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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Jan 17. 2022

[독일] 비건 천국 베를린, 2021

두 번째 베를린 여행.

혼자 갔던 첫 여행은 사전조사 같은 것이었고, 파트너와 함께 했던 이번 여행은 먹부림 비건 투어에 한층 가까웠다. 어둡고 칙칙한 독일 겨울이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베를린 여행을 계획했다. 지난여름 명상센터에서 봉사하며 만났던 사람들과 베를린에 사는 파트너의 친구, 함께 일하는 온라인 매거진의 유진 에디터를 만나기로 했다. 여행 몇 주 전, 갑자기 심해진 코로나 상황 때문에 ‘설마 못 가는 건 아니겠지?’ 염려도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지인들로부터 맛집 추천을 받고, 해피카우 앱으로 비건 식당을 찾고, 비건 식당이 많은 동네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그곳에 처음으로 갔던 2019년 여름에도 비건 식당이 많았는데 그 사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베를린은 넓고, 비건 식당은 많다. 비건 식당을 전부 가보고 싶다면 일주일로는 부족하다. 대신, 비건 맛집을 골라 찾아다닐 수 있다. 태국이나 중국음식이 먹고 싶을 때 비건 옵션을 주문하는 대신 비건 태국 식당에 가고, 비건 중국 식당에 갈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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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베를린 중앙역에 도착해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면은 조금 덜 익은 채로 불어서 구겨져 있었고, 국물은 짭짤했지만 담백한 두부와 다른 재료랑 잘 어울렸다. 독일답지 않게 체크인 데스크가 따로 없이 온라인 체크인을 하는 숙소 때문에 정해진 체크인 시간에 딱 맞추어 이메일로 주는 비밀번호로 들어가야 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쉬고 지하철을 타고 크로이츠베르그kreuzberg에 가서 카티를 만났다. 그 동네 근처 비건 식당을 검색해 굿모닝베트남Good Morning Vietnam(Vegan)으로 갔다.


식당을 찾아 건물 사이로 들어가는 길목이 익숙했다. 2년 전에 왔던 곳이었다. 백신증명서를 보여주고 들어가 2년 전에도 앉았던 창가 구석자리에 앉았다. 그땐 쌀국수를 먹었는데, 오늘은 점심에 쌀국수를 먹었으니 밥을 먹을 작정으로 메뉴판을 노려보았다. “소스가 적혀있지 않네요?” 그 페이지의 메뉴엔 코코넛 밀크가 들어간다고 했다. 다른 소스의 메뉴 중 밥이랑 먹는 걸 물었더니 뒤쪽 페이지를 알려주셨다. 비건 오리모양과 같이 나오는 파인애플이 들어간 채소 볶음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비건 오리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파인애플이 들어가면 상큼해서 좋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한입을 먹었는데 내가 아는 맛이었다. 탕수육 소스! 탕수육이 원래 베트남 음식인 걸까?


저녁을 다 먹고는 근처에 있는 베간즈Veganz 비건 슈퍼마켓에 갔다. 2년 전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들렀던 곳인데 그대로였다. 카티에게 라푼젤rapulzel 프랄린, 그리고 베고vego 초콜릿을 추천해주고, 우리 동네에선 못 본 비오라이프Violife 갈아먹는 파마산, 모차렐라 치즈, 그리고 참치캔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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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주변에 있는 카페에서 과카몰레가 올라간 베이글을 사 먹은 다음 트램을 타고 자연사박물관에 갔다. 지하로 내려가 부피가 큰 외투를 맡겼다. 커다란 공룡 뼈가 무시무시하게 전시된 메인 입구부터 돌아보았는데, 아득하게 오래된 뼈 조각조각을 맞춰놓은 모양이 신기하고,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몸집을 가진 동물의 머리가 저렇게 작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 어떤 뼈 조각은 인조 티가 났다. 독일어로 쓰인 설명을 읽은 파트너가 설명해주길 과학자들은 몸집이 너무 큰 이 공룡은 피를 온몸으로 보내기 위해 아마 심장을 네 개나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고.


