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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Aug 01. 2022

[한국] 서울은 과연 ‘비건 천국’인가?

언젠가 서울이 세계 비건 친화도시 순위의 상위권이라는 믿기지 않는 기사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해피카우HappyCow앱으로 보는 서울은 무려 베를린만큼이나 비건 식당이 많은 듯하고, 얼마 전까지 나는 비건이 되고 서울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 없었다. 2020년 한국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비건 식당이라고는 러빙헛 하나뿐인 대전을 떠올리며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도 서울은 비건 천국이겠지...?’


주로 집에서 지내며 인터넷에서 건조 콩고기와 매일두유를 대용량으로 주문하고, 목요일마다 집 근처에 열리는 장에 가 채소와 과일을 사서 매일 요리하고, 엄마가 해준 맛있는 비건 김치를 먹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종종 집에서 멀지 않은 비건 뷔페(거의 유일한 외식장소였던 비건 뷔페는 코로나의 여파로 문을 닫았다)에 가던 나는 세상을 잘 몰랐다. 그리고 최근 서울, 부산, 제주, 전주, 대전에서 약 2개월을 지내며 뼈저리게 느낀 점은 이렇다. 


그나마 ‘비건 친화적’이라는 서울 역시 ‘비건 천국’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서울에 비건 식당이 많은 건 사실이다. 맛있고 멋있는 곳도 정말 많아 미처 다 가보지 못한 곳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대부분 이태원이나 망원처럼 있는 곳에 주로 모여 있는 걸 제외하면 나머지는 따로따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운영 시간이 ‘주말만’ 혹은 ‘점심만’인 곳들도 많다. 방문 전에 미리 예약하거나 전화나 SNS로 영업 여부를 확인해야 헛걸음을 막을 수 있는데, 어느새 영업을 종료한 비건 식당도 많다. 대부분의 비건 식당은 양식 전문이라 한식을 먹고 싶다면 점심때 인사동에 가야 한다.


일반적으로 메뉴판에는 요리 이름과 가격을 제외한 재료에 대한 설명 따위는 없어 무엇이 들어가는지 일일이 물어야 하는데, 아무리 조심스레 물어도 싫어하는 기색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고, 아무래도 새로운 개념인 ‘비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 한 번은 ‘마약김밥’에 무엇이 들어가냐고 물었더니 참치랑 ‘야채’가 들어간단다. 야채는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다시 물었더니 ‘단무지나 당근 뭐 그런 거...’라고 하셨다. 그럼 참치를 빼고 ‘채소만’ 넣고 싸 달라고 요청한 김밥 안에는 햄, 맛살, 어묵 계란이 들어있었다.


주변에 비건 식당 앱에 올라와있는 식당이 하나도 없어 거리를 둘러보며 필사적으로 찾은 ‘곤드레밥 정식’이 있는 식당에 들어가 곤드레밥 정식에 무엇이 나오냐고 물었다. 된장국은 육수로 끓이는데 맹물로 끓여줄 수 없다고 했다. 반찬에도 젓갈이나 액젓, 계란이 들어가면 빼 달라고 했더니 직원분은 의아한 눈초리로 "그럼 보리차는 괜찮냐"라고 물었다. 나름 신경 써 갖다 주신 반찬에는 어포 볶음과 어묵이 들어간 잡채가 있었다.


집이나 직장 근처에 익숙한 식당이 있다면 굳이 매번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도 주문 가능한 메뉴가 무엇인지 알 텐데 여행하며 매일 매끼 이렇게 물어보는 일이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어느 날은 비건 옵션 식당에 전화했는데 ‘무슨 비건’이냐고 되묻는 질문에 당황해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냥 들어가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메뉴만 보고 주문하면 되는 비건 식당이 너무 절실했다.


대부분의 카페에는 우유 대체 식물성 음료가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을 위한 음료 또한 많이 부족했다. 한 번은 미숫가루가 있는 카페에 갔다. 우유 대신 물로 미숫가루를 타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자꾸 그러면 가루가 잘 섞이지 않는다느니, 멸균우유를 사용한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 덩어리가 있어도 괜찮으니 물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직원은 끝까지 삐죽거렸지만 미숫가루에 뭉친 부분은 없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길거리를 걸을 때면 식당 밖에 덕지덕지 붙은 ‘고기’ 사진, 수족관 안의 병들고 다친 물살이들, 벽을 활짝 열고 ‘고기’를 굽는 식당, ‘삼겹살거리’ 같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정육식당들, 간판에 그려진 웃는 얼굴의 캐릭터로 묘사된 잡아먹히는 동물들을 마주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바닷가 근처에는 흉물스러운 꽃마차에 속박된 아파 보이는 말들이 있다. 각종 야생 혹은 희귀 동물을 ‘체험’할 수 있는 동물 카페가 많다. 아직도 펫숍은 성행해 유리 벽안에는 엄마젖도 떼지 못한 아기동물들이 갇혀있다. 


과연 외국인 비건 친구에게 서울을 추천할 수 있을까?


그래도 최근에는 대형마트에 비건 식품을 따로 모아놓는 부분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점점 더 많은 비건 식품과 비건 식당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비건 식당은 하나인 대전에도 비건으로 먹을 수 있는 곳과 비건 베이커리는 많이 늘었다. 예전에 비하면 ‘비건’이라는 단어를 희미하게라도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름에는 먹을 게 없을 때 콩국수를 먹을 수 있어 다행이다. 콩국수와 초당순두부를 먹으러 간 서울의 한 두부전문점의 자주 오는 손님 중에 비건이 있어서 잡채 반찬에 들어가던 고기를 이제는 빼고 만든다는 사장님, 비건으로 가능한 메뉴가 많으니 소문을 내달라는 사장님, 액젓이 들어간 김치를 빼 달라고 했더니 도토리묵을 따로 챙겨주신 사장님, 비건 옵션에서 비건 식당으로 변경한 식당처럼 기분 좋은 소식도 있었다.


직접 장보고, 온라인으로 비건 가공식품을 주문해 요리해먹고, 도시락을 싸다닌다면 대부분의 날들은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 시간과 여유가 모두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외식이라도 해야 할 때가 오면 또 장벽에 부딪히고 만다. 우리 사회에는 비거니즘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개선과 모든 식당에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비건 메뉴 도입이 절실하다.







이렇게 한국을 경험하고 나니 그럼 다른 나라는 실제로 살아봤을 때 과연 얼마나 비건 친화적일까? 하는 의문으로 제가 경험한 독일 그리고 네덜란드, 영국, 말레이시아, 대만, 캐나다에 계신 분들의 도움을 받아 '비건 체감온도' 콘텐츠를 투룸매거진 https://www.2roommagazine.com/  8월호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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