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은 어느샌가 MBTI의 감정형(Feeling)과 사고형(Thinking)을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다는 일종의 인터넷 유행이 되었습니다. 이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지는 영상들도 있었는데, 아이들의 반응이 다 달라서 재미있었어요.
어느 날엔가 저도 빵을 사 온 김에 궁금해서 아이에게 "엄마가~ 우울해서 빵을 사 왔어."라고 했더니, "무슨 빵?"이라고 묻고는 "나 이 빵 먹을래."라고 하며 쿨하게 빵 하나를 집어 들고 떠나더라고요.
영아는 생후 1개월 반에서 2개월이 되었을 때, 기쁨이나 분노처럼 타인의 얼굴에 나타나는 여러 정서적 표현을 구분하기 시작한다고 해요(Bomstein & Arterbeny, 2003; 곽금주, 2022에서 재인용).
아이를 키워보신 분은 느끼셨겠지만, 아주 어린아이일지라도 타인의 표정이나 감정에 대한 민감함에 개인차가 있습니다. 엄마의 슬픈 얼굴이나 노래를 듣고도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덤덤한 아이도 있지요. 이러한 개인차는 기질 이론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민감성의 특징
'사회적 민감성'이라는 기질 특성의 정의는 기질 검사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TCI에서의 정의 - 지속적인 강화 없이도 친밀감 혹은 애착이라는 사회적 보상을 위해 행동이 유지되는 경향성 (Reward Dependance)
STA에서의 정의 - 타인의 감정이나 정서 상태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정도 및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으로 공감 능력 발달에 토대가 됨 (SE; social SEnsitivity)
TCI의 정의가 좀 흥미로운데요. 원어명칭의 뜻이 'Reward Dependance', 직역하면 '보상 의존성'입니다. 사회적 민감성을 말하는데 왜 '보상 의존성'이라는 이름을 붙인 걸까요?
사람은 따뜻한 사회적 애착을 얻기 위해 사회적 보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전적인 경향성을 지니고 있어요. 여기서 사회적 보상 신호란 타인의 칭찬, 찡그림 등과 기쁨, 슬픔, 분노, 고통 등의 감정 등을 의미해요.
이러한 사회적 보상 신호에 대한 의존성이 높을수록 타인의 감정이나 정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타인의 지지를 얻고 싶어 한다고 본 것이지요. 반면에 사회적 보상 신호에 대한 의존성이 낮은 사람은, 타인에게 그만큼 원하는 것이 없으니 동기 유발도 적고, 반응도 크지 않아요.
'사회적 민감성'이 높으면 대체로 사회적이고, 감성적이며, 정에 이끌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고 잘 동화되기도 하지요. 이러한 부분 때문에 자신의 의견보다는 타인이나 사회의 결정에 쉽게 휘둘리거나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사회적 민감성'이 낮으면 개인적이고, 이성적이며, 현실적인 느낌을 줍니다. 정서 표현도 쉽게 하지 않기에 무덤덤한 인상을 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냉정하다'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압력에 신경 쓰지 않고 소신 있게 밀어붙이는 독립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해요.
(왼쪽) 사회적 민감성 낮음 - (오른쪽) 사회적 민감성 높음
감성적 호소에 마음이 별로 움직이지 않음 - 정서적 감수성이 높음
정서를 타인에게 쉽게 드러내지 않음 - 정서적으로 쉽게 개방됨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선호 - 사회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선호
타인의 정서적 지지와 인정에 의존적이고 민감함 - 사회적 압력에 신경 쓰지 않고 소신이 있음
이전글에서 "'자극추구'가 높거나 '위험회피'가 낮은 경우 비교적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감 있게 잘 다가간다"라고 설명을 했었어요.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도 사회적인 상황을 선호합니다. 다만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자극추구'가 높은 사람은 사회적 상황에서 호기심을 느껴서 다가가고, '위험회피'가 낮은 사람은 큰 두려움이 없어서 편하게 다가가고,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사람은 사회적 애착을 계속 얻고 싶어서 다가가지요.
그래서 '자극추구'가 낮은데 '사회적 민감성'이 높으면, 사회적 상황에서 굳이 나서서 뭔가를 하는 편은 아니지만, 타인이 다가오면 자신의 정서도 잘 표현하고 따뜻하게 반응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위험회피'가 높은데 '사회적 민감성'이 높으면, 조심스럽게 타인에게 접근하면서도 내면으로는 타인의 지지와 인정을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요. 역으로 타인에게 비난을 받으면 위축되기도 쉽고요.
'사회적 민감성' 기질 특성이 높으면
'사회성'도 좋을까?
'사회성'은 양육자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입니다. 누구라도 우리 아이가 사회에 잘 어울려 살아가길 바라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사회적 민감성' 척도가 낮게 나온 기질검사 결과지를 보고 "역시나 했는데!" 하며 좌절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다면 사회적 민감성 기질이 높으면 사회성도 무조건 좋을까요? 반대로 사회적 민감성이 낮으면 사회성 발달에도 문제가 생길까요?
'타인의 정서에 민감하고 잘 반응하는 것'을 '사회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사회적 민감성'이 '사회성'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높은 사회적 민감성이 사회성 발달에 좋은 자원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실 '(친) 사회성'은 의식적으로 계발되어야 하는 일종의 능력(skill)의 집합에 가까워요.
전문가들이 사회성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목표로 삼는 사회기술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아요. 매우 영역이 넓지요?
출처: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 돕기> 17쪽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볼게요.
