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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Dec 19. 2023

[프롤로그] 아이들의 또 다른 언어, '기질'


MBTI 이전에 기질이 있었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이 질문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요즘입니다. '과몰입'의 부작용과 과학적 근거 관련 이슈가 있기도 했지만, MBTI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는 건, 그만큼 개인의 특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되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과연 '개인의 차이'를 결정하는 요소는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걸까요? MBTI 그 이전에, '나'를 구성하는 특징은 과연 무엇일까요?


© Unsplash


여러분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그 아이를 한번 떠올려보세요. 만약 아이가 없다면 주변에서 자주 만나는 아이를 생각해 보아도 좋고요.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어릴 때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되겠네요.


당신은 '어떤 아이'였나요?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수식하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었을 거예요. 누군가는 '순둥이' 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까칠이', '까불이'가 별명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분은 아실 거예요. 기분이 좋을 때, 불편할 때, 졸릴 때 아이들의 반응이 다 다르다는 걸요. 어떤 아이는 몸을 움직이며 우렁차게 울고 어떤 아이는 아주 작게 흐느낍니다. 어떤 아이는 전혀 반응이 없을 수도 있고요.


아이들은 모두 타고난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성향은 아이가 걷고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표현되며, 양육자도 이러한 기질의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기질은 무엇인가요?



학자마다 '기질(temperament)'을 정의하는 방식은 참으로 다양합니다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생애 초기부터 드러나는
상황, 정서, 행동과 관련된 반응



<육아 고민? 기질육아가 답이다!>를 쓴 최은정(2019)은 기질을 ‘타고난 경향성’, 즉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방향'이라고 설명합니다. 즉 우리는 기질대로 반응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거예요. 때로는 나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요.


기질을 연구한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주요 특징을 밝혀냈습니다.


1) 생물적,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


- 우리의 기질은 빼도 박도 못하게 어머니와 아버지, 아니면 그 윗세대로부터 왔습니다.


2) 인생 전반에 걸쳐 꽤 안정적이다.


- 한 연구에 의하면, 생후 18개월 무렵 수줍음을 느끼는 뇌영역이 활성화되었던 아이는 성인이 되어 "더 이상 수줍음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응답했음에도 실제로는 수줍음을 느끼는 영역이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학자마다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기질의 안정성은 상당히 강하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3) 기질을 바탕으로 성격(personality)이 형성된다.


- 타고난 기질이 비슷하더라도, 양육자의 태도나 사회적 경험 등 환경의 영향을 받아 각자 고유한 성격을 발전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혹자는 기질을 '타고난 체격', 성격을 '사회적인 옷'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조심성(위험회피)' 기질이 높을 때, 양육자가 이를 존중하고 기다려주면 신중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성격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에 양육자가 아이의 기질을 '소심하다'라고 평가하여 지나치게 낯선 환경에 노출시키면 더욱 회피적이고 위축되는 성격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요약하자면, 기질은 성격이 형성되기 이전, 생애 초기부터 가지고 태어난 반응 양식을 의미합니다. 기질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상당히 안정적입니다. 다만 경험 등을 통해 마치 옷을 입듯 성격을 입을 수는 있지요.




아이들의 기질이 중요한 이유



영유아기는 경험의 영향이 크지 않아 타고난 본래의 기질이 두드러지는 시기입니다(이은경, 2019). 즉, 아이들은 외부의 환경에 영향을 적게 받기에 기질이 더 잘 드러납니. 이러한 연유로, 대부분의 기질 연구는 주로 영유아를 대상으로 이루어져 왔어요.


기질은 한 개인이 사회와 상호작용할 때 강력한 영향을 발휘합니다. 특히 영유아기에게는 더더욱이요. 그래서 저는 언어병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기질을 '아이들의 또 다른 언어'에 비유하곤 합니다.


© Unsplash


저는 언어재활사로서 언어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많이 만나왔고, 아이들의 양육자에게 기질에 맞춘 상호작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열심히 강조하고 있어요.


아이들의 기질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한 아이의 엄마이자 언어재활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아이를 이해하게 되는 만큼 상호작용의 효율성이 커져요.


- 양육자는 아직 말이 트이지 않은 아기와 소통하기 위해 '맘마' 등의 유아어(parentese)나 제스처(baby sign language)를 사용해요. 아이에게 젖을 주는 상황에서 엄마가 아이와 눈을 맞추며 "맘마?"라고 말하고 젖병을 무는 흉내를 내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에 아이의 반응이 사뭇 다를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아이가 어떤 식으로 환경에 반응하는지, 어떤 점을 선호(불편)해하는지, 기질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효율적으로, 깊이 교류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저희 아이는 활동성이 높고 조심성이 낮아서, 제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다른 곳에 가 있을 때가 많았어요. 내향적이고 엉덩이가 무거운 제 입장에선 아무리 좋게 봐도 '산만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어요. 그런데 기질을 이해한 뒤로는 아이와 몸을 움직이는 놀이를 하며 노래를 불렀죠. 제 눈을 보며 '한번 더!' 신나 하던 아이의 눈빛은 제게 큰 보상이 되어줬어요.


또 다른 변화는, 언어치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더 빨리 친밀감을 쌓을 수 있게 된 것이었어요. 활동성이 넘치는 아이에게는 에너제틱하게, 조심성이 강한 아이에게는 가만히 기다려주면서, 아이의 성향에 맞춰 다가가면 아이들도 마음의 문을 빨리 열어주는 걸 느꼈어요.



2) 아동과 부모의 좌절감은 낮추고, 육아자신감을 높여요.


- 표현 언어가 느린 만 3세 아이를 키우는 한 어머니와 상담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아이에게 놀면서 언어 자극을 줘야 하는 건 알겠는데, 문제는 아이와 노는 게 자신이 없고 재미가 없어요. 나름 육아서도 읽고 유튜브도 보면서 최선을 다하는데 아이는 계속 도망가요. 저는 육아를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토로하셨었죠.


기질 검사와 언어 검사를 진행한 결과, 그 아이는 조심성이 매우 강하고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어서 어머니의 발화 유도를 찰떡같이 캐치하고 입을 닫는 아이였어요. 저는 아이의 언어이해력은 좋으니 엄마와 놀이할 때 직접적인 제안을 줄이고 아이가 선호하는 활동 위주로 아이를 따라가면서 놀이해 볼 것을 권했어요.


상담을 진행한 이후 어머니는 '제가 아이를 위해 한 일이 오히려 아이를 부담스럽게 한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고,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한 달 뒤에는 아이의 자발적인 표현이 늘고 있어서 정말 감격스럽다는 피드백을 해주셨고요.  


특히 이런 어려움은 기질 특성이 강한 아이, 소위 '까다로운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가 더 크게 느낍니다. 일반적인 육아조언이 잘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거든요. 기질을 이해하면 양육자도 아이도 서로 즐겁게 상호작용할 수 있고, 양육자의 육아자신감도 높일 수 있어요.






다음 시간에는 기질에 대한 오해와 현장에서 자주 받는 질문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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