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요리를 왕창 몰아서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어제 불려놓은 무청을 잘라서 된장, 국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들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해 놓고 비건 카톡방에 어떤 분이 올려준 유튜브 영상을 하나 보았다.
간절하다. 지금의 동물과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착취가 하루빨리 멈췄으면 좋겠다.
오늘은 목요시장이 열렸다. 어젯밤에는 태풍 때문에 바람소리가 무섭게 들렸는데 아파트 단지의 큰 나무 하나가 절반쯤 뽑혀서 기울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떨어진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이 널려있었다. 지난주에 시장이 열리지 않았고, 슈퍼마켓에 가면 플라스틱에 싸인 것들만 팔아서 웬만하면 가지 않아 오늘은 사야 할 것이 꽤 많았다. 어느새 벌써 9월이 되어 가을 냄새가 난다. 왠지 올해에는 맛있는 복숭아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딱딱한 복숭아를 찾아다녔다.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딱복이 한 상자에 이만 원이 넘었다. 다음 과일장수는 딱복을 가지고 있기를 바라며 과일장수마다 딱복이 있냐고 물어보지만 정 없다면 그냥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파프리카 네 개, 케일 반 근, 적양배추 한 통, 감자 한 바구니, 사과 한 바구니, 표고버섯 반 근을 사고, 내가 혹시 딱복이 있냐고 물어본 한 과일장수가 거기 있는 게 다 딱복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복숭아는 다 황도였고 물렁한 복숭아였는데 지금 단단하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한 번 먹어보라고 잘라 준 황도는 말랑했다. 그리고 자기가 들고 있는 노란색 복숭아가 황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황도는 노란색이고 백도는 하얀색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과일장수는 황도는 여름 복숭아고 자기가 갖고 있는 건 가을 복숭아라고 하면서 복숭아 종류가 스물일곱 가지가 있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노란색은 황도, 흰색은 백도가 맞다고 한다. 가끔 어떤 장사꾼들은 마치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나에게 아무 말을 한다. 그 가게를 지나 조금 더 가는 길에 드디어 맘에 드는 복숭아를 발견했다. 딱복은 아닌데 아직은 단단하다고 했다. 복숭아를 사고 요 근래 통 보이지 않던 내가 가는 두부 매대가 준비 중인 것을 보고 잠깐 기다렸지만 사장님이 안 보여서 일단 집에 돌아왔다.
양념해놓은 무청에 물을 조금만 넣고 자작자작하게 끓이다가 표고버섯, 파, 감자를 잘라서 넣고 된장국을 끓였다. 청소기를 돌리고 잠시 쉬다가 다시 나가서 두부, 깨 두부, 콩나물을 사 왔다. 다른 두부 집은 GMO 콩을 써서 이 선생님이 오지 않은 날에는 두부를 사 먹지 않고 버텼다. 한살림 두부도 좋지만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어서 정말 너무 먹고 싶을 때가 아니라면 참는다. 오랜만에 콩나물을 무침을 만들었다. 콩나물을 손질하고 끓는 물에 데쳐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꼭 짜서 볼에 넣고 다진 마늘, 파, 소금, 고춧가루, 들기름, 참깨를 넣고 무친 뒤 반찬통에 담았다. 표고버섯을 물에 씻고 기둥은 따로 떼어서 나중에 채수를 우릴 때 넣으려고 냉동실에 넣었다. 기둥을 떼다가 부서진 버섯을 보고 그냥 다른 버섯도 다 손으로 찢었다. 기름을 약간 두르고 버섯과 깍둑썰기 한 감자를 볶았다. 조금 익으니 버섯 부피가 확 줄어들었다. 컵에 물, 들깻가루, 국간장, 후추를 섞어놓았던 소스를 붓고, 잘라놓은 파를 넣고 끓였다.
돌아오자마자 하나 씻어서 먹은 복숭아가 생각보다 물러서 속상했다. 흰 설탕을 좋아하진 않지만 베란다에 있길래 복숭아청을 만들기로 했다. 씻어보니 아직 단단한 복숭아도 있길래 단단한 것들은 놔두고 살짝 물렁한 두 개를 꺼내 잘 씻고 껍질을 벗겨 잘게 잘랐다. 그 옆에 레몬도 하나 있길래 레몬즙을 짜서 넣고, 트위터에서 본 복숭아에 뿌려먹으면 맛있다는 얼그레이 홍차 가루를 뿌리고, 설탕을 좀 넣고 섞어서 유리병에 담고 위에 설탕을 조금 더 넣었다.
그동안 못 사고 있던 두부가 와서 욕심에 두 모나 샀더니 두부김치가 먹고 싶어 졌다. 뜨거운 물에 불린 콩단백을 기름에 좀 볶다가 잠시 빼두고, 김치, 파, 콩나물을 볶다가 콩단백, 물에 갠 고추장을 넣고 볶다가 불을 끄고 들기름을 두르고 섞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깨 두부와 볶음김치를 한 접시에 담고, 지난주에 샀던 깻순을 한주먹 꺼내서 씻어서 밥이랑 먹었다.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 단백질이 너무 많으니 저단백 식사를 하라고 했는데 두부 반모를 다 먹어버렸다. 깻순은 아무리 많아도 한번 삶고 나면 확 쪼그라들어서 지난번에 엄청 많이 씻어서 반찬통 하나가 꽉 찰만큼의 깻순 나물을 만들고, 또 깻순을 잘라서 부침개 세 개를 만들어 먹었는데 아직도 깻순이 남아있다.
오랜만에 냉장고가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