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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May 05. 2018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아남기 이주일

한국에 살 때, 나는 비건이 아니었다. 영국에서 올해 초에 비건 결심과 선언을 한 뒤, 내 사람들에게 이번에 휴가를 내서 한국에 놀러 가는데 나 이제 비건이라 육지와 바다 동물의 살과 젖 그리고 알까지 다 안 먹는다고 미리 말을 해두었다. 이미 오픈톡으로 한국에 사는 비건분들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외식하기에 불편하다거나, 사람들의 오지랖이 약간 거슬린다는 것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 한국음식 재료를 사서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비건이 되기 전에는 한국에 가면 베트남 생면 쌀국수를 먹고 싶었었다. 비건을 결심을 하고 나서도 한국에 가서 그 가게를 보면 흔들리지 않을까? 약간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긴 했었는데, 그 앞에서 사촌동생을 기다리면서 나는 소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육식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생각했지 걱정과는 다르게 그걸 먹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몇몇 가족 어른들과 아빠의 친구는 나에게 기분 나쁜 시선과 표정과 언행을 선사했다.


아빠 친구

"그래도 고기는 먹어야 돼." 사람이 동물을 먹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에요. 

"나도 채식해봐서 그거 좋은 거 알아 근데 그래도 고기는 먹어야 돼." 왜요? 

단백질.. 그놈의 단백질. 그 어떤 논리나 심지어 이유도 없다.

그냥 녹음기 틀어놓은 것 마냥 "그래도 고기는 먹어야 돼."의 반복. 

채식하고 소화도 잘되고, 피부도 좋아졌고, 매일매일 행복하고 기분도 좋아요. 

"나도 좋은 거 아는데 그래도 고기는 먹어야 돼."

내가 만든 라따뚜이를 먹으며 그는 이거 진짜 맛있다면서 딱 내 스타일이라고 했다. 

도대체 본인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는 것일까 의심이 갔다. 


다음날까지 계속되는 

"너 어떡하니.", "외식하기도 힘들겠다.", "친구들 만나면 먹을 게 하나도 없겠다.", "너 어떡하니."... 

"너 걱정돼서 그러지."

참다 참다가 내가 행복하다는데 걱정하는 건 무슨 심보냐고, 참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했더니 그제야 미안하단다. 본인 콜레스테롤 수치나 걱정하세요. 


친척 어른

"계란도 생선도 안 먹니?" 물고기도 고통을 느껴요.

라는 나의 대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비웃음을 주셨다. 


2

"두유는 먹어도 돼?" 어떤 두유에는 우유가 들어가기 때문에 성분 확인을 해야 해요.

"됐어 먹지 마" 아니, 내가 언제 성분 확인해달라고 했나요? 확인을 해도 제가 해요. 


3

"하나님이 다 누리라고 주신 거야 그래서 먹어도 돼" 채식하라고 한 적도, 물어본 적도 없는데요?

"나는 채식 진짜 못해, 못할 거니까 아예 시작을 안 할 거야" 아니, 본인한테 제가 채식하라고 한 적 없어요. "아니 그냥 말하는 거야".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


채식을 한다고 한 뒤에 나를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어버린 사람들을 보니 그야말로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내가 전에 알던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채식을 하라고 한 적이 없다. 심지어 내가 밥을 먹을 때가 아니면 채식 이야기를 먼저 꺼낸 적도 없다. 내가 먹을 채식요리를 그들에게 해달라고 한 적도 당연히 없다. 내가 알아서 요리를 해서 먹었고, 그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내 먹을 것은 내가 챙겨서 다녔다. 내가 폭력, 학대, 착취가 싫어서 동물을 안 먹겠다는데 그들은 왜 나한테 짜증을 내는 것일까? 그리고 나를 짜증 나게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일까? 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내가 진짜 왜 채식을 하는지, 내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앞뒤가 꽉꽉 막힌 사람들. 내 말을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니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내 말을 이해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말은 통하지 않는다.


