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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Nov 23. 2023

제 지구에 두 번째 운석이 떨어집니다


지금 나는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다. 어느덧 19주 차가 되었다.



브런치에 이 글을 올리고 몇 달 후 정말 둘째가 찾아온 것이다. 괴롭던 입덧이 가라앉고 태동을 느끼는 시기가 찾아오면서 여린 생명과 교감하는 순간을 누리고 있다.

아이를 좋아하는 나는 내가 소위 '임신 체질'이길 내심 소원했다. 그러나 첫째를 품고 낳는 과정은 굴곡과 위기의 연속이었다(이 역시 브런치에 구구절절 적은 바 있다). 결코 녹록지 않았으나, 결국엔 나와 아이 둘 다 무사했으니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감사했다.

둘째를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된 후 나는 아이의 건강한 출산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14주 무렵에 자궁경부봉축술(예방맥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에 올랐다. 한 달 동안 씻고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누워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과 첫째, 친정 식구들이 모두 힘을 보태주었다.






둘째가 왔음을 알아차린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 계속 머무르는 단어가 있다.

헌신.

자못 비장한 분위기가 가득하지만,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라는 뜻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솔직히 첫째 때는 감사함을 느끼기 어려웠다. 낯선 몸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다. 육아를 하면서부터는 멀어져 가는 나의 커리어를 안쓰러워했었다.

그러나 어느새 훌쩍 자란 첫째를 보며, 나는 이 시간이 결코 길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희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선물을 받았다. 나는 완벽한 엄마는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되지 못할 테지만, 적어도 아이를 낳기 이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둘째는 더 의지적으로 집중하여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여전히 앞으로 어떤 위기가 생길지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번 해 보았으니 두 번 못할 일도 없을까? 경력직의 진가는 이럴 때 발휘하는 것이라 낙관해 본다.






예전에 운석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운석에는 우주의 신비가 담겨 있고, 지구에는 없는 귀한 물질이 존재하기도 한다. '거대한 운석이 충돌하면 지구의 생태계가 위협받는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동시에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창이 되기에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아이를 낳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느낀다. 멀고 먼 우주를 유영하는 수많은 유성체 중 나의 지구로 끌어당겨진 존재. 내 삶의 지형을 흔들 정도로 위력적인 존재. 나와 닮아 보이지만 알면 알수록 오묘한 존재.  그래서 나는 미지의 돌을 탐구하는 과학자처럼 시시때때로 아이를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앞서 떨어진 운석 1호는 내가 미처 몰랐던 세상을 열어준 소중한 보석 1호가 되었다. 그리고 5년이 흘러, 두 번째 운석을 맞을 준비를 한다. 한동안 고요하던 세계에 맞부딪쳐  이 육중한 생명이 내게 어떤 영향을 줄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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