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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Jan 30. 2024

감각이 예민해서 괴롭고 외로운 아이

감각 민감성


어떤 여러분은 어떤 감각에 민감하신가요? 저는 청각이 많이 민감한 편입니다. 특히 갑자기 큰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몸이 굳어 버립니다. 아이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신경이 너무 쓰여 귀마개를 하고 나서야 잠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후각은 둔해서 아무 향이나 잘 씁니. 입덧을 하면서 '이런 냄새도 있구나' 알았었지요.


반면에 저희 아이는 후각이 예민해요. 새로운 바디제품의 향이나 생선 냄새가 이상하다며 실제로 구토를  적도 많습니다. 덕분에 저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한 번도 써보지 않았던) 무향 제품에 대한 지식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민하다', '민감하다'라고 할 때,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국어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예민하다 [형]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예: 개는 인간보다 후각이 발달하여 냄새에 예민하다.

2.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예: 그는 참말 요새 같이 감정이 예민해 가다가는 큰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출처 <<강경애, 인간 문제>>


민감하다 [형]

1.  자극에 빠르게 반응을 보이거나 쉽게 영향을 받는 데가 있다.

예: 물고기는 염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 두 단어의 정의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는데, '자극' '반응'입니다. 결국 예민하거나 민감하게 만드는 '자극'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자극'에 대한 반응의 기질적 개인차에 대해 설명을 드렸었습니다.



새로운 자극에 대한 반응의 개인차

 - 활동성(자극추구)

위험한 자극에 대한 반응의 개인차

 - 조심성(위험회피)

사회적 자극에 대한 반응의 개인차

 - 사회적 민감성

행동 유지 및 조절에 대한 반응의 개인차

 - 인내력(의도적 조절)



마지막으로 감각에 대한 반응의 개인차, 즉 '감각 민감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사실 이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왜냐하면 나중에도 이야기하겠지만, 기질 연구자 사이에도 이 '감각 민감성'에 대한 견해가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감각 민감성'을 정의하기가 어려운 이유



Thomas와 Chess는 영아의 기질을 연구하면서, 오감이 예민한 아이의 기질을 설명하기 위해 '감각 역치' 또는 '반응 역치'라는 용어를 사용했어요. '역치'는 '감각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의 자극의 세기'를 뜻합니다. '감각 역치'가 낮은 사람은 약한 자극에도 반응하기에, 그만큼 예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감각'이라고 할 때 대표적인 오감인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감각을 연구하면서 '전정 감각'(머리나 몸의 움직임을 느끼는 감각), '고유수용성 감각'(근육 또는 관절의 움직임을 느끼는 감각), '통각', '구강 감각' 등 다양한 감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네는 전정감각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활동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감각이 민감하다'라고 정의할 때, 모든 감각이 대체로 다 민감한 경우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않아요. 특정 감각은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민감하더라도, 어떤 감각에는 둔감할 수 있어요.


심지어 감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독특하다고 알려진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를 가진 아이들도 감각 프로파일이 다 달라서, 특정 감각에는 과민하게 반응하지만 다른 자극에는 놀라우리만큼 둔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감각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감각의 역치나 민감도 또한 다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감각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도 있고요.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기질 검사에서 '감각 민감성'을 포함시키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Strelau, 1983; 최은실, 2022에서 재인용). 이러한 제한점 때문에 '감각 민감성' 기질을 측정하지 않는 기질 검사도 있습니다.  





육아의 변수, 감각 민감성



하지만 감각 민감성은 양육자에게는 중요한 이슈입니다. 저도 기질분석과 부모상담을 할 때 별도의 질문지를 만들어 아이의 감각 민감성을 파악합니다. 왜냐하면 (조절 능력이 미숙한 영유아 시기에) 육아의 난이도를 결정짓는 변수이기 때문이에요.


