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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Jan 05. 2024

'당신'이라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세 개의 장치

행동 활성화 체계, 행동 억제 체계, 행동 유지 체계


사람은 기질적으로 세 가지 행동 체계를 가집니다. 따라서 나의 기질에 따라 행동 전략도 달라질 수 있지요. 새해를 맞아 각자 마음에 계획하신 바가 다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신년 계획을 세운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엽니다.




정신과 의사, 기질에 관심을 가지다



C. Robert Cloninger이전에 제가 쓴 글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인물이지요.



cloninger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 및 유전학 교수였습니다. 그의 기질 모형은 gray라는 학자가 1982년에 제시한 '강화 민감성 이론'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gray는 사람이 행동할 때 기질적으로 각각 다른 동기 체계를 가진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행동 활성화 체계(behavioral activation system; BAS)''행동 억제 체계(behavioral inhibition system; BIS)'로 명명했지요.


여기에 cloninger는 행동의 지속과 관련되는 '행동 유지 체계(behavioral maintenance system; BMS)'를 추가하여, 독자적인 기질 모형을 만들게 됩니다.



1. 행동 활성화 체계(BAS)

- 새로운 자극이나 보상신호에 대한 반응, 혹은 처벌을 적극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반응으로 행동이 활성화되는 기능을 조절하는 체계


2. 행동 억제 체계(BIS)

- 처벌이나 위험의 신호, 혹은 보상부재의 신호에 대한 반응으로 행동이 억제되는 기능을 조절하는 체계


3. 행동 유지 체계(BMS)

- 이전에 보상된 행동이 지속적 강화 없이도 일정 시간 동안 유지되는 기능을 조절하는 체계



cloninger는 이 각각의 체계에서 비롯되는 개인차를 '기질'로 정의하고, 각각의 행동 체계와 네 가지 기질 차원이 연결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1. 자극추구(Novelty Seeking)

- 흥분과 보상을 추구하는 탐색 활동을 하며 처벌과 단조로움을 적극적으로 회피하는 기질적 성향(에서의 개인차를 측정하는 척도)


2. 위험회피(Harm Aboidance)

- 처벌이나 위험이 예상될 때 이를 회피하기 위해 행동을 억제하거나 중단하는 기질적 성향(에서의 개인차를 측정하는 척도)


3. 사회적 민감성(Reward Dependence)

- 사회적 보상 신호(타인의 칭찬, 찡그림 등)에 대한 의존성과 타인의 감정에 대한 민감성(에서의 개인차를 측정하는 척도)


4. 인내력(Persistence)

- 지금 당장 보상이 주어지지 않거나, 간헐적으로만 보상이 주어지거나, 심지어 간헐적인 처벌이 주어지더라도 한 번 보상된 행동을 일정 시간 동안 꾸준히 지속하려는 기질적 성향(에서의 개인차를 측정하는 척도)





액셀과 브레이크,

행동 활성화 체계와 행동 억제 체계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때 자연스럽게 자신이 타고난 기질에 따라 반응을 합니다. 특히 행동 활성화 체계와 행동 억제 체계는 마치 자동차의 액셀과 브레이크처럼 우리의 행동에 가속과 제동을 적절하게 걸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행동 활성화 체계는 마치 액셀러레이터(가속 페달)와 같습니다. 새롭고, 낯설고, 신기한 자극을 보면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려 합니다. 반면에 지루하거나 벌이 될 수 있는 자극은 적극적으로 피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질적으로 '자극추구' 성향이 높고 '위험회피' 성향이 낮은 사람은 행동 활성화 체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어떠한 일을 할 때 두려움이 없고 실행이 매우 빠른 편입니다. 반면에 쉽게 흥분하기 쉽고 충동적으로 일을 진행하여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에 행동 억제 체계는 브레이크(제동 페달)와 비슷합니다. 위험하거나, 혐오스럽거나, 무서운 자극 신호가 들어왔을 때 속도를 감소(행동 억제)시키거나 멈추는(행동 중단) 역할을 합니다.


특히 기질적으로 '위험회피' 성향이 높은데 '자극추구' 성향은 낮은 사람이라면, 신중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안전한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이러한 과정에서 지나치게 조심성이 많고 위축되어 새로운 일에 선뜻 도전하기를 어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활동 활성화 체계와 활동 억제 체계와의 관련성입니다. 지금까지 설명을 들었다면 행동 활성화 체계와 활동 억제 체계가 마치 대립 관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실 수 있어요.


