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씨유를 사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그리운 식당이 있다.
해외에서 유용하게 써먹는 해피카우앱이 태국에서는 종종 업데이트가 필요하거나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식당을 찾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핏사눌록이라는 도시에서 특히 그랬다. 휴, 구글 지도에 vegetarian이라고 검색했더니 숙소에서 도보로 9분 위치에 있다는 사진 한 장 없는 채식 식당이 나왔다. 타버릴 것 같은 강렬한 햇살을 맞으며 제발 식당이 있기를 바라며 식당 쪽으로 걸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싸와디 카~(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더니 안쪽에서 싸와디 카~하는 소리가 들리고는 환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가게 한가운데 있는 커다랗고 둥근 모양의 원목식탁에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선풍기를 틀어주었다. 선풍기 바람이 이렇게 반가운 적이 없었다. 한쪽 벽에 붙은 태국어 메뉴판을 구글 번역기 앱으로 스캔했다.
한참 팟씨유에 빠져 메뉴에 팟씨유가 보이면 꼭 팟씨유를 주문하던 시기였다. 환은 옆에서 우리가 메뉴를 고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팟씨유랑 솜땀을 달라고 했더니 부엌으로 가 요리를 시작했다. 곧 삼겹채 튀김이 올라간 두툼한 생 쌀국수 볶음이 담긴 접시가 식탁 위에 놓였다. 기름지고 짭짤하면서 면은 쫀득하고 튀김은 바삭했다. 감탄하며 알로이~ 알로이~(맛있어요!!) 외쳤더니 환이 캅쿤 카~(고마워요) 했다.
환은 숭덩숭덩 자른 용과가 담긴 접시를 우리 쪽으로 내밀었다. 이 더운 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볶음 국수에 시원 달콤한 과일까지 먹고 있으니 마치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온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얇고 작은 고추가 두 개 들어간 솜땀이 담긴 접시가 왔다. 식탁에 접시가 점점 늘어갔다. 맛이 조금 강렬하다고 생각하면서 용과랑 같이 먹었다. 그렇게 절반을 다 먹어갈 때쯤 환이 응? 얘네가 벌써 다 먹은 거야? 하는 표정을 지으며 식탁에 자른 양배추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양배추랑 같이 먹으니 간이 딱 맞았다.
요리를 마친 환은 우리 옆쪽에 앉아 태국말로 말을 걸어왔다. 앗, 잠시만요! 번역기 앱을 열었다.
<저는 매일 채식합니다> 오 그러시냐고, 우리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채식으로 밖에서 사 먹기 힘들죠?> 아까 채식 식당을 못 찾고 잠시 스트레스받다가 이곳을 찾은 게 생각났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말해요, 만들어줄게요> 감동의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감사하다고, 해주신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했다.
환은 옆에 있던 바나나 튀김이 담긴 접시를 우리 식탁에 놓았다. 조금 식었지만 달달하고 고소했다. 얼마 전 편의점 음식으로 저녁을 때워야 했던 날들을 기억하며 당장은 배가 불렀지만 저녁에 먹을 케일 볶음과 밥을 포장하고, 비건 라면을 두 개 달라고 했다. 매운맛, 안 매운맛 두 가지가 있어서 하나씩 달라니까 매운걸 하나 더 주셨다. 아니 자꾸 이렇게 퍼주시면 뭐가 남나요... 인사하고 걸어가는데 다시 부르더니 날도 더운데 걸어가냐고, 택시 불러줄까요? 물었다. 택시는 안 탔지만 그의 친절함에 한동안 마음이 따뜻했다.
두 번째 방문
다음날엔 다른 방향으로 돌아다니느라 못 가고 그다음 날 다시 갔다. 환도 우리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팟씨유, 팟타이, 채소볶음을 주문했다. 환의 허락 하에 낮은 벽을 사이에 두고 부엌에서 팟씨유 만드는 장면을 촬영했다.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부엌에 요리하러 들어갈 때면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와 마스크를 꼭 썼다. 모자 아래 머리 역시 단정하게 뒤로 빗어 넘겨 하나로 묶었다. 환의 걸음걸이나 움직임은 여유롭지만 그의 요리는 가볍고 빠르게 하나하나 완성된다.
완성된 팟씨유가 식탁에 왔을 때 깜짝 놀랐다. 환에게는 따로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번엔 비건 햄은 빼고 케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딱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먹으면서 계속 맛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난번보다 더 맛있었다. 팟타이도 역시 너무 맛있다. 매일 와서 주문 가능한 모든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
배달 주문이 들어온 음식을 다 만들어 보낸 환은 우리 옆에 앉아서 오늘은 무얼 했는지, 다음엔 어디로 가는지, 태국에 언제 또 올 건지 물었다. 언제 다시 이곳에 올지 모른다는 말을 내뱉으며 속상함에 마음이 쓰렸다. 이날엔 환의 아들과 고양이도 만났다. 핏사눌록엔 특별한 볼거리나 할 거리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태국 최애 맛집 식당이 생겨버렸다. 벌써 이 도시를 떠나는 게 아쉬웠다. 태국에 다시 온다면 핏사눌록에 꼭 들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