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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Dec 22. 2023

타고난 기질, 바뀔 수 있나요?

기질과 성격의 오묘한 상관관계

현장에서 기질 관련 상담을 진행할 때, 가장 많이 하시는 질문이 있습니다.


"기질이 바뀔 수 있나요?"


진짜 호기심에 질문하시는 분도 있지만, 이 질문 안에는 '바꿀 수 있겠지요?'라는 은근한 기대가 담긴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기질이 강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는 더욱 고민이 큽니다.


수줍어 기관 적응이 오래 걸리는 아이, 집중이 약해서 지적을 받는 아이, 감각이 예민한 아이 등을 키우는 부모님은 '이 아이가 언제까지 이런 어려움을 겪을까? 혹시 성인이 될 때까지 달라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를 키우며 '혹시 이대로 커서 ADHD를 갖게 되는 건 아닐까?' 이런 류의 별별 고민을  했었거든요(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내 자식 앞에선 장사 없습니다).


다시 "기질은 바뀔 수 있나요?"라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기질 관련 연구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습니다.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타고난 기질을 바꾸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않습니다."




'기질'과 '성격' 구분하기



이쯤에서 이런 의문이 드실 수도 있겠습니다.


"저나 주변을 보면 어릴 때와 성격이 바뀐 경우도 있는데요?"

"MBTI는 바뀌기도 한다잖아요."


네, 맞습니다. '성격'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려면 먼저 '기질'과 '성격'을 구분해야 합니다. 실생활에서는 ‘기질’과 ‘성격’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기도 합니다.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를 가리켜 “성격 있네!”라고 말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양육자가 '기질'과 '성격'을 혼동하게 되면 여러 가지 오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기질별 육아혁명>에서 박진균 소아정신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 기질에는 좋은 기질과 나쁜 기질이 있다?

  – 기질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 ‘좋은 기질’ 혹은 ‘나쁜 기질’이라는 것은 없다. 독특한 기질을 가지는 모든 아이들은 제각각의 성격적인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2. 기질은 행동장애나 정신과적 질환과 관련된다?

 – 기질이 직접적으로 행동장애 또는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질에 잘 맞지 않는 양육이 지속되면 갈등, 반항, 내적 부적응 등을 유발하여 문제행동으로 이어질 수는 있다.


3. ‘기질’과 ‘성격’은 거의 같은 개념이다?

 - 성인의 ‘성격’은 아동기의 ‘기질’이 포함된 더 복잡하고 총괄적인 개념이다. 이론적으로 ‘성격’은 아동기의 ‘기질’에 성장하며 더해진 환경·경험·동기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만들어진 복잡한 구성체이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교육과 조언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성인은 자신의 기질을 어느 정도 감추거나 성숙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4. ‘기질을 고려한 양육’은 ‘허용적인 양육’을 의미한다?

 - 기질을 고려한 양육이 절대로 아동의 불순응 또는 무례함을 용납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부모는 아동에게 순응과 사회화를 가르칠 책임이 있다. 다만 기질을 고려하지 못한 양육은 오히려 아동으로 하여금 반항과 무절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어떤 기질에 있어서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다만 특정 상황에서 어려움을 유발하는 위험요인, 또는 반대로 보호요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


사람은 '발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교육과 경험에 따라 타고난 기질을 조절(조율)하는 방법을 배워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타고난 '기질'을 바탕으로 성숙한 '성격'을 갖추게 됩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양육자가 '기질에 잘 맞지 않는 양육'을 지속하는 등 자신의 기질과 관련된 부정적 경험을 가지게 되면, 아이는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게 되거나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받아 저항하고나 위축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장과정에서 자신의 기질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할 기회가 적었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타고난 기질을 조절하지 못하여 미성숙한 성격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우울증에 취약한 기질이 있을까?



현장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기질이 잘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 좌절감을 느끼는 분도 종종 있습니다. 특히 자신 또는 자녀의 기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에 더욱 그러합니다.


수줍음을 많이 느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이에게서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면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특정 성격장애나 심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 이러한 죄책감은 더 심화됩니다. 정말 우리는 타고난 대로 살 수밖에 없는 걸까요?


실제로 특정 기질이나 성격 요인이 성격장애(강박증, 우울증 등)와 연결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심성(위험회피)이나 부정정서 기질이 높을 때 불안 또는 우울 정도가 더욱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Big5 성격 모형 이론에서는 신경성(정서적 불안정성) 요인이 높으면 스트레스가 높고 불행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특정 기질 또는 성격 요인으로 성격장애 등을 예측할 수 있을까?'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미국 워싱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C.Robert.Cloninger 박사입니다.


그림 1 출처. https://psychiatry.wustl.edu/people/c-robert-cloninger-md-phd/
그림 2 출처.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Psychobiological-Model-of-Temperament-and-Character_fig1_27


그는 정신과 의사였기에 타고난 기질과 성격장애(강박성, 경계성, 의존성 성격장애 등)의 연관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취약한 지점을 예측할 수 있다면 미리 그에 맞는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연구를 거듭하면서, 각 기질 요인이 신뢰롭고 안정적인 속성을 보인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개인의 심리적 성숙과 사회생활을 다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기질 프로파일을 가졌음에도 누군가는 성격장애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누군가는 심리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죠.


Cloninger는 이러한 차이를 '성격(Character)'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하였습니다. 사람은 어떠한 자극을 받을 때 일단 기질에 따라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인 정서적 반응이 나오지만, 기질에 의한 자극-반응 특성은 자기개념(성격)에 의해 "이 자극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예를 들어 자극추구가 높고 위험회피가 낮은 기질은 호기심이 많고 두려움이 적은 반면, 충동적이고 위험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성향을 지닙니다. 여기에 자율성(절제력과 책임감, 자존감 등)과 연대감(타인에 대한 수용능력, 공감)의 자기개념이 발달하면 기질적 강점은 극대화되고 약점은 보완되어 자신감 넘치고 능동적이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이론에 의거하여 개발된 검사가 바로 '기질 및 성격검사(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TCI)'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표준화되어 임상 현장에서 기질과 성격발달을 측정하는 신뢰로운 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래서 우리는 '기질'을 바꾸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질'을 수용해야 합니다. 기질을 무리하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결코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양육자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성격'적 측면이지만, 그 성격마저 타고난 기질의 영향을 완전히 떠날 수는 없어요. 나무로 튼튼한 식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철을 녹이는 용광로를 만들 수는 없는 것처럼요.  


그러나,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양육자가 '기질에 잘 맞는 양육'을 했을 때, 아이가 가지게 되는 이점이 분명히 있다는 뜻도 됩니다.


백문이불여일견, 다음 그래프를 한번 볼까요?


표 출처: <발달심리학> 곽금주. 학지사. 2016. 350p.


김수정과 곽금주(2011)는 부정 반응이 높은 기질을 가진 까다로운 영아가 긍정적 양육을 받았을 때의 차이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까다로운 기질의 영아가 긍정적 양육을 적게 받았을 때는 학업 수행 적응력이 낮았지만, 긍정적 양육을 받았을 때는 그렇지 않은 기질의 영아보다 오히려 높은 학업 수행 적응 점수를 보였습니다.


저는 책에서 이 그래프를 보고 마치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 지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는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그런 희망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라인홀드 니부어





* '기질에 맞는 양육'과 관련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조화적합성(goodness of fit)'입니다.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설명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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