뉴욕과 런던의 자연사박물관에도 가보았지만 비건이 되고는 박제된 동물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있다. 살아있는 동물들을 감금하고 전시하며 계속해서 고통받게 하는 동물원보다는 동물을 한 번만 죽여 박제하니 나은 것일까? 내 눈앞에 있는 동물들이 대부분 사냥으로 잡혀 죽임을 당한 것이겠거니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물속 동물들은 물 밖에서의 관리가 어렵다 보니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 같아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유리병 안 누런 액체에 담겨 색이 바랜 해양 동물들을 마주한 순간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시체보관소 같았다. 이곳엔 아이들이 많이 오는데. 이런 끔찍한 걸 떡하니 보여주고 있다니... 동물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입구 근처의 광물과 원석 전시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팔과 그 외의 예쁜 돌들을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그곳을 나왔다. 자연사박물관에 가본 적이 없다는 파트너 때문에 간 건데 둘 다 앞으로는 굳이 더 안 가도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점심을 먹으러 얼마 전 새로 생긴 비건 정육점Die Vetzgerei(;독일어로 정육점은 Metzgerei, 정육점에서 육류나 가공육이 포함된 식사도 가능하다)으로 향했다. 세련된 검은색 내부, 유리장 안에는 여러 가지 비건 대체육과 샐러드가 보였다. 비건이 되기 전에도 가공육은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독일 비건 정육점에 왔으니 소시지와 감자 샐러드를 주문해야 할 것만 같았다. 맛은 대부분의 독일 식당이 그렇듯 대체로 짜고 강렬해 밥 한 공기를 추가하고 싶었지만 아마 독일인이나 짜게 먹는 사람들의 입맛에는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직원이 친절했고 평일 점심이라 그런가 매장도 한가했다.


근처 번화가를 걷고, 뜨개 가게를 구경했는데 몇 가지 면사를 제외하면 죄다 동물 털이거나 합성섬유로 된 실 뿐이었다. 베를린에도 비건 뜨개 가게는 없었다. 다리도 쉬고 간식도 먹을 겸, 비건 도넛 매장에 들어갔다. 베를린에 매장이 몇 곳 있는 도넛 가게인데 도넛 종류가 꽤 다양하다. 겨울이라서 독일의 크리스마스 과자 맛의 도넛도 많았다. 네 가지 도넛을 고른 다음 두 개는 매장에서 먹고 두 개는 포장했다. 티라미수 맛 도넛을 먹었는데 한 개를 다 먹으니 당 충전이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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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신발가게+비건 초밥+비건 슈퍼마켓이 한 곳에 모인 건물이 있는 프리드리히샤인Friedrichshain에 갔다. 파트너의 겨울 신발을 보려고 신발가게에 갔는데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해서 아직 오픈 준비 중이었다. 옆에서 조금 기다리니 주인장은 창고같이 모여 있던 진열대를 이리저리 밀어 매장으로 만들었다. 생각보다 신발이 정말 많았고, 가방이나 모자도 있었다. 파트너가 마음에 들어 하던 신발은 사이즈가 없어서 결국 귀를 덮는 따뜻한 비니를 사고 나왔다. 모자를 찾을 때에도 괜찮다 싶으면 꼭 양털이 들어가 있어 비건 매장에 와서야 살 수 있었다.


신발가게 바로 옆에 있는 비건 일식당 시크릿가든Secret Garden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우리가 타고 내린 트램 역과 분주히 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된장국을 먹고 싶었는데 그건 안 판다고 했다. 여기 운영자가 일본인이 아닌가 보다. 주문한 튀긴 만두와 초밥 롤 세 가지가 예쁘게 담겨 나왔다. 트레이 한가운데 드라이아이스가 담긴 작은 컵에서 부글대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흘러나왔다. 사진을 찍으라고 이렇게 주는 건가. 초밥 롤은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았다. 독일에는 초밥 롤을 통째로 튀기는 템푸라 롤이라는 메뉴가 있는데 이 집 템푸라 롤은 특히 튀김옷도 얇고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 예약한 시간에 맞추어 미술관 쪽으로 갔다. 코로나가 시작되고는 베를린의 대부분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미리 특정 시각에 예약을 하고 티켓을 사야지 들어갈 수 있었다. 전시관 근처의 공원을 조금 걸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휑하고 추웠는데 공원에서 전시장까지 지름길이 없어 빙빙 돌아서 가야 했다. 물가 근처에 있는 매점에서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한잔 사서 나누어마셨다. 


