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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Mar 08. 2021

부정맥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어 어지러움과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건 청소년 때였다. 정확히 언제부터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엄마 말에 따르면 고3 때 처음 심장검사를 해보러 병원에 갔다. 병원에 갔을 때에는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았고, 의사는 이상이 없다며 스트레스성 고3병인 것 같다고 했다.


그 말과는 다르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도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일 년에 한두 번쯤 증상이 나타나면 힘들었지만 짧게는 한 시간 이내, 길면 반나절 정도 지속되다가 증상이 사라지면 또 아무렇지 않았다. 잊을 만하면 증상이 찾아왔다. 병원에서는 이미 이상이 없다고 했으니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조금 있으면 또 멈추겠지 하며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가 호주에 있을 때, 일하는 날 아침에 증상이 시작되었다. 증상이 심할 때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온몸이 흔들리는 것 같고, 식은땀이 나고, 일어나면 어지러워 누워있고만 싶고, 숨쉬기도 힘이 들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 전화를 해서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오늘은 도저히 일하러 갈 수가 없다고 했더니, 병가처리를 하게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 오라고 했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증상이 멈출 때까지 침대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진단서 없이 돈을 안 받으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정직원이라 그렇게 할 수가 없다며 꼭 진단서를 가져오라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가장 가까운 병원에 전화를 해서 지금 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갔다. 외국에서는 병원에 가본 적이 없어서 걱정, 갔는데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면 어쩌지, 기다리는 동안 증상이 멈추어서 이상 없음이 나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마구 떠올라 불안했다. 의자에 앉아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렸던 것 같다. 마침내 내 이름을 불렀고, 의사를 봤다. 가끔 심장이 갑자기 빨리 뛴다고 하니까 심전도 검사를 하자고 했다. 심전도 검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진단명을 받았다. 


‘심실상성 빈맥’ 


알코올이나 카페인을 먹지 말라고 했다. 호주는 커피가 맛있어서 라테를 자주 마셨다. ‘친구들이랑 와이너리 투어를 가서 와인을 너무 많이 마셨나.. 전에 증상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니 술을 많이 마신 당일이나 다음날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또 증상이 나타나면 목이나 눈알을 압박하면 괜찮아질 수도 있지만 심각하면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방법도 있다, 증상이 너무 자주 나타나면 매일 약을 먹을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듣고 진단서를 받고 병원을 나왔다.


한국에 돌아오고 그때 따로 받은 진단서를 가지고 가까운 병원에 갔다. 의사는 심실상성 빈맥은 뭐 이미 설명받은 방법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간호사인 친구도 매일 약을 먹거나 그냥 가끔 그렇게 증상을 겪으며 사는 것 이외에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더 큰 병원에 가는 것은 뭐랄까.. 몇 주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할 것만 같고.. 이것 때문에 당장 죽는 게 아니라면 그냥 또 참으면 지나가겠지.. 큰 병원은 그곳에 간다는 생각만으로 왠지 모르게 번거로울 것만 같고 두렵기도 하다.


술도 끊고, 커피도 끊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났다. 점점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볼 일이 있어서 잠깐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증상이 찾아왔다. 너무 심했다. 끔찍하게 고통스럽고 이러다 죽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 계획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증상이 없을 때는 병원에 가도 이상이 없다고 할 것이라고 혼자 단정 짓고 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마치 지금 당장 병원에 가라는 듯이 또.. 시작이었다.


가족들은 전부 일하러 가고 혼자 있었다. 혼자는 가기 싫었다. 가까운 친구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친구가 시간이 있어서 친구 집과 우리 집 사이에 있는 심장전문병원에 같이 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의사에게 심실상성 빈맥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더니 ‘상 심실상성 빈맥’이라고 정정하였다. 심실상성 빈맥이랑은 다르게 간단한 시술을 하면 금방 낫는다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시술을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또 괜히 그게 오래 걸릴 줄 알고 걱정했더니 바로 전화를 한통 걸어 집 근처 대학병원에 예약을 잡아주셨다.


그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를 대학병원에 가서 전달하고 시술 날짜를 예약했다. 쉽고 간단하고 안전한 ‘시술’이라고 하셨지만 허벅지 안쪽을 조금 찢어서 혈관으로 관을 세 개나 집어넣어서 심장까지 간다는데... 이게 수술이 아니고 시술이라니. 수술과 시술의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간호사분께 물어보니 수술은 배를 가르는 것이라고 했다. ‘하긴, 심장 시술인데 배를 가르지 않고도 할 수 있으니 심장내과 선생님들께는 쉽고 간단한 일이겠구나.’ 싶었다. 


시술 전날 오후에 입원하고, 다음날 아침에 시술을 받고, 다음날 퇴원했다. 당연히 전신마취를 할 줄 알았는데 국소마취란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데 충격을 받은 나에게 의료진분은 어린 학생들도 국소마취로 시술을 잘 받는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시술 내내 의료진분들끼리 얘기하는 것도 다 듣고 질문하면 대답도 했다. 심장을 레이저로 지지는 느낌이 느껴졌다. 굉장히 이상했다. 새로운 종류의 고통이었다. 이 시술은 보통 한 시간 내외면 끝난다.


시술을 마치고 알게 된 사실은 내게 부정맥이 두 개가 있었다는 것.. 큰 거는 치료했는데 작은 거는 알아서 같이 사라질 수도 있는데 일단은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원인은 유전이라고 했다. 시술을 마치고는 상처부위에 모래주머니를 올려놓고 6시간을 가만히 있어야 했다. 화장실도 가면 안 되고 옆으로 돌아 누워도 안 된다.


그리고 다음날, 퇴원을 했다. 시술은 의사의 말대로 간단했고, 입원기간도 짧고, 큰 병원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한국은 의료보험이 잘 되어있어서 직접 부담금액도 크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증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나도 무서워서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고 더 오래 고생했다. 미리 알았다면 증상이 나타날 때 병원에 갔을 것이다. 시술을 받고서 심각한 부정맥 증상은 다시 겪지 않았다. 물론 더 빨리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알고 시술을 받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릴 때부터 심장이 빨리 뛰고 몸에 땀이 많이 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심장을 빨리 뛰게 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는 하지만 나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서 심박수를 올리는 운동이나 활동을 더더욱 피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제 시술을 받았으니 괜찮지 않냐며 술이나 커피도 다시 마셔도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비슷한 증상을 겪는 누군가는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계속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쪽이 마음도 몸도 더 편하다. 


http://www.samsunghospital.com/home/healthInfo/content/contenView.do?CONT_SRC_ID=09a4727a8000f39e&CONT_SRC=CMS&CONT_ID=3136&CONT_CLS_CD=0010200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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