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시간에는 '기질'과 '성격'의 차이를 설명하고, 각자가 타고난 기질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기질에 적합한 양육'과 사회화 경험을 통해 좋은 성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오늘 하게 될 이야기는 부모로서 경험하는 다소 불편한 진실(?)과 맞닿아있습니다.'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속담이 있지요. 그러나 이렇게 사랑스러운 내 아이와의 상호작용이어려운 부모도 분명 있습니다.
"아이를 이해하기 어려워요."
"나름 최선을 다하는데, 정말 안 맞아요."
자녀가 여럿 있는 경우 편애와 연결되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집니다. 분명히 내 피를 이어받은 아이들이고 모두 사랑하지만, 어떤 아이는 좀 더 편한 반면 어떤 아이는 왠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저도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이런 느낌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었어요. 내 아이는 마냥 이쁠 것 같았죠! 하지만 실제로는 강렬한 애증을 느끼는 순간도 많았고 그런 제 모습에 죄책감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부모 상담을 할 때 이러한 불편감을 느끼는 부모가 있다면, 우선 그 부모가 과거에 받았던 양육 경험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과거 부모와의 관계는 현재 자녀의 관계 형성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0% 부모 쪽에게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떤 자녀는 편하고, 어떤 자녀는 불편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내 아이가 불편한 이유'에 대한 고찰
* 부모 상담을 할 때에는 여러 요인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분석하지만, 이 글에서는 아이의 기질에 초점을 두어 살펴보겠습니다.
1) 기질이 세고, 까다로운 아이
부모가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자녀도 부모에게 영향을 줍니다. 기질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특정기질의 강도가 매우 세거나 약할 때, 또는 특정 기질의 높고 낮음의 조합에 따라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감각적인 민감성이 높은 아이는 특정 감각에 크게 반응하며 강한 거부 반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양육자와의 상호작용 욕구가 강한 아이는혼자 놀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육아가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정말 까다로운 기질인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칫하면 선입견을 가지고 아이를 볼 수도 있고, 사람마다 아이의 어떠한 기질을 평가하는 관점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가 낳고 기르는 자녀라 할지라도, 아이를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의 기질 때문에 육아가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기질 검사와 전문가의 해석을 통해 객관적으로 아이를 관찰해 보기를 권합니다.
2) 부모와 아이의 기질이 다른 경우
이전 글에서 설명한 대로 기질은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반응'에 가깝기에, 나의 성향과 다른 선택을 하는 자녀가 마치 외계인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육자가 외향적인데 자녀는 그렇지 않은 경우, 양육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방향대로 아이를 다양한 장소와 사람에 노출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아이가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죠.
그렇게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아이의 반응이 좋지 않고 오히려 "나는 집에 있을래."라는 말을 듣는다면?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집에만 있으려는 아이가 걱정되어 밖으로 끌고 나오기도 합니다.
아이 입장에서도 곤욕스럽습니다. 주말에는 좀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은데, 부모님 손에 이끌려 여행이나 캠핑을 다녀야 합니다. 말 그대로 '동상이몽'입니다.
이렇듯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 강하거나, 부모와 자녀의 기질이 다른 경우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의문들이 남습니다.
- 그럼소위 '순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까다로운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비교하였을 때 육아가 쉬운가요?
- 자신의 기질과 비슷한 아이를 키우면 육아가 편하고 쉬운가요?
- '까다로운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모두 자녀와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의 힌트를 찾기 위해 1970년대의 뉴욕으로 거슬러 올라가보겠습니다.
상호작용의 열쇠, 조화적합성
기질 연구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알렉산더 토마스(A.Thomas)와 스텔라 체스(S.Chess)입니다.
이 두 사람은 부부이며, 아동정신과 의사이자 발달심리학자였습니다. 이들은 1970년대에 대규모 뉴욕종단연구(NYLS)를 수행하였고, '순한 기질', '까다로운 기질', '더딘(느린) 기질' 세 가지 분류를 제시하였습니다. 아동 관련 전공서적이나 육아서 등에도 자주 등장하는, 매우 유명하고 고전적인 분류 기준입니다.
이들은 기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조화의적합성(goodness-of-fit)'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Hipson & Séguin, 2017).
1.아동의 기질은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행동 및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2.아동의 기질이 환경의 요구와 일치할 때(good fit) 최적의 이상적인 발달을 촉진한다.
* 여기서 '환경'이란 사회경제적 지위, 부모의 (양육)행동, 교사와 아동의 관계 등을 포괄하는 개념
1번은 이미 설명한 바 있지요. 2번은 아동의 기질과 더불어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환경 안에 부모의 양육도 들어가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 아이의 기질에 대한 이해와 수용
- 아이의 기질에 대한 적합한 기대와 요구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한 아이가 있습니다. 기질검사 결과 활동성은 낮고, 조심성과 사회적 민감성이 높게 나왔습니다. 기관에서는 매우 조용하고 나서지 않으며 주로 친구들에게 양보하는 편입니다.
이 아이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을 때 양육자 a와 양육자 b는 각각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a: 아이가 너무 소심하고 느려서 걱정이에요. 친구들이랑 놀 때도 양보만 하니까 답답해요. 그래서 자신감 있게 좀 행동하라고 계속 얘기하는데, 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니... 앞으로도 이러면 나중에 어떡하나 싶어요.
b: 아이도 자기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기다려주면 잘하거든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지는 않지만 싸우거나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아요.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가 스스로 힘들어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하는 대로 지켜봐 주고 싶어요.
어떤 양육자가 더 조화적합성이 높아 보이나요? 자연스럽게 b를 선택하셨나요? 하지만 실제로 자녀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우리는 a의 관점을 품을 때가 꽤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알게 모르게 아이에게 전달됩니다.
아이가 어떤 기질인지, 그리고 나와 얼마나 다른지(또는 비슷한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아이의 기질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과 태도, 즉 조화적합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조화적합성이 낮은 부모는 자녀의 부족한 점이 자꾸 보입니다. 순하면 순해서 미련해 보이고, 나와 비슷하면 왜 저런 점을 닮았는지 답답합니다.그래서 자꾸 무리한 요구와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이 또한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상호작용의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지는 셈입니다.
반면 조화적합성이 높은 부모는 자녀의 개별성에 집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아이에게 어떻게 최적의 지원을 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아이가 정말 객관적으로 까다로운 기질이어도 훌륭하게 자라는 경우, 조화적합성이 높은 환경이 뒷받침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관점과 태도를 바꾸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단 아이의 기질에 나의 눈을 맞추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아이가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상호작용의 방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춰야 비로소 선명한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요.
아이와 나의 불일치를 발견하는 것, 오히려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입니다. 때가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하여 나가야 합니다. 자녀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내 아이는 내가 잘 안다'라고 과신하거나, 자녀를 지나치게 동일시하다가 뒤늦게 문제가 되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아이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때에, 아이도 마음문을 열고 다가와 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이와의 소통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참고문헌
Hipson, Will & Séguin, Daniel (2017). Goodness of fit model(In book: Encyclopedia of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