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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Jan 13. 2024

이불 밖은 위험해! 조심스러운 아이

위험회피/조심성/내향성

사람은 누구나 위험하거나 혐오스러운 자극을 만나면 위축되고 그것을 피하려는 경향성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하고 있던 행동을 억제하거나 중단하고, 새로운 행동을 시작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지요.


다만 기질적으로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기질 관련 연구에서는 이러한 성향을 측정하기 위해 '위험회피(Harm Avoidance), '행동억제(Behavioral inhibition)', '조심성(Cautiousness)'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해 왔어요. 학자마다 정의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어요.


위험하거나 처벌이 예상될 때(민병배 등, 2020)나 낯설거나 새롭거나 예기치 못한 자극이 나타날 때(최은실 등, 2022) 회피, 억제, 위축되는 성향


이때 자극은 사람이나 장소가 될 수도 있고 특정 사물이나 사건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험회피(조심성) 성향의 강도가 높고 낮음에 따라 다음과 같은 특성이 나타날 수 있어요.



위험회피 낮음  ↔ 위험회피 높음


자신감 있고 유연한 ↔

조심성이 많고 잘 긴장하는

걱정이 적고 낙천적인 

미리 염려하고 걱정하는(예기불안)

대부분의 상황에서 침착하며 안정적임  

불확실하거나 낯선 상황에 대해 두려움이 많음

사교적이며 수줍음이 적음 ↔

수줍음이 많음(특히 낯선 상황에서)

활력이 잘 유지되고 에너지 회복이 빠른 편 ↔

활력이 적고 에너지 회복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림



* 이전글(자극추구/활동성)을 읽으셨다면, 위험회피(조심성)가 상반된 개념으로 느껴지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자극추구'와 '위험회피' 성향이 동시에 높거나 낮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이 글에서는 '위험회피가 높고 자극추구가 낮은 성향'을 중심으로 설명할 거예요.



 


내 안의 위험신호




위험회피 성향이 높은 사람은 일단 조심스럽습니다. 비판과 처벌에 민감하기 때문에, 내게 다가오는 자극을 신중히 분석하고 위험성을 판단합니다. 또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기보다는 안전하고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해요. 이러한 점 때문에 이들은 준비성이 좋고 좀처럼 실수나 위험한 일을 만들지 않고 진중한 느낌을 줍니다.


다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도 과하게 걱정하거나 염려해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고, 수줍음과 긴장감도 잘 느끼는 편입니다.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을 오랫동안 떠올리며 '이불킥'을 하기도 하지요. 특히 낯설거나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성향이 더 두드러집니다. 사람이 많거나 새로운 장소 등은 이들에게 편한 환경이 아니지요.



반면에 위험회피 성향이 낮으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극이 '위험' 또는 '혐오'로 해석될 여지가 적어요. 그래서 걱정이 별로 없고 낙관적이며 여유롭고 유연한 편입니다. 대부분의 사회적 상황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며 사교적이지요. 긴장을 덜 하는 편이니 에너지 소모도 많지 않고요.


하지만 위험회피가 지나치게 낮아도 문제가 되는데, 위험에 둔감하고 경계심이 적으며 지나치게 낙관하여 무모하게 행동하거나 위험한 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자극추구' 성향이 높고 '의도적 조절' 성향은 낮다면 이러한 면이 더 증폭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위험회피가 매우 낮을 때에는 의식적으로 주변의 신호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위험회피(조심성)와 내향성의 관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뭔가 내향적인 사람이랑 비슷한 느낌인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실제로 위험회피(조심성) 기질 특성과 내향적 성격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센서티브>, <조용해도 민감해도 괜찮아>의 저자 일자 샌드는 내향적 성격은 전체 인구의 30~50%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의 책에는 자신이 외향 또는 내향 중 어느 성향에 더 가까운지를 알아볼 수 있는 간이 테스트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테스트 A.

파티나 모임이 없는 주말은 따분하며, 일요일 저녁에는 의기소침해진다.

모든 분야를 두루 아는 건 좋지만, 특정 주제를 오랫동안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면 지루해진다.

신나는 일을 좋아하고, 별 고민 없이 새로운 경험에 뛰어든다.

말하면서 동시에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다.

지루함을 피하려고 품을 많이 팔며, 약속이나 일정을 되도록 빡빡하게 잡는 편이다.


