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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Jul 22. 2023

가르치는 아이에게 공격당할 때 느끼는 감정

언어치료사 엄마이자 미래의 학부모로서

얼마 전 일어난 가슴 아픈 뉴스와 관련하여 글 하나를 읽었다. 아동심리 전문가인 이보연 소장님의 글인데, 글 중간에 다수의 환경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와 1:1 중재를 주로 하는 치료사의 차이가 소개된다.



나 또한 아동을 많이 만나는 언어재활사(언어치료사)이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중에는 발달장애 또는 지연으로 인해 언어표현이 어렵고, 상황 인지가 어려워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때리기, 꼬집기, 할퀴기, 발로 차기, 침 뱉기 등 방법도 다양하다.  


감정이 폭발하는 소위 '편도체 납치'가 일어나면 성인들도 조절이 힘든데, 하물며 뇌가 발달하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더 어렵다. 그런 아이를 앞에 두고 말로 하는 훈육은 효과적이지 못하다.


때문에 아이가 흥분해서 자신 또는 타인에게 해를 주는 행동을 할 때, 나는 부모님이나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의 팔을 잡거나 아이를 뒤에서 안아 제지하고 흥분을 가라앉히도록 유도한다.  방법이 아이가 흥분해서 언어적 지시를 수용하지 못할 때 신체적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아이가 안정을 찾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말로 설명한다.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읽어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동은 왜 안 되는지를 말해준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배우게 된다.


출처: Unsplash


그러나 이건 부모님(보호자)이 동행을 하고 아이가 좀 어린 경우에 가능한 방식이다. 1년 전에 한 초등학생 아이에게 손톱으로 얼굴과 팔을 마구 긁힌 경험이 있다. 활동 후 장난감을 정리하자고 말했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이 아이의 경우 안타깝게도 가정에서 훈육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손톱에 할퀴어진 상처도 쓰라렸지만, 아이가 처한 현실은 더 씁쓸했다. 아이는 손재주가 좋았고 그림도 잘 그렸다. 하지만 그러한 장점이 공격성에 가려져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1:1로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환경에 놓인 나도 이런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하물며 일선에서 여러 명의 아이를 지도해야 하는 선생님들의 고충은 얼마나 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사실 (내가 썼던 지난 글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우리 아이도 요주의 인물이었다. 양치 시간에 싫다고 드러눕고, 아이들을 밀었다. 아이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배워야 했다. 양치 시간에는 양치를 하고, 다른 사람을 밀면 안 된다는 걸!


만약 선생님이 우리 아이의 어려움에 대해 말씀하셨다면, 대개는 정말 말을 고르고 골라 신중하게 꺼내시는 말씀이다. 부모님들과 선생님을 대상으로 많은 강의를 하고 오랜 임상경력을 지닌 언어재활사 선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치료센터에 가보라고 해서 온 아이들 중에 실제로도 언어발달 지연인 경우가 '아닌 적이 없었다'라고.


그래서 만약 어린이집 선생님께 내 아이의 발달이나 사회생활 문제와 관련된 코멘트를 들었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 기회를 놓치는 부모님들이 종종 계신다. 나도 그 심정은 안다. 내 새끼 안 좋은 말 들으면 꼭 내 잘못인 것 같은 그 마음...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치면 우리 아이가 자랄 기회는 물론, 부모로서 자랄 기회도 놓치고 만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고, 또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의 행동과 그 아이 자체를 분리해서 생각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배워야 할 때'이고, 또 '배우면 되는 때'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그렇게 생각을 하실 것이다. 거친 말과 행동에 찔려도 아이의 최선을 고민하실 것이다.


내가 치료하던 아이에게 얼굴과 팔을 할퀴어져 온 날 이후, 나는 자꾸만 그때의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그 당시의 대응이 나와 그 아이에게 최선이었을지 계속 곱씹었다. 몸의 상처보다 더 쓰라린 그 감정이 무엇인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무력감'이었다. 


가르치는 아이에게 공격을 당한다는 것은, 그 경중과 상관없이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는 일이다. 내가 이끌어야 할 다수의 아이들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공격을 받았다면 그 충격은 배가 된다.  상황에서 선생님 또한 미숙하다면 바로 보복성 아동학대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통의 교사들은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애쓴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상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임에도 말이다.


내가 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또는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더 나아갈 수 없다는 무력감... 책임감과 열정이 높을수록 그러한 무력감도 깊어진다. 여기에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한 팀이 되어야 할 부모가 비협조적이나 공격적이라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워진다.






엄마가 되어보고 나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건강해야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양육자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처럼,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이들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 우리는 그걸 '골든타임'이라 부른다. 일선의 선생님들을 지키지 않으면 결국 배우며 자랄 기회를 놓치는 건 우리 아이들이 될 것이다. 너무 무서운 말이지만, 사실이다.


덧붙여, 비록 같은 직종은 아니지만 아이들 옆에서 함께 하는 치료사이자 미래의 학부모로서, 선생님을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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