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파트너와 주말여행으로 카를로비 바리라는 독일과 가까운 체코의 도시에 다녀왔다.
해피카우로 검색한 카를로비 바리는 별로 비건 친화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부엌이 있는 플랏을 예약하고 유튜브로 여행 영상을 몇 개 찾아보았다. 산으로 둘러싸인 색색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마치 애니메이션 영화의 배경같이 생긴 도시 곳곳에 온천수가 나오는 탭이 있고, 길거리 상점에서 파는 작은 컵으로 온천수를 받아 마시면서 다닐 수 있는 곳. 스파로 유명한 곳이란다.
차로 두세 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우리의 숙소가 있는 관광지역은 주차할 곳도, 차들이 다닐 도로도 별로 없어 언덕 위에 주차하고 짐을 가지고 급격한 경사로를 내려갔다. 주변에 산도 많고 가운데로 물도 흘러서 그냥 걸어 다니면서도 자주 언덕을 오르내렸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와 다시 급경사를 오르고 전망대가 있는 언덕을 등산해 경치를 구경했다.
비건 옵션이 있는 베트남 식당에 갔다. 메뉴에 비건 메뉴가 따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쌀국수와 볶음 쌀국수를 시켰다. 쌀국수는 맛있었지만 아주 특별하거나 내일 다시 오고 싶은 맛은 아니었다. 슈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는데 빵과 맥주가 아주 많았다. 과일 맛 음료같이 보이는 캔에 0.0%가 쓰여 있어 뭔가 했더니 무알콜 맥주였다. 과일과 채소의 상태는 그저 그랬다. 과일, 견과류, 매운맛 감자칩 같은 것들을 샀다.
숙소 테라스에 앉아 차와 감자칩을 먹었다. 포장지에 호들갑 떤 만큼 엄청 맵지는 않았지만 짰다. 여기도 맥주를 많이 마셔서 대체로 음식이 짠가 보다. 밖으로 보이는 예쁜 건물들의 창문 대부분은 불이 꺼져있었다. 이 주변은 차도 잘 안 다니고 환전소와 기념품 가게, 온갖 스파 호텔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이 모든 게 그저 관광객들만을 위한 걸까? 이걸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관광객이 오는 걸까?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도시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는데. 마치 영화 세트장에 묵는 느낌이었다.
파트너가 유명하다는 '스파 테라피 목록'을 찾아보았는데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일단 맥주탕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는 맥주 스파부터 이산화탄소를 피부에 주입한다던가, 사람을 세워놓고 찬물과 따뜻한 물을 번갈아 뿌리는 ‘테라피’, 다리에 진공 바지 같은 걸 입고 러닝머신을 달리는 ‘테라피’ 등 4-50가지의 이런 이상한 ‘테라피’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냥 물에 들어가서 놀고 싶었을 뿐인데 가장 괜찮아 보이는 스파는 어쩐지 임시 휴무였다.
다음날 숙소에서 가까우면서 꽤 오래전에 지어졌다는 오래된 건물의 스파에 갔다. 가격을 보는데 1시간(미네랄 탕 15분+그냥 차가운 물 수영장, 사우나 이용)에 20유로였다. 세상에 이런 바가지가 있나... 조금 놀라서 일단 밖에 나와서 더 알아보고는 뭐 그닥 나은 선택지가 없어 그냥 들어갔다. 사우나에 잠깐 있다가 크지 않은 수영장에 들어갔다. 그나마 좋았던 점은 그 안에는 우리뿐이었고, 얇고 긴 원기둥 모양의 도구로 수영 연습을 했다는 것. 직원은 약 20분 전에 우리를 불러 수영복을 벗고 미네랄 탕에 들어가라고 했다. 따뜻한 물에서 놀고 싶으면 독일 대중탕에 가는 것이 훨씬 낫다.