여섯 가지 전시는 각 전시실 하나씩을 차지해 음악과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과 조형물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각 방을 옮겨가며 가만히 소리와 빛이 변하는 것을 구경하기만 했는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지막 방은 특별한 게 없고 사람들이 밖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서 건너뛰었다. 다시 프리드리히샤인으로 돌아가 지난 여행에 못 갔지만 모두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천하는 1990 Vegan Living에 갔다. 역시 사람이 많았지만 실내도 그만큼 넓었다. 밥그릇 같은 접시에 담긴 메뉴 여러 가지를 시켜서 먹는 타파스 형식이었다. 파파야 샐러드 솜땀, 레드 커리, 만두튀김, 완탕 튀김, 채소볶음과 밥 두 공기를 주문했다. 튀긴 만두보다 찐만두가 더 좋은데 찐만두는 주문이 안 된다고 했다. 사실 우리가 주문한 메뉴 가운데 하나가 누락되었지만 일단 나온 것을 다 먹으니 충분히 배가 불렀고, 특히 솜땀이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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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근처의 비건 중국음식점이 문을 여는 시각에 맞추어 갔다. 해피카우 앱에서 본 대로 모던한 인테리어에 식물이 많아 보기 좋았다. 메뉴판에는 맛보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 나는 마파두부를 주문했다. 간이 세긴 했지만 밥에 조금씩 덜어서 먹으니 맛있었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와 유아 차에 타고 있는 아기와 함께 온 아빠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한테는 이탈리아어로 말을 하고 주문은 독일어로 했다. 독일에는 엄마 없이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아빠들이 많이 보인다.


밥을 다 먹고 나와 유일하게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미술관으로 갔다. 자연 사진 수만 장을 입력하고 그 사진에 기반해 AI가 만들어내는 예술작품이었는데, 전시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예약을 안 해도 돼서 그런지 줄이 길었다. 뉴욕도 아닌데 이렇게 줄을 서는 게 오랜만이라고 했더니 파트너는 코로나 이전엔 베를린 클럽에 들어가려면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건 일도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줄에서 기다렸고, 마리암이 때맞춰 도착했다. 마리암도 명상센터에서 만난 나의 첫 조지아인 친구인데 베를린에서 벌써 십 년을 넘게 공부하고, 일하고 살고 있다. 최근 영주권을 얻었다고 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는데 커다란 전시 공간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 AI가 그리는 작품 영상이 계속해서 천천히 움직이며 변했다. 꽤 오래 화면을 지켜보았는데 계속 다른 색상과 모양이 나오는 것으로 보았을 때 아마 매번 다른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았다. 보통 이렇게 커다란 화면은 큰 텔레비전 정도 크기의 화면 여러 개가 붙어있는 모양이었는데 그 거대한 영상이 나오는 화면이 이음새 없이 하나의 스크린으로 보였다. 빔을 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커다란 하나의 화면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 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큰 텔레비전 화면 크기의 전시와 미술관 샵을 보고 나와서 프리드리히샤인 쪽으로 걸었다. ‘힙한 동네’로 유명한 프리드리히샤인은 맛있다고 소문난 비건 식당이 많이 몰려있다. 이날 열리고 있던 길거리 마켓 사이로 걷기도 했는데 그중 한 부스에는 김치나 비빔밥 소스를 팔고 있었다. 강가를 걸을 땐 강 주변에 텐트가 여럿 쳐 있는 것을 보았다. 노숙자들이 그렇게 지낸다고 하는데 너무 추워 보였다. 공원도 가로지르고... 이날 참 많이 걸었다. 마침내 1990 Vegan Living과 꽤 가까운 곳에 위치한 Li.ke라는 비건 태국 음식점에 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태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도 많고, 태국어로 이야기하는 직원들의 말소리를 들으니 꼭 태국에 온 것 같았다. 자리를 안내받고 앉아 메뉴를 보는데 여기도 타파스가 주 메뉴인 듯 일 인분 양의 메뉴는 종류가 많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팟씨유는 메뉴판에 없어서 태국식 볶음밥 카오팟을 주문했는데 그것보단 사이드로 시킨 청경채 볶음이 맛있었다. 마리암이 주문한 메뉴에 있던 비건 계란 프라이를 나눠주어 먹었는데 나름 비슷해 신기했다. 파트너가 주문한 팟타이도 태국의 맛이 났지만 조금 간이 셌다. 내 입맛이 너무 밍밍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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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우리가 예약한 숙소 근처에 있는 파트너 친구 토비네 집으로 브런치 초대를 받았다. 토비네 집 바로 앞에는 토요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오래된 건물의 높은 천장과 이곳저곳에 위치한 식물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짧게 집 구경을 하고 식물을 둘러보았다. 선인장과 몬스테라도 있고, 우리 집에도 있는 스킨답서스가 아주 길게 자라 있었다. 친구의 파트너 폴라랑 식물 이야기, 강아지 이야기를 했다. 폴라네는 양도받아 키우는 강아지가 있는데 그날은 전 가족의 집에 가있어서 아쉽게 만날 수 없었다. 폴라는 토비가 집에 식물이 너무 많다고 한다고 했다. 내가 식물이 너무 많은 게 어딨냐고 했더니 폴라가 맞장구를 치며 그래서 토비의 생일선물, 크리스마스 선물로 식물을 줘서 그런 말을 못 하게 한다고 했다. 베를린에 있는 식물 가게(Der Holländer Pflanzencenter) 추천을 받았지만 아쉽게 가지 못했다.


