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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Aug 18. 2021

[독일] 라이프치히, 2021

지난가을 독일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봉쇄(Lockdown)가 다시 시작되었다. 통금이 생기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정해지고, 다른 지역에 갈 때에는 타당한 이유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 식료품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못 열고, 식당의 음식은 포장과 배달만 가능했다. 내가 가진 체류 허가증으로는 독일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지만 일 때문에 잠깐 시내에 가는 것조차 불안했다.


겨울이 지나고 본격적인 백신 접종이 시작되어 감염자와 사망자가 줄고, 곧 다가오는 선거에서 여름을 어떻게든 즐기려는 독일인들의 표를 받기 위해 봉쇄가 하나둘씩 해제되었다. 그럼에도 한동안 식료품점에서 장보기, 산책과 야외 암벽등반, 정원용품 가게에서 식물과 흙을 사 오는 정도의 외출만 하며 몸을 사리며 지냈다. 


오랜만에 명상센터에 봉사 신청을 하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라이프치히에 들러 구경을 하고 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명상센터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늘 그렇듯 너무 좋은 사람들과 매일 세 시간씩 명상을 하고, 잡초를 뽑고, 요리와 빨래, 청소도 했다. 일주일간의 봉사를 마치고 다음을 기약하며 라이프치히로 향했다. 약 두 시간이 걸려서 라이프치히 시내에 도착했다.


1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고 일을 했던 것이 누적되어 몸이 피로했다.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숙소에 체크인 시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다행히 들어갈 수 있었다. 샤워를 하고 누워서 쉬다가 배가 고파져 숙소에서 1분 거리에 있는 비건 초밥가게로 걸어갔다. 식당은 오는 길에 지나쳤던 베트남 음식점이 있는 코너 옆에 있었는데 간판이 따로 없다. 여기가 맞는지 살피다가 직원의 유니폼과 가게 유리문에 붙어있는 가게 이름을 보고 안심하며 들어갔다. 안타깝게도 ‘일반’ 초밥가게에는 비건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마키나 사이드 디쉬 정도가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두 비건인 화려한 메뉴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전부 다 한 번씩 먹어보고 싶었다. 그중 두부튀김과 몇 가지 초밥 롤을 먹었다. 역시나 아주 맛있었다.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Niiko - Sushi x Vegan

Nikolaistraße 40, 04109 Leipzig


밥을 다 먹고 나와서 식당과 이어진 번화가를 걸었다. 낯선 도시 산책이 오랜만이었다. 이 느낌이 그리웠다. 둘러보기에는 재미있고, 귀엽고 예쁘지만, 비싸고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파는, 그런 가게가 라이프치히에는 꽤 많았다. 두 번째로 들어간 가게에서 그동안 사려고 벼르고 있던 소스볼 두 개와 뚜껑이 있는 작은 도자기로 된 소금 통을 샀다. 엽서도 몇 개 집었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내키는 가게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번화가를 구경하고는 군것질거리를 사러 대형마트가 있는 쇼핑몰에 들어갔다. 가는 길에 있던 주스 가게에서 토마토와 초록 채소가 들어간 스무디를 하나 사 먹었는데 그냥 그랬다. 차라리 물을 마시는 것이 나을 뻔했다. 마트에 가는 길에 있던 유기농 슈퍼마켓을 발견하고 목적지를 바꿔 복숭아와 자두, 비건 크루아상 세 개, 손질된 아티초크, 막대 모양의 크래커 따위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2

어제 사온 비건 크루아상과 과일로 아침을 먹고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여행을 할 때는 미술관 개장 시간에 맞춰 들어가 다리가 아파질 때까지 내 마음대로 해석하며 구경하고 마음에 들었던 작품의 엽서를 사고 나오곤 했다. 표를 살 때 추천받은 대로 맨 위층에서부터 내려오면서 관람을 했다. 커다란 사진도 있었고, 여러 그림과 몇몇 조각 작품도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 중간에 쉬기도 하면서 지하의 전시까지 봤다. 코로나 때문인지 미술관 숍 대신 티켓 판매대 옆에 있는 몇 가지 책과 엽서가 전부였다. 사고 싶은 엽서를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나왔다.


밖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방수가 되는 재킷의 후드를 쓰고 찜 해놓은 다음 비건 식당으로 걸었다. 커다란 파라솔이 펴 있는 식당의 야외 자리에 앉았다. 작은 새들이 콩고물 떨어진 것이 없나 의자 아래 주변을 돌아다니는 모양이 귀여웠다. 음료를 마시는 데 아무래도 쌀쌀해서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곧이어 주문한 춘권과 청경채 볶음 그리고 따뜻한 국물에 채소와 버섯, 구운 세이탄 세 조각까지 올라간 베트남 쌀국수(Pho)가 나왔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오후와 잘 어울렸다. 음식은 맛있었고 직원분이 정말 친절했다.


OUAI - Simply Vegan

Münzgasse 18-20, 04107 Leipzig


비도 오고 다리도 아파서 숙소로 돌아왔다. 방에서 쉬다가 옷을 갈아입고 지하에 있는 수영장에 갔다. 사실 이 숙소를 선택한 이유 하나는 수영장이었다. 물속이 추울 것 같아 옆에 딸려있는 작은 사우나에 먼저 들어갔다. 엄마를 닮아서 사우나나 찜질방을 크게 즐기는 편은 아니라 마지막으로 이렇게 뜨거운 방에 들어갔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숨을 쉴 때마다 뜨겁게 덥혀진 공기가 콧구멍과 폐를 공격하는 느낌이 들었다. 거꾸로 돌린 10분짜리 모래시계가 절반도 채워지기 전에 참지 못하고 나왔다. 아담한 수영장 안에는 이미 서너 명이 있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에서 겁먹지 않도록 헤엄 연습을 하고 싶었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다들 그저 물장구나 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수영장이 오랜만이라 좋았다.