길거리에서 파는 컵은 생각보다 아주 예쁘진 않았다. 마음에 드는 걸 찾을 때까지 여러 가게를 돌아다녔다. 체코 전통 느낌은 없지만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적절한 크기의 컵을 찾았다. 도시를 걸으며 마주치는 온천수를 담아 마셔보았다. 온천수는 대부분 꽤 따뜻한 편이라 겨울에 특히 따뜻하고 좋을 것 같다. 온천수는 짭조름하고 쇳물 맛도 나고 비리기도 했다. 여러 온천수를 정말 맛만 보았는데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중 뱀 모양 조각에서 나오는 온천수는 인기가 정말 많아 페트병으로 담아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 물 역시 다른 것들이랑 맛은 비슷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슨 황제가 이곳의 온천수에 다친 다리를 담그고 치유된 것을 시작으로 이곳을 치유 온천의 도시로 만들어 유럽의 여러 유명인들도 이곳을 자주 찾았고, 체코에서는 환자들에게 이곳의 온천수 몇 번을 마시라거나 미네랄 탕에 들어가라는 처방을 하기도 한다고.
카를로비 바리에 딱 하나 있는 비건 식당은 임시휴업 상태라 비건 옵션이 있는 인도식당에 갔다. 점심시간이 좀 지나 한가했고, 날씨가 좋아 바깥에 앉았다. 남자 직원에게 메뉴의 인도 망고주스가 비건이냐고 물었더니 그걸 자기가 어떻게 아냐고 인도에서 주스 팩이 온다고 했다.
???
포장되어 있는 거면 밖에 성분표가 있을 테니 그걸 읽어보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알았다고 했지만 결국 우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아무 소식도 없었다. 음식 자체는 맛있었고 밥도 많이 줬지만 다 먹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파트너가 들어갔는데 휴대폰으로 무슨 영상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밥을 먹고 주변 공원을 조금 걷다가 근처의 큰 마트에 가서 장을 보았다. 마트가 커서 그런지 비건 식품, 글루텐 프리 식품이 꽤 많았다. 그렇지만 채소와 과일은 역시 그저 그랬다. 쌀국수면이랑 양념된 템페, 채소 몇 가지, 견과류, 글루텐프리 맥주, 감자칩 그리고 벤엔 제리 비건 브라우니 아이스크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낮잠을 잤던가?
우중충할 거라던 날씨 앱의 예상과는 달리 거의 매일 날씨가 쨍하니 좋았다. 다음날에는 반대편으로 걸었다. 그 끝자락에는 007 영화 촬영지였던 유명한 호텔이 있고, 그 앞으로 펼쳐진 예쁜 건물들에는 카페, 레스토랑, 가게들이 많았다. 그중 2층 테라스 자리가 있는 코끼리 카페에 앉았다. 커피랑 직접 짠 오렌지주스를 주문하고 주변 풍경과 사람들을 구경했다.
마지막 날엔 체크아웃을 하고 로켓이라는 곳으로 가면서 ‘메가 스토어’라고 불리는 엄청나게 큰 마트에 갔다. 크기가 커서 그런지 꽤 많은 비건과 글루텐프리 식품이 있어 몇 가지를 집었다. 포장되지 않은 각종 냉동식품을 직접 가져온 용기에 구매할 수 있는 코너를 처음 보았다. 역시 온갖 종류의 빵, 술이 많았는데 식품코너를 아무리 둘러봐도 물이 없어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저 반대편을 가리켰다. 청소용품, 식물, 의류, 주방용품을 지나 물과 음료가 있는 곳이 나타났다. 한국의 대형마트를 한 층에 다 갖다 놓은 모양이라고 할까...?
로켓은 작은 섬 같은 모양의 땅을 둘러 물이 흐르는 곳인데 그 안에 마을과 성이 있어 들어가 구경했다. 성이면서 감옥이었던 곳이라 지하로 내려가면 감방과 실제로 행해진 장소에 만들어진 고문 박물관이 있다. 로켓에 가며 텅 빈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나갈 때 나무판에 적힌 가격의 거의 두 배를 뜯겼다.
결론.
카를로비 바리는 자연 속 색색의 건물이 아름답고 걸어 다니며 보기 좋다.
온천수 마시는 컵 기념품이 예쁘다. 온천수는 많이 못 마실 맛.
물가는 저렴한 편이지만 관광객 바가지도 많다.
비건으로 먹을 곳이 은근히 있긴 하지만 외식과 장보기가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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