세 사람은 커피를, 나는 라벤더 차를 마셨다. 차가 들어있는 티팟이 물건이었다. 유리로 된 원기둥 모양, 입구를 막는 실리콘마개, 원하는 만큼 우러났을 때 물에서 꺼내 올려놓을 수 있는 찻잎이 들어있는 디퓨저, 차를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는 티라이트(작은 촛불)까지...! 이렇게 완벽한 찻주전자는 처음 보았다. 내가 감탄하며 티팟을 칭찬하니 파트너에게 친구가 구매 링크를 보내주었다. 브런치로는 샐러드와 비건 그릴드 치즈, 아침에 사 온 베를린에서 유명하다는 빵집의 시나몬 롤을 먹었다.


브런치를 먹은 다음 예술보다는 건축에 열정적인 건축가 토비가 가보고 싶다는 최근 몇 년간 리모델링을 해 얼마 전 재오픈을 한 미술관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뼈대와 천장은 금속이고 외벽은 유리로 된 미술관의 지하에는 그림과 영상, 조형물과 특별 전시인 미술관의 역사와 리모델링에 관한 설명 전시, 일층에는 모빌과 조형물이 있었다. 전시된 작품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미술관을 나와 저녁에 폴라가 베이비 시팅을 하는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비건 아시아 타파스 전문점 element five에 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향기로운 차 냄새가 났고, 내부는 조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촛불을 켜 두어 술집처럼 어두웠다. 여태까지 가본 아시아 타파스중 가격이 가장 저렴해 밥그릇 메뉴 하나당 3.9유로였다. 이렇게 저렴해도 되나 싶었다. 네 명이라 더 많은 종류를 주문할 수 있어서 좋았다. 찐만두, 튀긴 만두, 샐러드, 해초 샐러드, 튀긴 아보카도... 그리고 밥 한 공기씩을 시켰다. 어두워서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맛은 있었다. 부족하면 더 주문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토비와 함께 우리가 머무는 숙소와 토비의 집이 있는 프렌츠라우어 베르크Prenzlauer Berg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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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룸 매거진 에디터 분들을 만나기로 한 날. 유진님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마침 그 동네에 사는 혜원 님도 함께 오셨다. 일요일이라 식당들이 문을 오후 한 시 이후에 열어서 숙소 근처에 있는 비건 파티세리 겸 카페로 향했다. 크루아상, 빵 오 쇼콜라, 아몬드 크루아상, 피스타치오 크루아상, 브라우니... 등등 종류가 많았다. 한국인들이라 조금씩 맛보시라고 나누어먹었는데 혜원 님의 유자 크루아상은 상큼하고 달달했고, 유진님의 브라우니도 진하고 꾸덕했다. 내 피스타치오 크루아상은 견과류가 속까지 들어있어서 무게감이 있고 고소했다. 두 분은 커피를 나는 차이 라테를 마셨다. 혜원 님이 “아침부터 달달한 걸 먹으니까... 좋네요.”하며 스윽 웃으셨다. 최근에 독립출판 에세이집을 내신 혜원 님은 내가 매거진 미팅 때 혜원 님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전자책 언제 나오냐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시고 책을 선물로 주셨다. 감동... 책 사이즈가 마침내 외투 주머니에 꼭 맞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가 밥을 먹으러 또 가까이에 있는 비건 아시아 식당 the Future is up to you에 갔다. 나는 혼자만의 ‘식물을 잘 키우는 식당은 음식 맛도 좋다’는 어떤 기준이 있는데 내부가 식물로 가득가득해서 기분도 좋았다. 특히 마늘 간장 소스 같은데 짭조름하고, 얇고 쫀득한 세이탄이 잘 어우러진 볶음 우동이 정말 너무 맛있어 레시피를 물어보고 싶었다. 만족스러운 만남을 마치고 파했다. 숙소에 돌아와서 파트너에게 포장해온 크루아상이랑 빵 오 쇼콜라를 건넸다. 빵 오 쇼콜라를 먹는 파트너한테 혜원 님이 주신 책도 자랑하고 놀다가 버거를 먹으러 나갔다.


