‘질문’에 덤덤하고 해맑게 대답한 그가 웃기면서도 대견했다.


파트너는 동료들에게 게임 체인저스 다큐를 추천했다. 그걸 본 몇몇 동료들은 채식에 대해 조금 더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채식을 더 많이 하겠다고 했다. 나도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만난 적 있는 루이스도 비건에 긍정적이었는데(사실 모든 것에 굉장히 긍정적인 사람), 하루는 제로 웨이스트 샵에 갔다가 루이스와 그의 아내 키라를 우연히 마주쳤다. 마침 며칠 전 키라가 비건이 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었다. 키라는 우리에게 자신이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고 나와 파트너, 제로 웨이스트 샵 주인까지 다 같이 손뼉 치며 축하했다.


얼마 뒤 우리는 루이스와 키라랑 비건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고, 에데카(슈퍼마켓)에 가서 맛있는 비건 제품을 서로 알려주고 사이좋게 나누어 샀다. 동네의 다른 친구(비건 10년 차)는 비건 제품이 가장 많은 슈퍼마켓이 어딘지 알려주었다. 둘이 혹은 혼자 슈퍼마켓에 갔다가 처음 본 비건 제품을 발견하면 꼭 사서 같이 맛보고 주변의 비건 친구들과 서로 추천하는 재미도 있다.


상황이 상황이었으므로 연애 초기 우리의 데이트는 여행이었다. 프라하, 리가, 탈린, 상태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혼자 여행에 익숙했지만 함께하는 여행도 좋았다. 처음 해피카우 앱을 소개받고 비건 식당을 찾아다니며 음식을 먹을 때마다 파트너는 신나 했다. 어떻게 비건 식당은 다 친절하고 맛있으며 영어도 잘하는지 감탄했다. 해피카우 앱에 후기와 사진을 남기던 파트너의 독촉에 나는 앱을 쓴 지 일이 년이 지난 어느 날 아이디를 만들어 비건 식당 후기와 사진을 공유하기 시작해 우리 둘 다 지금은 크리스탈 레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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