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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Jul 23. 2023

명상의 시간

* 다음 내용은 <투룸매거진> 19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지난 4월, 독일의 명상센터로 네 번째 10일 명상 코스를 다녀왔습니다. 부끄럽게도 여행 중에는 잘 지키지 못하지만 저는 하루에 한두 시간 명상합니다. 제가 배우고 연습하는 ‘위빳사나 명상’은 고타마 싯다르타가 재발견하고 수행해 열반의 경지에 이르고 부처로 거듭난 명상법입니다. ‘부처의 명상’을 한다고 하면 불교 신자냐는 질문을 왕왕 받습니다만, 위빳사나 명상은 종교와는 상관없이 마음과 정신을 다스리는 수행법입니다.


명상이란 걸 아주 처음 접했던 건 초등학교 때로 기억합니다. 언젠가부터 조례 방송에서 ~명상의 시간~이라며 5분 동안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죠. 명상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피던 어린이는 이십 대가 되어 영국에 갔습니다. 우연히 듣게 된 <불교 철학> 수업 중 명상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가끔 명상하던 당시 하우스 메이트에게 물었습니다. 


“명상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10일 동안 먹여주고 재워주면서 명상을 가르쳐주는 센터가 있어. 한번 가봐”

“10일이나? 얼만데?”

“Free. 기부금 운영이라 자기가 낼 수 있고, 내고 싶은 만큼만 내면 돼”


각종 인생 경험이 많은 그의 추천으로 웹사이트(www.dhamma.org)에 들어가 살펴보았습니다. 새벽 4시 반 기상, 온종일 명상. 모든 전자기기는 물론 책과 음악, 펜과 노트도 내려놓는 묵언수행. day 0에 도착하고 day 11에 종료. 휴가 2주면 영국은 물론 유럽 여행도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곧 ‘내면으로의 여행’이라는 거창한 이유를 붙이고는 예약이 가능한 가장 빠른(3개월 뒤) 진행 예정 코스에 참가 신청했습니다.


설렘과 걱정을 안고 도착한 센터의 분위기는 낯설지만 편안했고, 단호하지만 따뜻했습니다. 벌레 한 마리도 조심히 잡아서 방생하는 조용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센터에서 모두가 말없이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나날이었습니다. 매일 저녁 ‘담마 이야기’ 시간은 꼭두새벽부터 시작되는 명상 수련에 지치고, 궁금증으로 가득한 수련생들의 마음을 적절히 달래주었습니다.


특히 선생님이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만이 그의 진실이다. 무슨 책에 쓰여있든, 어떤 대단한 사람이 말했든 그건 그들의 진실이지 나의 진실이 아니다.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 믿지 말라.”라고 했을 땐, 살면서 이제까지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외워.” “의심하지 말고 그냥 믿어.”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찝찝했던 불편감과 함께 그동안 쌓인 천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코스 내내 계속 강조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진실을 직접 경험으로 이해하기 위해 숨이 들락날락하는 인중의 감각에 집중하는 아나파나 명상법을 시작했을 때, 저의 마음이 이렇게 정신없는 놈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숨도 일정하지 않고, 자꾸 이런저런 생각과 기억이 끊임없이 떠오르며 인중의 감각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보조 선생님께 찾아갔습니다.


“제가 숨을 이상하게 쉬는 것 같아요. 보통으로 쉬다가도 한 번씩 크게 쉬어요.”

“괜찮아요, 그게 조절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숨이라면 그대로 지켜보면 됩니다.”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이 너무 많이 떠올라요. 명상은 원래 내면이 차분해지는 게 아닌가요?”

“아주 오래 연습을 한 사람들도 생각이 떠오르고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그저 반응하지 않고 ‘그래, 이번엔 얼마나 가나 한번 보자’하는 마음으로 관찰해 보세요.”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정신없는 생각을, 몸 곳곳에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감각을 관찰하며 경험으로 변화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가만히 명상을 하다 보면 과거에 했던 일과 미래에 할 일, 기억과 추억, 계획과 아이디어가 잔뜩 떠오르고 지나갑니다. 다행히 간간이 잠시 고요한 순간도 있고요. 신기하게 명상하면 할수록 마치 잔뜩 어질러져 혼란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 정돈되는 느낌이 들며 조금씩 편안해집니다.


첫 10일 코스 봉사를 하고 나서야 저는 하루 한두 시간씩 명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한두 시간이라니, 너무 많게 느껴지지만 놀랍게도 명상하면 머릿속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져 일의 효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습니다. 아침 명상은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하는 명상은 마음을 진정하게 합니다. 저녁 명상은 지키기가 조금 더 어렵지만 잠들기 전 잡생각정리에 좋더라고요.


타지에서 지내며 종종 외로움에 휩싸이지만 당장 한국으로 날아갈 수 없는 상황에 저는 명상센터로 봉사하러 갑니다. 사실 첫 코스를 하기 전까지 저는 ‘사람을 부려 먹으면 돈을 줘야지’하는 생각에 봉사활동을 회의적으로 보곤 했는데, 이제는 바라는 것 없이 즐겁게 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명상하고, 잡초를 뽑고, 빨래와 요리, 청소하며 깨끗하고 평화로운 곳에 있으면 지친 마음이 달래지고, 또 얼마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독일 담마센터의 매혹적인 양귀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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