트램을 타고 이리저리 다닐 때마다 눈에 띈 초록 장식에 네온사인으로 식물성 버거!라고 쓰인 패스트푸드 가게 Vedang에 갔다. 새로 생긴 매장이어서 그런가 다들 집에서 시켜먹는 건가 휑했다. 나는 치킨 맛 버거, 파트너는 비욘드 버거, 감자튀김, 할라피뇨 치즈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사람이 너무 없어서 급하게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으니 목이 말라 아이스티를 따로 주문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세트로 시킬걸. 아무튼 버거는 먹을 만했다. 메뉴의 임파서블 버거 패티 출시 예정도 눈에 띄었다. 아이스티를 마시다가 실수로 쏟았는데 직원들은 별 관심도 없이 오케이 그랬다. 우리 쪽으로 올 생각이 없어 보여서 티슈를 가지러 갔다가 <구글에 리뷰를 작성하면 아이스크림이나 너겟을 줍니다>라는 광고를 봤고, 파트너가 쓴 후기를 보여줬더니 “매장에 아이스크림 기계가 아직 없으니 아이스크림 말고 다른 거 아무거나 말하면 주겠다.”라고 해서 쏟은 아이스티를 다시 받아서 나왔다.


7


얼마 전 투룸 매거진에 나온 솦숲비누를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었더니 유진님이 알려준 팝업 매장을 찾아 멀리 서쪽 무지 플래그쉽 매장으로 갔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로질러 무지 매장에 들어갔는데 문구류 종류가 별로 없어 실망했다. 맨 위층에 한국 아티스트 팝업 플리마켓이 있었다. 솦숲비누를 찾아 비누가 너무 예쁘고 이걸 사려고 여기까지 왔다며 얘기하고 있으니 유진님이 도착했다. 뒤에 있는지 몰랐는데 강아지 우주가 상자 안에서 자고 있었다. 작게 말했는데도 제 이름을 알아듣고 번쩍 일어나는 뽀글뽀글한 우주를 위해 무지 직원들이 상자로 집을 만들어줬단다. 유진님이랑 하나님이랑 수다를 떨다가 파트너네 할머니랑 엄마한테 드릴 비누와 우리가 쓸 비누를 사서 나왔다.


근처에 초밥을 파는 비건 식당이 있어서 갔는데 들어가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식당 인테리어긴 한데 가족들끼리 취미로 하는 느낌이었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맛있지도 않았다. 쌀국수에 들어있는 채소는 슈퍼에 파는 냉동채소 같았고, 루꼴라 크림치즈 초밥 롤은 상추만 쪼끔 넣고 돌돌 만 미니김밥 여섯 조각이 나왔다. 그게 한국 돈으로 오천 원쯤 했다. 전체적으로 여태까지의 비건 식당에 비해 성의는 없는데 가격은 비쌌다. 기껏 찍은 식당과 음식 영상을 지웠다. 시간을 되돌려 프리드리히샤인 비건 식당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동네를 조금 걷다가 숙소로 돌아왔는데 멀리까지 가서 맛없는 걸 먹어서인지 힘도 없고, 샤워를 하고 나니 다시 밖에 나가기가 싫어져 지난번 베간즈에서 사 온 비건 참치캔이랑 동네 유기농 마켓에 물 사러 갔다가 집어온 브로콜리를 데쳐 뻥튀기 같은 라이스 케이크를 먹었다. 내일은 꼭 맛있는 걸 먹고 집에 가자고 다짐하면서.


8


짐을 싸고 숙소를 조금 정리하고 나와 KÄYK케이크에 갔다. 지난번 피스타치오 크루아상은 좀 무거운 느낌이 있고 달아서 오늘은 세이보리 롤과 녹차라테를 마셨다. 세이보리 롤은 버섯과 양파, 향신료가 페이스트리 사이에 들어있었고, 녹차라테는 너무 달지도 묽지도 않고 딱 적당히 내가 원하는 맛이었다. 우리는 커피 기계와 빵이 있는 계산대와 부엌 사이의 안쪽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직원이 색깔도 모양도 예쁜 케이크가 담긴 통을 앞쪽으로 옮겼다. 저건 먹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기차 시간 때문에 죄송하게도 다른 손님 때문에 바쁜 직원을 옆에서 귀찮게 했는데도 친절하게 일일이 설명을 해주셨다. 헤이즐넛 초콜릿, 세 겹으로 된 케이크. 천국의 맛이 이런 것일까? 케이크가 나오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아직 안쪽이 덜 녹아 아이스크림 같기도 했지만 예술작품의 형상을 한 황홀한 맛이었다. 



https://youtu.be/3WrtBduy4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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