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겸비 Jan 26. 2024

햇살 같은 아이, 화산 같은 아이

긍정 정서/부정 정서 기질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 같은 자극에도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 다 다릅니다. 늘 웃는 얼굴인 사람, 덤덤한 사람, 화를 강하게 내는 사람... 이렇게 감정이나 정서 등을 느끼고 드러내는 기질적 성향'정서성(emotionality)'이라고 합니다.


유전학 및 심리학 교수이자 <차일드 코드>의 저자인 다니엘 딕에 따르면, '정서성'은 '활동성(외향성)'과 더불어 여러 기질 중에서 가장 이른 신생아 시기부터 드러나는 특성입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었던 '의도적 조절' 기질이 만 1세부터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똑같은 바깥의 환경에도 낮은 정서성을 타고난 사람은 크게 민감하지 않으며 표현 강도도 약하지만, 정서성이 높은 사람은 감정이나 정서에 민감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강도도 셉니다(단, 정서적 민감성과 표현성을 분리해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최근 기질 연구에서는 '긍정적 정서를 느끼고 표현하는 성향'과 '부정적 정서를 느끼고 표현하는 성향'을 분리해서 보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 기질이 모두 높거나 낮을 수도, 어느 한 특성만 높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2023년에 개발된 STS 6요인 기질검사도 그 추세를 따르고 있어요. 그래서 글에서는 STS의 기질 차원 중 하나인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를 나누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



긍정 정서(Positive emotionality)다양한 자극(사람, 사물, 장소)과 경험에 대한 긍정적 정서 반응의 빈도와 강도로 기쁨, 만족감, 편안함, 즐거움 등의 긍정적 정서를 경험하고 표현하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왼쪽) 긍정 정서 낮음 - (오른쪽) 긍정 정서 높음


일상생활에서 긍정적 정서를 경험하거나 표현하는 경우가 적음 - 일상생활에서 긍정적 정서를 자주, 강하게 경험하거나 표현함

충분히 기분 좋을 만한 상황에서도 크게 소리를 내어 웃거나 하는 일이 드묾 -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기분 좋고 편안하게 보내며 작은 일에도 만족스러워하고 즐거워함

전반적인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고 단조로움(무표정하고 뚱해 보인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음) -  미소를 띠거나 웃고 있을 때가 많고, 아프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금세 좋은 기분으로 회복됨




반면에 부정 정서(Negative emotionailty)다양한 자극(사람, 사물, 장소)과 경험에 대한 부정적 정서 반응의 빈도와 강도로 짜증, 걱정, 두려움, 화, 슬픔, 좌절 등의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고 표현하는 정도를 의미해요. 



(왼쪽) 부정 정서 낮음 - (오른쪽) 부정 정서 높음


일상생활에서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거나 표현하는 경우가 적음 - 일상생활에서 자주, 강하게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며 표현함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스트레스 표현이 없고 무덤덤해 보임 - 강하게 스트레스를 표현하거나, 신체적 문제를 호소하기도 함

기분 전환이 비교적 빠름 - 한번 기분이 나빠지면 좋은 기분으로 회복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함




이전의 기질 연구에서는 정서성 중에서도 '부정적 정서성'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국의 학자 Burt는 부정적 정서성을 표출하는 방법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하였어요(1915, 1937; 최은실, 2022에서 재인용).


1. 활동적이고 공격적(aggressive)인 행동을 하는 경향
2. 억압적이거나 억제하는 감정을 갖는 경향


저는 부정 정서를 '화산'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1번 유형은 '폭발하며 분출하는 화산', 2번 유형은 '조용해 보이지만 마그마를 품은 화산'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2번 유형도 더 이상 억제하기 힘들 때는 뻥 터질 수 있답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느낌이에요



다른 기질 차원이 그러하듯이, '정서성' 기질도 '활동성(자극추구)', '조심성(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등의 기질과 상호작용하면서 다양한 성격 조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성인이라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 '정서성'을 사회적으로 잘 표출하는 방법을 학습합니다. 또한 시간이 흐르며 정서를 느끼는 민감함을 내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노하우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발달 과정에 있기 때문에 기질을 조절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 조절을 의지할 수 없는데, 그 존재가 바로 '주양육자'입니다.





정서성 기질과 육아와의 관계





대체로 아이의 긍정 정서가 높으면 양육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편이라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는 긍정 정서 기질 자체가 가진 특성이기도 하지만, 양육자가 아이의 높은 긍정 정서 기질에 만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기도 합니다(이전에 다뤘던 '기질의 조화적합성'과 연결되는 부분이에요).


부정 정서가 낮은 아이는 위험하거나 무서운 상황, 남에게 무언가를 뺏기는 상황 등 보통 아이라면 울 법한 상황에서도 별다른 정서 표현이 없어요. 그래서 양육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아이의 모습이 의연하게 느껴지고 육아가 편하다고 느끼는 요소가 됩니다(하지만 양육자가 아이의 힘듦이나 스트레스를 알아채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반면 부정 정서가 높은 아이는 떼를 부리거나 큰 소리로 우는 등 양육자가 다루기 힘든 방식으로 부정 정서를 표현합니다. 쉽게 달래지지도 않고요. 불편함을 느끼니 양육자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매달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까다로운 아이', '예민한 아이'라고 불리는 특성입니다. 그래서 양육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아이의 기질적 특성 중 하나가 됩니다.


특히 양육자 또한 부정 정서가 높은 경우, 부정 정서가 높은 아이를 다루기가 힘들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의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 이들에게는 특별히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지요. 세련되게 자신을 표현하는 성인들과 주로 소통하다가, 활화산처럼 터지는 아이와 함께 24시간을 함께 한다는 건, 정말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양육자의 잘못이 아니에요



사람 마음이 참 그래요. 아이가 자신의 말에 잘 따라주면 마치 내가 육아를 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반면에 아이의 기질이 강해서 사사건건 부딪히는 양육자는 좋게 말하면 겸손함, 안 좋게 말하면 자책감에 빠집니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걸까?'


부정 정서가 높은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에게 희망(?)이 되는 지점은, 그렇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에 비해 자연스레 아이의 기질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부분입니다.


아이가 가진 기질과 부적합한 양육이 만나면 안 좋은 의미로 역시너지 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를 이해해 보려 노력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자책할 이유도 없지요.





그래서 저는 부정 정서 기질이 강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를 만나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라고 이야기합니다. 타고난 기질이 아이의 잘못이 아니듯이, 부모의 잘못도 아닙니다. 육아에 지친 양육자가 힘듦을 이해받고 또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고 돌아가실 때, 전문가로서 가장 큰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부정 정서가 높은 아이와 사이좋게 지내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 좋은 방법은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감각민감성' 기질에 대해 다룬 뒤, '부정 정서'와 '감각민감성'이 높은 아이를 포함하여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와 협력하는 대화법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다니엘 딕(2022). <차일드 코드>. 알에이치코리아.

최은실 외(2022). <STS 6요인 기질검사 전문가 지침서>. 인싸이트










이전 10화 인내력이 강한 기질도 약점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