테스트 B.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면, 꼼꼼하게 준비하는 편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내 경험이 일반적인 관점과 다르면, 나 자신의 논리나 직관에 더 귀 기울이는 편이다.

생각이 너무 많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친구를 신중하게 선택한다. 일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함께라면 즐거운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혼자 있는 편이 낫다.

주변에서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면 피곤해지며, 혼자서 또는 익숙한 사람과 함께 평화롭고 조용히 쉬는 게 더 좋다.



테스트 A에서 '아니요', 테스트 B에서 '예'라고 답한 횟수가 많을수록 내향성이 높습니다. 테스트 B의 문항에서 위험회피가 높은 사람의 특성이 보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계속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요. 위험회피(조심성) 기질에 영향을 주는 '행동 억제 체계(BIS)'가 신경전달물질 중 세로토닌 경로에 의해 조절되는데, 내향성 또한 세로토닌의 영향을 받는 성격 요인이기에 연관성이 높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가설입니다.


실제로 기질 검사를 해보면, 위험회피 기질이 강한 사람이 내향적인 성격을 가지는 비율이 높은 편니다. 성인은 아동과 달리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발달과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상황에서 좀 더 자신감 있게 자신을 표현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해서, 장기간 자신의 기질에 맞지 않는 활동을 지속한다면 어려움을 느낄 수 있겠지요.





'능력'이 아닌 '성향'의 차이



언어재활사로 현장에서 언어상담과 평가를 진행하면서,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을 많이 만났어요. 부모님들도 걱정이 많으셨지요. 언어발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도 많이 하셨었고요.


"너무 수줍어서 학교에서 제대로 말을 못 해요."

"좀 더 자신감 있게 표현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런 경우,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로 언어발달이 늦어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언어치료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좋아집니다. 하지만 기질적으로 위험회피 성향이 높아 수줍음이 많다면, 언어 능력이 좋아진다고 해서 저절로 자신감이 높아지고 활발해지지는 않아요. '능력'이 아닌 '성향'의 차이이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실험이 있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당신의 성격>에서는 수줍음이 많은 아이의 이야기 검사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요. 연구팀은 아이들에게 4장의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보도록 했어요.


이때 어떤 아이들은 망설임 없이 이야기를 생각해서 말했지만, 수줍은 기질의 아이들은 그림을 한참 쳐다보고도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출처: <우리 아이 성격의 비밀> 30p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 10분 정도 잠깐 생각할 시간을 주자, 반응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제의 유형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는데,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은 역할극 과제보다 글로 이야기를 썼을 때 더 잘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출처: <우리 아이 성격의 비밀> 31p


수줍음이 필요한 아이들은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리고 자신이 안전하게 생각하는 방법일 때 더 자신을 잘 드러냄을 알 수 있어요.







가끔 브런치스토리 글을 읽으면, 여러 사람들의 성향이 드러나서 재미있을 때가 많아요. 자신이 경험한 바를 유쾌하게 풀어내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섬세히 돌아보며 성찰하는 분도 있지요. 


어쩌면 위험회피 기질이 높은 제가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아마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저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감 있고 적극적인 태도가 선호되는 사회에서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생각하는 나를 긍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험회피 특성이 높은 사람은  바삐 흘러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계속 자신을 되돌아보고 신중하게 내딛는 호수와 같은 존재입니다. 



<조용해도 민감해도 괜찮아> 책의 8장 소제목은 '이불 밖에서 기쁨과 의미 찾기'입니다. 저자의 표현처럼 "내성적이거나 민감한 사람인 것도, 자기 성격 유형대로 행동하는 것도 전혀 문제없는 일"입니다. 오늘도 당신의 고유함이 빛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 오늘은 위험회피 기질 특성의 전반적인 특성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위험회피 기질이 높은 아이들을 위한 양육팁은 다음 글에서 다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일자 샌드(2019). <조용해도 민감해도 괜찮아>. 한빛 비즈

EBS 다큐프라임 '당신의 성격' 제작팀, 김현수(2016). <우리 아이 성격의 비밀>. 블루트리

최은실 외(2022). <STS 6요인 기질검사 전문가 지침서>. 인싸이트

민병배 외(2020). <TCI 기질 및 성격검사 통합 매뉴얼 개정판>. 마음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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