나와 함께 비건이 된 친구와 함께 감자튀김 맥주집에 갔다. 우리는 적어도 감자튀김은 먹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가게의 메뉴판에는 황도와 감자튀김을 제외한 모든 메뉴에 동물이 있다고 쓰여있었다. 주문했던 감자튀김이 나왔을 때 우리는 너무 당황해서 잠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어... 음... 감자튀김에 치즈가루를 뿌릴 거라고 메뉴판에 써놓지 않았잖아!)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데 혹시 치즈를 빼줄 수 없느냐고 물어봤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해주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감자튀김에 치즈가 올라간다고 메뉴에 쓰여있지 않아서 몰랐다고 했다. 아르바이트생은 이미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 진작 말을 했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람한테까지 이렇게 말하다니..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참고 좋게 말해서 결국 그들은 다시 감자튀김을 만들어주었다. 사장님이라는 분이 직접 우리 테이블로 손수 갖다 주시며 우리의 얼굴을 확인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


그 전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다. 비건이 되고 난 후 다시 돌아온 한국의 길거리는 끔찍했다. 지나갈 때마다 무슨 정육, 고기, 해산물, 생선 등등 진짜 대부분의 가게들이 다 여기에 동물의 시체가 있다고, 그것을 팔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크게 써붙여 놓았고, 밖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살펴보아도 동물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이나 식당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김치에는 젓갈과 액젓이, 된장찌개를 비롯한 국물에는 멸치육수가.. 게다가 다시다까지. 여기가 이렇게 위험한 곳이었구나...


굳이 가게마다 들어가서 이거에 모든 동물성 재료를 빼주실 수 있나요?라고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대신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았다. 우리 지역에는 비건 음식점이 겨우 하나 있었다. 아니, 하나라도 있었다. 완전 비건 식당이 없는 도시도 많다고 한다. 자가용이 있다면 갈 수 있는 근교에 비건 뷔페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두세 곳의 식당들은 메뉴의 음식들 중 몇몇을 비건으로 만들어 준다고 한다. 인터넷에 사람들이 비건 옵션이 가능하다고 했던 식당들에 찾아가서 주문을 할 때에도 나는 비건이라는 것에 대해서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했다. 육류, 유제품, 해산물, 계란, 멸치육수, 액젓까지 다 빼주세요.


외식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총과 눈치를 주었다. 아니 내가 언제 더 넣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제일 비싼 사치품인 동물성을 다 빼 달라는데 가격도 다 받을 거면서 뭐가 문제세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브런치카페를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내가 요청한 날 아몬드 브리즈를 준비해 아몬드 라테, 녹차라테, 딸기 라테를 만들어 주었고, 불고기 비빔밥 대신 버섯 양파볶음을 넣은 비빔밥이나, 두부와 다른 채소볶음 덮밥을 만들어주었다. 비건이니까 주절주절 다 빼주세요 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어서, 믿을 수 있어서, 맛도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고사리나물, 도라지, 콩나물, 참나물 등을 사서 무침을 만들었고, 깻잎지와 채소볶음, 두부볶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비빔밥과 김밥, 떡국, 떡볶이 등 먹고 싶었던 한국음식들을 직접 만들어서 먹었다.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렇게 쉽고 맛있게 만들 수 있는데, 심지어 그냥 밥에 김만 싸 먹어도 너무 맛있다. 뻥튀기, 떡, 과일과 채소 말랭이, 채소 칩 등 간식도 많다. 하지만 시중에서 가공되어 파는 것에는 또 위험요소가 있다. 꿀과 팜오일..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음식들에 왜 들어가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우유가루.. 소고기 가루... 그냥 내가 원재료를 사서 집에서 만들어서 먹는 게 제일 속편하다.


우리 도시에 있는 유일한 비건 식당은 우리 집에서 멀고 교통편도 좋지 않다. 아빠랑 시간이 맞아서 함께 가 보았다. 비건 식당은 화학조미료나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 메뉴들도 다 맛있어 보였고, 한켠에 있는 비건 식재료, 간식, 생필품들도 눈에 들어왔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한국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김치를 먹었다. 아빠도 깔끔하고 맛이 있다며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비건 식당을 운영 중이신 사장님께서는 채식 인구가 예전에는 겨우 오십만이 될까 말까였는데 지금은 대략 백오십만 명이고 이게 약 3퍼센트인데 이게 5퍼센트가 넘어가면 이제 돈이 된다고 하셨다. 지금 수요에 비해 비건 식당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누가 다른 지역구에 비건 식당을 내겠다고 한다면 본인의 모든 노하우를 탈탈 털어서라도 진짜 쉽게 장사할 수 있게 도와줄 거라고 하셨다. 