물장구를 치고 나오니 배가 고파져 지나가다가 본 감자튀김 가게에 가고 싶었는데 검색해보니 이미 영업시간이 끝난 뒤였다. 대신 마트에 가서 몇 가지 초콜릿과 쿠키, 비건 치즈, 보리커피분말, 오트 밀크, 수박과 물을 사 와서 막대 모양의 크래커, 아티초크와 치즈로 허기를 때웠다. 


3

아침으로 수박과 보리 귀리 커피를 마셨다. 광장에는 금요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신선한 식재료와 꽃을 파는 시장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싱싱한 과일과 채소를 양껏 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라즈베리 한 작은 상자를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근처 벤치에 앉아 맞은편에 있는 꽃과 조각으로 장식된 커다란 분수 주변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그것을 먹었다.


광장 근처에서 눈에 띈 아는 맛 버거 가게에 들어가 비건 버거와 감자튀김을 시키고 싶은 마음을 참고 어제 미리 예약해 놓은 비건 식당 쪽으로 걸어갔다. 식당은 광장에서 남쪽으로 걸어서 약 삼십 분 거리에 있었다. 가는 길에 구경거리가 많았다. 얼핏 여기랑 비슷한 곳에 갔던 생각이 났지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베를린의 어떤 거리와 비슷했던가...


자리에 앉아서 메뉴를 보는데 비트루트로 패티를 만든 버거가 있었지만 감자튀김은 없었다.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지 못하고 키쉬를 시켰다. 물도 음식도 예쁘고 맛있었는데 다 먹고 나서도 계속 버거와 감자튀김이 생각났다. 가격은 다른 식당에 비해서는 조금 비싸지만 유기농 지역농산물과 모든 요리에 수돗물 대신 정수된 물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이해할 수 있다. 브런치로 유명한 곳이니 브런치를 먹으러 왔으면 더 좋았겠다 싶었다.


Symbiose - Café Restaurant Bio Vegan

Karl-Liebknecht-Straße 112, 04275 Leipzig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걸어가는 데 또 비가 내렸다. 공원에서 쉬면서 놀고 싶었지만 비가 꽤 내려서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도를 보다가 우연히 우리가 있던 곳과 숙소 사이에 있는 쫄깃한 화덕피자가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피자가게를 하나 찾고는 비건 옵션을 확인했다. 마르게리타 부팔리나(비건 가능)이라고 쓰인 메뉴를 주문하며 비건으로 해달라고 했더니, 부팔리나는 비건이 안되지만 비건 치즈로 변경해 줄 수는 있다고 했다. ‘그 매장의 메뉴를 보고 주문하는 중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아무튼 알겠다고 하고 비를 맞으며 식당에 도착했다. 픽업을 하는데 비건이 맞냐고 재확인을 하니 아니라고 당황하면서 다시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건 치즈가 없기 때문에 대신 루꼴라를 올려준다고 했다. ‘아니, 전화로 주문받을 때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지?’ 나는 이래서 가능하면 비건 식당에 간다. 좀 앉아서 기다리다가 피자를 받아서 숙소로 돌아왔다. 맛은 있었지만 여러모로 아쉬웠다.


피자를 먹고는 또 수영장에 내려갔다. 전날보단 사람이 적었다. 헤엄 연습도 조금 했다. 춥기도 했고 오늘은 어제 못 먹은 감자튀김을 꼭 먹겠다는 의지로 일찍 나왔다. 씻고 근처에 있는 <전 메뉴 비건 가능>이라는 입간판이 있는 감자튀김 가게로 갔다. 감자튀김과 비건 마요를 주문했다. 직원분이 감자튀김을 삼각 종이봉투에 담고는 마요를 뿌리는데 적잖이 당황했다. 마요네즈를 저렇게 많이요...? 말릴 새도 없이 이미 두 번째 감자튀김 위에도 마요네즈 산이 생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스위트 칠리소스는 안 시키는 건데... 맛은 있었지만 마요네즈가 너무 많아 느끼했다.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탄산음료까지 마셨다. 정크푸드가 먹고 싶던 식욕이 한 일주일치 정도 충족된 것 같았다. 물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Curry & Co.

Brühl 4, 04109 Leipzig


4

아침에 일어나서 냉장고에 있던 복숭아와 자두를 다 자르고, 보리커피를 마셨다. 짐을 챙겨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서 식물원에 갔다. 벽을 따라 걷던 중 입구를 발견하고 들어갔더니 대학교에서 연구용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었다. 꽃들이 대부분 시들하거나 이미 지고 씨앗을 맺고 있는 것이 더 많았다. 그러나 처음 보는 신기한 식물도 많았고, 식물 앞에 이름과 원산지를 표시해놓아서 좋았다. 열대식물이 있는 온실에도 가보고 싶었지만 온실 한쪽에 나비들을 잔뜩 가두고 전시하는 중이라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야외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왔다. 어제 느끼한 것을 잔뜩 먹어서 그런가 오늘은 쌀밥이 먹고 싶었다. 어제 간 비건 식당을 가는 길에 있던 베트남 비건 식당에 가서 덤플링, 춘권 그리고 밥에 두부와 채소볶음을 올린 볼을 시켜서 먹었다. 전화로 자리가 있는지 물어봤을 때에는 바쁘다는 식으로 말해서 기다릴 것을 예상하고 갔는데 조금 기다리니 야외에 앉을 수 있었고 음식도 빨리 나왔다. 음식이 맛있어서 만족스러워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An Chay - Vegan Diner

Karl-Liebknecht-Straße 1, 04107 Leipz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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