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온라인 장례식에 ‘참석’했다. 나도 한두 번 뵌 적이 있는 친구 아빠의 장례식이었다. 친구는 메신저로 초대장 링크를 보내주었다. 영국이랑 독일은 한 시간 시차가 나서 다른 일을 하다가 좀 늦었지만 들어가 보았다.
작은 교회같이 보이는 장소에 가족들이 앉아있다. 목사가 진행을 하고, 몇몇 가족들이 차례로 단상에 나와서 고인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나 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많이 울어 눈이 부은 건지 선글라스를 끼고 온 친구도 써온 글을 읽는다. 들어보니 돌아가신 건 12월인데 3월에 장례식을 한다. 아주 튼튼하고 무거워 보이는 관을 남자 가족 여러 명이 들고 차에 옮겨 싣는다.
잠시 뒤, 장소가 공동묘지로 바뀌었다. 깊게 파인 구멍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관은 그곳에 천천히 내려진다. 가족들은 한 명씩 차례로 관 위에 비닐 포장된 파란 장미꽃을 던진다. 그리고도 아쉬운 것인지 하얀 장미꽃잎으로 추정되는 것을 한 줌씩 던진다. 주변엔 마치 복사 붙여 넣기를 한 듯 일정한 거리로 검정 뚜껑이 덮여있는 다른 묘지도 보인다.
그리고 영상을 껐다.
영국의 장례식에 초대되어 그것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었다. 몇 번 영화나 시리즈에서 본 장례식이 생각났고, 이어 내가 가본 한국의 장례식이 떠올랐다. 재작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장례식 때에는 영국에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가본 가족의 장례식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친할머니의 것이었다. 그 당시 치매를 앓고 있었던 할머니는 집에서 돌아가셨다. 장례식은 할머니 집에서 했다. 꽤 오래전이지만 명절에도 잘 오지 않던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것이 기억난다. 할머니의 시신은 할아버지의 무덤 옆자리에 매장되었다.
성인이 되고서는 친구의 아빠와 다른 친구의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간 게 전부다. 장례 절차에 대해서 찾아보니 보통 첫날에는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준비를 한다. 둘째 날에는 상복을 입고, 음식을 차려 문상객을 받는다. 셋째 날에는 장례식장 이용요금을 정산하고 매장이나 화장을 진행한다고 한다.
http://goodnanum.or.kr/?page_id=185&ckattempt=1
영국의 장례식 생중계를 보면서 내 머릿속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2월에 돌아가셨는데 3월에 매장을 하다니? 그동안 시신을 ‘보관’ 한 건가? 시신이 이미 부패 중이지 않을까? 고약한 냄새가 나진 않을까? 콘크리트로 땅을 막은 곳에 저렇게 두껍고 튼튼해 보이는 관을 넣다니... 그럼 시체는 그냥 안에서 썩는 건가? 죽어도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니... 흙속 생태계에도 너무 해롭다... 저기에 플라스틱 비닐로 싸인 파란색 장미를? 차라리 비닐 없이 꽃만 넣지... 사람은 살면서도 엄청난 환경오염인데 죽어서까지 이렇게 환경에 해로울 수 있다니...
영국의 장례식은 그래도 식사를 제공하지는 않아 보였다. 이제 친환경정책으로 일회용품의 사용이 점차 금지된다고는 하지만 한국은 장례식장에서 만드는 일회용품 쓰레기가 아주 많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제공되는 음식은 동물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내가 죽으면 메뉴를 육개장이 아닌 채개장으로 해 달라.”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곳에서 왜 또 다른 이들의 죽음을 만드는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식사뿐 아니라 술도 너무 많이 마신다.
나는 장례에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 줄 몰랐다. 장례식장을 빌리는 것, 매장지의 땅을 구매하거나 대여하는 것, 화장을 하는 것, 봉안당의 자리도 다 돈이다.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방부제를 사용하기도 하고, 화장을 하고 남은 재에 벌레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던 적도 있다. 그 재로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보관하는 장례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봉안당의 자리 값을 내고 그곳에 찾아가거나 벌레가 끓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꽤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구에 사람은 늘어만 가고, 살고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은 언제나 더 많을 텐데 계속 죽은 사람들을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는 방법으로 땅에 묻는다면 안 그래도 부족한 땅은 계속 부족해지기만 할 것이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매장보다는 화장을 선택하고, 재를 어딘가에 뿌려달라고 하기도 한다. 화장을 하면 차지하는 공간은 훨씬 적어지지만 태울 때 역시 오염을 일으킨다. 인간이 살면서 노출되는 의약품이나 화학약품, 병원균 때문에 시신이 자연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말도 들었다.
죽으면 어떻게 처리되고 싶은지 찾다가 반가운 소식을 찾았다. 무려 시신을 식물을 비료로 만드는 퇴비 매장. 야외에 노출된 상태에서는 시신이 흙으로 돌아가는데 수개월이 걸리지만 퇴비 매장은 시신을 뼈와 병원균까지 분해하는 미생물에 노출시켜 30일이면 식물을 키울 수 있는 흙이 된다고 한다.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고, 탄소를 내뿜지도 않으면서 비료가 될 수 있다니! 빨리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합법 그리고 상용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https://www.bbc.com/korean/news-47067833
내가 죽으면 시신은 퇴비 매장하고, 각자 자기만의 방법으로 애도하고, 모여서 애도하고 싶다면 장례식장이 아닌 외딴 비건 카페나 식당의 공간을 빌려서 차분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 날 만큼은 동물성은 절대 먹지도 사용하지도 않았으면 좋겠고, 플라스틱 쓰레기도 되도록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술도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만 마음껏 슬퍼하고 곧 괜찮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