비건은 윤리적 소비를 하고 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학대, 착취와 살해의 결과물인 모든 동물에서 온 재료들의 소비, 사용을 금지, 반대한다. 게다가 벌을 죽이는 꿀, 오랑우탄과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팜오일 등 동물과 자연에 피해를 주는 재료들도 소비하지 않는다. 동물의 가죽과 털로 만든 옷이나 제품들도,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하는 제품들도 반대한다. 하지만 이 세상은 이미 너무 오염되어있다. 끔찍할 정도로 시중의 거의 모든 제품들에 필요하지 않게 동물을, 그들의 피와 눈물과 죽음을 갈아 넣었다. 성분표를 확인하고 이게 비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너무 행복하다. 사고 싶다. 아니 바로 구매하고 다른 비건들에게 알린다. 여러분 이거 비건이니까 사도 됩니다!!


비건은 돈을 쓰고 싶어도 못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즉, 돈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우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서양 국가에서는 비건 식당과 식품, 제품들의 소비가 몇백 퍼센트 이상 늘어나고 있다. 한국도 스타벅스가 이미 비건 상품을 출시했고 반응이 좋아 점점 늘려나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내가 비건이 된 그 순간부터 나는 요식업에 종사하는 내 지인들에게 열심히 이 소식을 전하고 제발 비건 메뉴를 내달라고, 비건 식당이나 카페를 차려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속상하게도 아직 그들 본인도 비건이 아니므로 내 말을 잘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누군가 더 빨리 눈을 뜬 사람이 먼저 성공하겠지. 


내가 비건이 된 이후, 영어자료에 비해 한국어 자료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고, 인스타그램으로 자료를 모아 번역한 뒤 공유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한 번씩 이야기를 해본다.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더 빨리 비건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에. 알고 싶지만, 알면 바뀔 사람들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알려서 같이 가는 게 서로에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도와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정적이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하지만, 벌써 내가 한국에 가기 전부터 비건이 된 친구들은 불편함도 분명 있지만 너무 행복하다며, 이걸 왜 이제야 알았는지 모르겠다며 즐거워하고, 정말 관심 있게 눈을 반짝이며 알고 싶어서 나에게 질문을 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한번 몇 주만이라도 해봐야겠다고 하는 내 사람들을 볼 때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행복하다. 게다가 내가 올린 정보와 글들을 보고 비건을 결심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한없이 뿌듯하다. 내가 이렇게 뿌듯했던 적이 언제 또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을 위해, 동물들을 위해, 나아질 미래를 위해 행복하다. 


곳곳에 숨어서 도사리는 위험은 정말 화가 난다. 단호박 칩, 고구마칩, 토란 칩을 보고 너무 신나서 뭐 당연히 채소에 해봤자 설탕물 발랐겠지 하고 성분 확인도 하지 않고 맛있게 먹다가 팜오일이 들어간 것을 알았을 때, 절 근처의 식당이라 산채비빔밥에는 아무 동물도 들어있지 않아서 스님들이 와서 드시나 보다 하고 겉절이를 먹다가 새우와 눈이 마주쳤을 때, 비건이라고 알려진 야채죽에서 다시다 맛이 날 때... 사람들은 비건이 엄격하기 때문에 완벽해야 한다고 지레 부담을 갖는다. 그래서 비건이 되려고 마음먹기를 어려워한다. 


엄격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전혀 인식하고 있지 않은 사이에 실수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으니까, 다음부터는 더 꼼꼼하게 확인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더 비건을 선택하고, 한 번이라도 더 내가 소비하는 것이 무엇인지, 혹시 내 소비가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하거나 죽음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 진지하게 생각하고, 알아보고, 확인한 뒤 선택하고 소비한다면 그걸로 한걸음 더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린 한국에서의 이주일.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보고 싶었던 얼굴들을 만났고,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 

처음엔 한국에서 비건은 너무 심각하게 힘들고 불편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비건 관련 행사들도 많이 생기고 있고, 비건인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비건인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서 잘 지내는 것도 보기 좋고, 무엇보다 한국은 변화가 빠른 나라이니까, 한번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퍼져나갈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겐 사찰음식도 있고, 대부분의 전통 한식은 비건이거나 충분히 비건으로 가능하다. 비건이 훨씬 깔끔하고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다. 어렵다, 불편하다, 힘들다는 것은 모두 해보지 않았을 경우, 사람들의 머릿속 안의 편견일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어렵고 힘든 것들은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다. 비건은 쉽다. 즐겁다. 행복하다. 해본 사람은 안다. 그리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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