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상 Feb 28. 2020

사진만 딸랑 보내는 녀석

나도 사진만 딸랑 보내 보려고 합니다

친구 : 사진을 보냈습니다


제게는 가끔씩 사진만 딸랑 보내는 아는 동생이 있습니다.

안다고 하기엔 너무 정 없는 것 같고, 그렇지만 서로 친하다고 하기엔 세 번 얼굴 본 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그냥 아는 동생이라고 했지만, 분명한 건 저는 남자이고 녀석은 여자입니다.


그냥 사진만 보냅니다.


성의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모르겠는 그 카톡에 저는 대게는 반가운 마음에 답장을 성심껏 답장합니다.

그리고 그 답장은 주로 씹힙니다.    ...!

저도 답장한 것을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 날 또 사진만 딸랑 옵니다.

뭐하는 녀석일까요?


어쩌다 한 번 제가 전화하면 또 받습니다.

그럴 때면 일반적인 친구처럼 별것 없는 일상적인 대화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또 사진만 딸랑 보내는 이상한 녀석으로 돌아옵니다.


오늘도 침대에 앉아 책을 읽던 도중 생각이 났습니다.

'저번에 내가 답장한 거 또 씹혔나?'

하.. 씹혔었구나 ㅋㅋ 도대체 이 알 수 없는 대화는 왜 걸어오는 걸까요?








저는 카톡에 답장을 안 한 메시지가 항상 없도록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빨간색 알림이 떠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모든 대화는 시작과 맺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작인지 중간인지 끝인지 알 수 없는 사진 한 장만 보내오는 대화는 좀 어색합니다.


줄 때는 받을 생각을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합니다.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런 맥락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답장이라는 것도, 카톡이라는 것도, 결국 내가 누군가 한테 뭔가를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상념이나 어느 정도의 이상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이것 또한 고통이겠죠.

뭘 이런 거에 다 고통을 느끼냐고 하겠지만, 직접 겪어보면 처음에 두세 번은 웃기고 그냥 그런데, 갈수록 뭔가 이상하고 신경 쓰게 되고 그렇습니다.

뭔가를 기대했기 때문에 그것이 오지 않을 때 겪는 고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번은 제가 술을 잔뜩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외국에 여행을 갔다는 그 녀석이 또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찍어서 보내는 것은 연인 사이에서만 겪어본 경험이기 때문에, 솔직히 그럴 때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이스톡을 걸어 '좀 부담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동안 사진이 오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받은건가.. 신경이 쓰였다가 어느새 또다시 사진이 옵니다...ㅋ


그 녀석은 저한테 뭔가 받을걸 기대하고 보내는 게 아닌 걸까요?

그럼 어떤 의미로, 어떤 목적으로 보내는 것일까요?

대화는 주고받으려고 하는 건데, 그 녀석이 제게 보내는 건 대화가 아닌 걸까요?


그 사진의 의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지만 썩 재미있지도, 재미없지도 않습니다.

신기한 기분이면서도 금세 잊혀지는 기분입니다.








뭐 어쨌든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평범한 사진 한 장이면 된다는 것이 꽤 가성비가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가 글을 쓰게까지 만들다니.. 헉 생각보다 효율이 좋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사진 한 장 그냥 어이없게 보내보고 싶어 집니다.

판단은 그쪽 책임이니깐 알아서 할 거고 씹을 거면 씹고 복잡해질 거면 복잡해지라죠.

좀 짓궂은 건가요?


그 녀석의 큰 그림이 이것일 수도 있겠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철 냄새를 맡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