실제로 기질 검사를 해보면 '자극추구가 높고 위험회피가 낮은 경우'와 '자극추구가 낮고 위험회피가 높은 경우'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나타내긴 합니다. 대개 전자는 외향적인 성격, 후자는 내향적인 성격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극추구'와 '위험회피'가 동시에 높은 경우도 있습니다(그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있습니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다니,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정말 그러한 기질적 성향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기질을 지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고충이 좀 더 심해집니다. 이 글에서 설명하기엔 너무 길기에, 추후에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클러치와 기어,

행동 유지 체계



요즘은 오토 면허를 많이 취득하지만, 저는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했기 때문에 수동변속기 조작법을 배웠었는데요. 자동차의 엔진이 아무리 좋아도 이 에너지를 주행 상황에 적절한 크기의 힘과 회전수로 바꿔주지 않으면, 차에 무리가 가고 급기야는 시동이 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클러치와 기어를 사용해서 엔진의 동력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자동차의 주행을 유지시켜 주게 되는데요. 행동 유지 체계 또한 이처럼 우리의 행동을 유지하거나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회적 민감성'은 언뜻 보면 '사회성'과 비슷하게 생각되지만, cloninger가 설명한 원래 의미는 'Reward Dependence' 즉 '(사회적) 보상 의존성'에 더 가깝습니다.


'사회적 민감성' 기질이 높은 사람은 사회적 보상, 즉 타인의 감정이나 비언어적 표현에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조절합니다. 그래서 타인에게 공감을 잘하고, 따뜻하고, 배려하는 경향을 갖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타인에게 너무 의존하거나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지나치게 조절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면 '사회적 민감성' 기질이 낮은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오는 사회적 보상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으며 독립적인 성향을 갖습니다. 이러한 면 때문에 정서적으로 차갑거나 무심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인내력' 차원 또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내력이 강하다'와는 비슷한 듯 다른 개념이에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보상이 주어지면 그 행동이 좀 더 잘 유지된다는 건 다 아실 거예요.


그런데 기질적으로 그러한 보상이 행동을 시작한 이후로 거의 주어지지 않거나, 정말 띄엄띄엄 주어지거나, 심지어 보상이 아니라 부정적인 자극이 들어온다 할지라도 행동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야망과 끈기가 있는 완벽주의자' 스타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인내력 기질이 높습니다.


반면에 인내력 기질이 낮은 사람들은 행동을 유지해도 기대한 보상이 들어오지 않을 때, 그 행동에 대한 지속력이 낮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의지가 약하고 야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일이 잘 안 풀린다 싶으면 훌훌 털고 다른 활동으로 전환하는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인내력'이라는 워딩 때문에 '인내력 기질이 높을수록 좋고 낮을수록 안 좋은 것 아닌가요?'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이 '인내력' 기질이 너무 높은 경우 빠르게 의사결정을 바꾸거나 철회해야 하는 상황에도 고집을 부리다가 손해를 보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목표에 지나치게 매달릴 수도 있습니다. 아주 작은 보상에도 계속 행동을 유지하기에 도박 중독 등에 취약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자동차가

마음에 들지 않다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동차(기질)은 어떠한가요? 어쩌면 내가 가진 기질이 영 마뜩잖을 수도 있습니다. 남의 것이 더 좋아보일 수도 있고요.


저는 '자극추구'는 중간, '위험회피'는 상당히 높음, '사회적 민감성'은 중간에 가까운 높음, '인내력'은 낮은 편입니다. 그래서 흥미가 당기는 것을 보면 '어? 재미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내 '아, 근데 이것도 걸리고 저것도 걸리네...' 하는 생각이 들어 실행에 옮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민감성'은 높은 반면에 '인내력'은 낮은 편이라 다른 이들의 반응이 좋지 않거나 생각만큼 성과가 나지 않으면 쉽게 동기를 잃기도 해요.


이전에는 이런 제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왜 나는 겁이 많을까? 왜 나는 다른 사람 눈치를 많이 볼까? 왜 나는 한번 시작한 일을 끝까지 끝내지 못할까? 하며 자책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기질을 정확히 이해하니, 내가 가진 장점도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충동적으로 결정해서 흑역사(?)를 만들 일이 적고, 주변 사람을 챙기며 일할 수 있고, 안 되겠다 싶으면 빠르게 전환해서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는 것... 누군가는 그런 제가 부러울 수도 있을 테지요.


그리고 나의 기질을 고려하되, 평소에 선택해보지 않았을 행동에 도전하는 방법도 연습하고 있습니다.


- 좀 더 과감하게 행동해 보기(아무리 충동적인 결정을 해도 '자극추구'가 높은 사람에 비해선 매우 신중해 보일 테니까요)


-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닌, 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기


- 낮은 인내력을 보완할 수 있는 행동 유지 장치 찾기(연재 브런치북도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기질 자체에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그 기질을 조절하고 활용하는 능력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자동차 기종마다 타고난 특성은 다르지만, 운전자의 실력에 따라 퍼포먼스가 달라지는 것처럼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또한 자신이 가진 기질을 잘 활용한다면, 어디든 우리가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24년, 당신의 힘찬 주행을 응원합니다.

   




* 행동 체계와 기질 차원에 대한 설명은 민병배, 오현숙, 이주영(2021) <기질 및 성격검사 통합 매뉴얼 개정판>에서 일부 발췌하였습니다.


** cloninger의 기질 이론은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test) 기질 및 성격 검사로 개발되었으며, 한국에도 표준화가 되어 있습니다. 가까운 심리상담센터를 통해 TCI 검사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각각의 기질차원(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인내력)에 대한 최신 이론과 적용점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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