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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May 04. 2022

'악어의 코끼리 엄마'와 '과학자 인어공주'

아이와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세대차이를 느꼈다

우리 집은 TV를 시청하는 시간대가 있다. 가급적이면 아이가 TV를 시청할 때 나도 옆에서 함께 보는데, 아이와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캐릭터를 보면 아이의 관심사도 보인다. 


출처: 대교 노리Q 홈페이지


요즘 아이는 <헤이 더기>와 <개비의 매직하우스>를 즐겨 본다. 며칠 전에도 온 가족이 함께 <헤이 더기>(원제: Hey Duggee)를 보는데, 남편이 질문을 던졌다.


"왜 악어 엄마는 악어가 아니야?"


응?  하고 다시 보니 정말 그랬다. <헤이 더기> 큰 개 '더기'가 운영하는 클럽하우스에서 아기 동물들이 노는 내용인데, 부모들이 마중을 나오는 장면이 매회 등장한다. 그런데 악어와 함께 하는 보호자는 악어가 아닌, 코끼리이다.


©CBeebies


남편이 유독 눈썰미가 좋긴 하지만, 내가 아이와 몇 편을 반복해서 봐도 몰랐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일단 이 애니메이션은 악어의 가정사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확인한 에피소드에서는 한 번도 없었다). 연출이 다른 동물 가족들과 다른 것도 아니다. 워낙 호흡이 경쾌해서,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럽다.


©CBeebies


악어의 가족이 입양가정일 수도 있고, 재혼가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해외 SNS에서도 이러한 설정과 관련된 반응을 찾을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긍정적이다.



출처: 대교 노리Q 홈페이지


<개비의 매직하우스>(원제: Gabby's Dollhouse)를 보면서도 놀란 부분이 있었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다양하고 기발한 고양이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인어냥(Mercat)'도 그중에 하나이다.


'인어냥'의 외관은 인어공주를 모티프로 한 여느 캐릭터처럼 아름답고, 소위 '여성'스럽다. 그리고 그녀는 Scientist, 즉 과학자이다.


©Netflix


엄밀히 말해서 이 작품에서 '인어냥'이 공주라는 설정은 없다. 그러나 외관이나 이름을 보면 자연스럽게 '인어(mermaid)'가 떠오르고, '인어' 하면 연상되는 건 역시 '인어공주'이다. 


나에게 '인어공주'는 마녀를 찾아가 묘수를 간청하는 가련한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인어냥'은 마녀를 찾아갈 필요가 없다. 실험용 고글을 고 각종 물약을 섞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왜 이 캐릭터가 나에겐 신선하게 느껴질까? '공주' 그 이상의 무언가는 담기지 않았던 캐릭터들만 보아 와서일까. 어릴 적 '인어공주' 만화영화를 보고 자란 나는 이제 아이와 함께 앉아 '과학자 인어 캐릭터'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시청한다.






어릴 적 나는 만화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만화에 빠진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다. 너무 비생산적이고, 또 위험한(?) 내용이 많다고 여기셨다. 나는 반항심에 '나는 어른이 되어도 계속 만화를 볼 거야!'라고 다짐했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러, 나는 아이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생경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경험한 익숙함과 다른 무언가를 '감지'한다. 신기하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면 두렵기다.


'나에겐 낯선 것들이 아이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울 수 있겠구나'

'내가 맞다고 여겨왔던 기준이 아이에게는 구시대적인 유물이 될 수도 있겠구나'

'내가 부모님에게서 느꼈던 세대차이를 아이도 나에게서 느끼겠구나'


마음만 같아서는 세대 차이 없는 엄마가 되고 싶다. 새로운 변화를 함께 이야기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설정에도 놀라움을 느끼는 처지이다. 낯섬과 익숙함, 그 간격에서 나와 아이는 서로를 이해해야 하리라.


©Netflix


아이는 다양한 가족으로 이뤄진 친구들을 만나고, 더 넓은 직업의 세계를 탐구하며 나와는 다른 것을 보고 배울 것이다. 같은 것을 보아도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거늘, 이제 고작 3년 차 초보 엄마는 벌써부터 마음이 헛헛하다.


대신 한 가지 다짐을 해 본다. 아이가 조금 더 커서  자신의 가치관을 얘기하기 시작할 때, 마음을 다해  기울이겠다고... 아이의 세상에 함께 들어가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 세계에 종종 초대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살아온 세상과 다른 아이의 세계를 만날 기회, 정말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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