- 만 3세 아이 A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선생님을 잘 따르고, 친구들에게도 애정을 많이 표현합니다. 다만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는데, A가 친구들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재빨리 가서 도와준다는 점이에요. 그러면 어떤 친구들은 혼자서 하고 싶었는데 A가 도와줬다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지요. 그러면 A도 친구의 눈물을 보고 함께 그렁그렁하다가 눈물바다가 되곤 합니다.
A는 '친구들을 도와주면 좋아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친구들은 혼자서 해내고 싶어 할 것이다'라는 것까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친구가 울음을 터뜨리면, 눈물의 의미를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에 동조되는 모습을 보이지요.
- 발음 문제로 언어치료실에 찾아온 만 6세 아이 B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셨습니다. "B는 자신의 발음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사람들이 직접 말을 안 해도 표정에서 느끼나 봐요. 유치원에서도 아이 발음이 이상하다고 함부로 대하는 친구가 있는데, 눈치만 보고 자기표현을 못해요."
B는 사회성 발달에 있어 언어적인 어려움과 기질적인 어려움을 함께 갖고 있습니다. 우선 발음이 좋지 않아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또 자신의 주장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조율하는 능력도 사회성에 포함되는데, B는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친구에게도 끌려가고 있어요.
A와 B의 경우 '사회적 민감성'이라는 기질은 높지만, 아직 '사회성'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사회성이 발달하는 과정에 부모와의 애착과 상호작용, 사회생활에서의 경험, 사회기술의 발달, 의식적인 노력 등 더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연대감(Cooperativeness)'으로 나아가기
이전에 TCI 검사에서는 타고난 영역인 '기질'과 후천적인 영역인 '성격'을 함께 측정한다고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 '성격' 척도 중에서'연대감(Cooperativeness)'이라는 지표가사회성 발달과 깊은 연관성이 있어요.
'연대감' 척도는 타인에 대한 수용 능력 및 타인과의 동일시 능력에서의 개인차를 측정해요. 자동적인 반응에 가까운 기질보다 더 의식적이고 성숙한 개념이지요. '연대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만큼이나 타인을 수용하고 존중하며, 진심으로 공감해요. 또 사회 안에서의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사회적인 가치를 중시하고 양심적이지요.
'사회적 민감성'이 낮음에도 '연대감'이 높은 사람들은, 비록 사회적 보상 신호가 기질적으로 내게 큰 동기가 되지는 않지만 사회적 가치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요.
반대로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데 '연대감'이 낮다면, 그저 피상적인 감정 표현에만 머무르거나 대인관계에서 자신이 노력한 만큼 보상(지지와 인정)이 돌아오지 않을 때 상대방을 쉽게 원망할 수 있어요.
(왼쪽) 연대감 낮음 - (오른쪽) 연대감 높음
타인에게 관대하지 않고 비판적인 - 타인을 수용하고 우호적인
타인의 감정에 둔감하고 관심과 배려가 적은 - 타인의 입장에서 공감(empathy)하고 존중하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복수(공격)하려고 하는 - 동정심과 자비심이 많고 용서를 잘하며 관대한
기회주의적이고 자신의 목표만 우선시하는 - 공평과 정직을 우선시하고, 양심적이며 진실한
TCI를 개발한 Cloninger에 의하면 '연대감'을 비롯한 성격 척도는 후천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어요. 그렇기에, 지금 '연대감' 지표가 낮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답니다.
난 너에게 얼마나 공감할까?
Sympathy, Empathy, Compassion의 차이
간혹 기질이나 성격과 연결 지어 "F는 공감 능력이 좋고, T는 그렇지 않다"라고 하거나, "우리 아이는 공감 능력이 떨어져요"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정확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공감'이라고 두리뭉실하게 통용해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영어에서는 'Sympathy'와 'Empathy'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지요.
'Sympathy'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같이 느끼는 것(feeling)으로, 직역하면'동조', '동감(同感)'에 가까워요. 우리가 기질적으로 타고나거나 성격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이 'Sympathy'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다만 이 마음은 단순히 타인의 감정이나 처지에 대한 공감, 동정에 가까워요.
반면에 'Empathy'는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땠을까?'를 인지하고 이해하는, 더 깊은 차원의 공감입니다. 타인이 느끼는 것을 내가 느끼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여기서 더 나아가면 'Compassion'으로까지 나아가는데, 우리말로는 '연민'으로 번역되긴 하지만 원래의 뉘앙스는 '타인에게 공감하고 실제로 해결하기 위해 행동에 옮긴다'는 의지가 강하게 들어 있어요.
비록 기질적으로 'Sympathy'하는 게 쉽더라도, 의지적으로 'Empathy'나 'Compassion'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해요.
출처: Sympathy, Empathy and Compassion, the three significant emotional levels (linkedin.com)
저는 언어재활사로 일을 하면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 사회적 인지나 공감 능력이 취약한 아이들을 만날 때가 많아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 등 사회성의 발달을 저해하는 기저요인이 있다면 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기도 해요. 그래서 사회성이 단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회적 민감성이 낮은 딸을 키우는 사회적 민감성 높은 엄마로서 막막했던 적도 많았어요. 기관에서도 트러블을 일으킬 때가 꽤 있었고요. 민망하지만 내가 표현한 만큼 표현하질 않는 아이에게 인간적으로 섭섭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어요(서두에 언급한 빵 사건도 그렇고요).
그러나 만 5세를 앞둔 지금은, "엄마사랑해요~"라고 하면서 표현을 하기도 하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러브레터를 써서 주기도 해요. 저 또한 아이의 다름을 의지적으로 수용하고 공감하며 한 단계 성장했고요.
비록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그 기질 안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향은 분명히 존재해요. 내가 가진 고유함을 지키면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녹아드는 것, 꽤 어렵지만 정말 멋진 일임에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