기질적으로 감각이 민감한 아이는 조그만 자극에도 압도됩니다. 예를 들어 청각이 민감한 아기는 엄마가 움직이면서 내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반응합니다. 촉각이 예민한 아기는 옷 속에 들어간 실밥 때문에 울음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표현언어 발달이 느린 아이들 중에서는 구강 감각이 과민하거나 둔감한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감각 민감성이 높으면 그만큼 반응의 강도도 세집니다. 아직 말이 트이지 않았다면 울음과 떼로 표현할 뿐,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육자는 아이를 이해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양육자가 민감하면 민감한대로, 덜 민감하면 덜 민감한대로 나름의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양육자는 육아서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당혹스러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약 10~15%의 아기가 민감성을 타고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즉 85~90%의 아기에게 먹히는 육아법이, 우리 아이에게는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민감한 아이는 외롭다



우리가 어떤 불편함을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얘기했을 때 상대방이  "괜찮아, 별 거 아니야~"라고 하거나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라고 반응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른이라도 섭섭한 마음이 들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보통 우리는 아이의 민감함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니야." 또는 "괜찮아"라는 말로 반응할 때가 많아요. 비록 그 말이 아이를 달래주기 위한 좋은 의도였다고 해도, 아이를 수용하지 못할뿐더러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말도 아닙니다. 감각 민감성이 높은 아이는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까요. 가뜩이나 느껴지는 자극이 많아서 괴로운데, 양육자가 이를 이해해주지 못하면 아이는 더 큰 외로움을 느낍니다.





최치현 정신과의는 '예민한 사람'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 공통 특성을 가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자극을 더 많이 받는다는 점이고, 하나는 그래서 더 크게 반응한다는 점이지요.


그 외엔 부차적인 특징입니다. 지능, 감수성, 대인관계, 행복도 등은 예민한 사람의 기본 특성이 아닙니다. 게다가 예민함의 정도와 범위는 연속적이라서 이분법적으로 "이 아이는 예민해", "얘는 무던해"라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아이와의 상호작용에서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고 아이의 예민함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자극을 더 크게 받아서 더 크게 반응하는가?



이렇게 질문해야 하는 이유는, 아이를 '얘가 예민해서 그래.'라고 두리뭉실하게 '판단'하기보다는 아이가 불편해하는 요소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이가 느끼는 자극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차려서 명확하게 알려주는 입니다. 이 과정에서 양육자는 '탐정'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특정한 클레이를 싫어한다면 클레이의 촉감, 냄새, 색깔 등의 특성 어느 것에 민감한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유독 특정한 장소를 싫어한다면 그 장소가 시끄러워서인지(청각), 눈에 들어오는 자극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시각) 등을 살펴봐야 합니다.


아이가 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한결 수월해집니다. 직접 물어볼 수 있으니까요. "이 클레이 냄새가 이상해서 ㅇㅇ이가 싫은 것 같은데, 맞아?"라고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조절 능력은 천천히 발달합니다. 여기서 핵심키워드는 '천천히' '발달'입니다. 속도는 모두 다르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도달하게 되어 있는 게임이라는 뜻입니다. 아직 감당할 수 다면 피하고, 감당할 수 있다면 조금씩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혹시 아이가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심리발달적 문제(ASD, PTSD 등)로 감각 문제를 겪거나, 일상생활 전반에 지장을 줄 정도로 특정 자극에 민감하거나 둔감하다면 양육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작업치료사(감각통합치료사)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감각통합'이나 '감각처리'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감각이 민감한 사람들의 강점



<조용해도 민감해도 괜찮아>의 저자 일자 샌드는 민감한 기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높은 민감성(high sensitivity) , 즉 매우 민감한 기질은 흔히 '오감'이 유독 예민한 것과 관련이 있다. 말하자면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인상에 대단히 민감하다는 뜻이다. 유별난 민감함은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민감한 사람은 타인보다 소리, 냄새, 빛, 추위, 더위 등에 의해 더 쉽게 피로해진다. 하지만 좋은 향기, 아름다운 경치, 상냥한 어루만짐, 멋진 음악 등의 긍정적인 감각 또한 더 강하게 느낄 것이다. 이는 감동적이면서도 매우 즐거운 일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민감함' ‘관찰력’ 또는 '창의성'과 연결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이 느끼기에 섬세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비록 지금은 아이의 민감함을 수용하고 조절 방법을 알려주는 과정이 고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훗날 우리 아이의 세심함이 어디까지 발휘될지 기대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문헌


최은실(2022). <STS 6요인 기질검사 전문가 지침서>. 인싸이트.

일레인 아론(2022). <예민한 아이를 위한 부모수업>. 웅진지식하우스.

최치현(2021). <예민한 아이 잘 키우는 법>. 유노라이프.

일자 샌드(2019). <조용해도 민감해도 괜찮아>.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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