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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 Dec 27. 2020

퇴사 후 제주도로 떠났다

여행을 시작한 이유



회사에 들어가고,


.


일하고,


.


나오고.



올 해도 참 불안했다.



잘 이겨내지 못했다.

안간힘을 써서 극복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퇴사가 결정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떠나자" 였다.








무작정 짐을 싸고 9호선 지하철에 올랐다.


거침없이 예약했다. 낚시, 요가, 캠핑 등등

통장에서 돈 빠지는 문자가 계속 날아왔지만

슥슥 밀어버렸다.


공항에 도착해 가장 빠른 표를 사서 거침없이 떠나려 했지만, 사실 공항에서 바로 표를 사본적이 없었다.

1층과 2층을 오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헤매다 보니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결국 예약을 했는데 생각보다 비쌌다.

왜 이렇게 비싸지..


무작정 공항에 가서 "가장 빠른 표 주세요"를 하는 것이 그렇게 큰 쾌감을 가져다 주진 않았다.




그래도 '편도'라는건 좀 괜찮아 보였다.



비행기에 앉아서 까지도 '이래도 되나' 싶었다.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순간,

내 발목과 땅에 연결돼 있는 밧줄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새 비행기는 곧게 뻗은 활주로에 들어섰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바퀴가 땅에서 떨어질 때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동안 많은 것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려 했구나.

 지금이 성공의 순간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뜻밖의 보상이 주어지니

스스로 불안하게 느껴진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이 스치고 나니 

어느새 구름 위로 올라와 있었고,




기분은 이미 좋아지고 있었다.








(이 상황에 딱 맞는 노래를 발견했다)



선우정아 - '도망가자'


https://www.youtube.com/watch?v=GOS6C2jXTa8


(가사)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 말자


가보는 거야 달려도 볼까

어디로든 어떻게든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우리 / 괜찮을 거야 / 너와 함께라면 / 손잡고 / 돌아오자"








제주도에 가서 두 가지를 꼭 해보기로 했다.


첫째,

그동안 이불속에서 휴대폰 들여다보며 '아 이거 해보고 싶다..' 했던 것들 꼭 해보기


둘째,

한 해를 돌아보고, 여행하며 드는 생각을 오랜만에 글로 써보기



올해도 낯선 분야에 도전했고, 당연한 듯 깨지고 무너지면서

날 둘러싼 껍데기가 또 한 번 깨졌다.

작년 이맘때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때와는 좀 다른 기분이다.

저번의 실패보다는 기분이 덜 나쁘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더 유연해진 기분도 들고, 자신감도 생긴 것 같다.


무엇보다,

조금 늘어난 여유가 참 좋다.



(작년 이맘때 쓴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mschallenge








올해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인간관계다.




여러 가지 시선과 기대


.


의심의 눈빛


.


실망스러운 말투


.


체념한 듯한 표정




인간관계가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나도, 회사도,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많았던 듯하다.

그래서 난 작은 것 하나에도 정말 예민했다.

그만큼 속 상할 일이 많았고 자꾸만 위축됐다.


 첫 단추를 잘 끼우지 못한 것이 악순환의 시작이었을까.

만회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지만

이미 움츠러든 내 몸과 마음은 자꾸만 어디로 도망치려고 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간절하지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이 회사에 더 남기 위해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분명한 과제가 날 간절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런 현실이 더 싫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존경할 수 있고,

따르고 싶고, 배우고 싶고,

서로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근데 참..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욕심이 컸던 걸까..?


먹고사는 문제에서 이 무슨 나약한 소리인가 싶기도 하다.








나에게

두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1) 다른 사람과 함께 일 해야 한다.

2) 나랑 맞는 사람 하고만 일 할 수는 없다.


근데, 그래도,

가장 가까이에서 일할 사람이랑은 잘 맞았으면 좋겠다.

잘 맞는 사람, 잘 맞는 조직, 존경하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올해는 그런 부분에 많이 소홀했다.


Who, Where 보다는 What에 많이 집중했다.

사실 누구랑 일하냐, 어떤 조직에서 일하냐, 어떤 환경에서 일하냐도

What 만큼 정말 중요한 건데 그걸 알지 못했다.


내가 만나 본 어른들은 오히려 직장생활에 있어서

누굴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내가 이 부분을 간과한 이유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든 날 받아주는 곳이면 가고 싶었고, 안착하고 싶었고,

거절당할 것 같은 곳에는 가기 싫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인생의 체크리스트가 새로 생겼다.

무언가를 깊이 깨달았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참,

체크리스트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건지, 그걸 잘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있다.


올 한 해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를 새롭게 알게 되면서

그동안 나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음을 느꼈다.


내 장점, 단점 이런 것보다는

내 모양에 대해 선명하게 알고 싶다.


마치

곰국을 식혀서 그 위에 둥둥 뜨는 흰 덩어리들을 걷어내고 싶은 마음이다.

다 걷어내면 무엇이 남을까.


나를 식히고 걷어내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여행의 이유」, 김영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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