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진 (서울시 아동공동생활가정지원센터 자립지원전담요원)
어쩌면 이렇게 깔끔하고 안전한 집을 야무지게 찾아냈을까?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발품을 팔아 집 내외부와 동네 곳곳을 살펴봤을 은진님의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보호종료 아동의 퇴소 이후의 삶을 기록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연이 된 그는 다른 그 누구보다도 “나와 가족의 일상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집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구체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의 미션에 있어서도 자신과 같은 경험을 지닌, 부모가 없는 청년들에게 한 자리에서 언제나 반갑게 마주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는 그의 말에 나이는 어리지만 “(나보다 훨씬) 진짜 어른이구나!” 싶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삶과 일상 그리고 집의 모습이 너무나 서로 닮은 은진님과 오래 함께하고 싶어지는 “온기”가 가슴속 가득 차오름을 느꼈습니다.
아동보육시설 보호종료 후 자립한 자취 7년 차 청년으로서 서울시 아동공동생활가정 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보육원에서 나올 막내 동생을 맞이하기 위해서 따뜻하고 편안한 집을 만들어 가고 있기도 합니다.
#자립 #온기 #간소한 삶 #지인과 이웃 #홍제천 & 불광천
“나에게 집이란 '무엇인가를 시작해 볼 수 있는 주춧돌'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많은 집을 옮겨 다니다 보니 항상 마음이 불안정하고 내가 지금 당장 눈앞의 현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고민이 컸었죠. 그런데 내가 안정되게 살 수 있는 집과 꾸밀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서 미래에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고 어떠한 꿈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인터뷰 1: 일의 경험
일의 시작과 여정
대학 시절 홀 서빙 아르바이트, 월드비전 길거리 모금 그리고 부천 희망재단 사업단에서 활동을 해봤어요. 겨울방학 때 지하상가에서 시간당 4,800원을 받고 액세서리를 팔기도 했는데요, 물건 사입, 디스플레이, 판매 혼자서 다 했었어요. 그 후 보호종료 아동을 돕는 사회적 기업 소 이프에서 자립과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허들링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운영했어요. “보호종료”라는 상황이 오픈된 상황에서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참 편했어요. 만 18세 이상의 친구들과 한 달에 한번 토요일에 만나서 2시간은 프로그램, 2시간은 식사하고 담소를 나눴는데요, 프로그램은 주로 주거, 경제, 요리, 건강관리, 캠프, 연말 파티, 일대일 선배 매칭에 대한 것이었어요.
지금의 일
제가 자라온 배경 때문인지 항상 사회복지사가 되어 누군가를 돕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게 되었고요. 특히 보육원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대학 3학년 때부터 이들을 위한 안정된 주거를 지원하는 것에 미션을 갖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준비해서 2020년 6월에 서울시 아동공동생활가정 지원센터에 입사하게 되었어요.
사회복지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자립”인데, 보호종료 대상자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측면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자립지원 전담요원으로서 서울시 그룹홈을 퇴소한 청년을 대상으로 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사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한 기대
이들이 건강하게 자립을 할 수 있는 사회를 꾸준히 만들어 가고자 해요. 보호종료아동과 함께하면서 늘 힘이 되어줄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아동 및 사회복지 관련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기도 해요. 좀 더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사회복지사로서 활동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자립을 지원하는 일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 형성이 기반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 자리에서 늘 옆에 있어줄 거예요. 부모님과 형제는 없더라도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오랫동안 찾아올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내가 성장한 경험과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나누고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인터뷰 2: 라이프스타일
의/식/주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집은 저에게 너무 중요해요. 집에서 미니멀한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물건이 적은 간소한 상태를 유지해야 해요. 물건을 줄인다는 것은 정말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들만 함께 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물건을 함부로 사지 않아요.
누구와 주로 시간을 보내는지
주로 남자 친구와 시간을 많이 보내거나 혼자 있어요. 남자 친구랑 만날 때도 각자 혼자 놀 듯 지내요. 예를 들면 같이 서점에 가더라도 저 따로 남자 친구 따로 원하는 책을 보듯이요. 함께 있지만 개인의 자리를 존중해주는 것이 좋아요.
남자 친구는 같은 학교 선배이면서 심지어는 교회도 같이 다녀요. 제가 살고 있는 집도 남자 친구의 집에서 4분 거리에 있어요. 자주 만나서 불광천, 홍제천 등을 산책하고 한 주간 있었던 일과 고민을 서로 얘기해요. 솔직히 사귀고 나서 거의 1년 동안은 남자 친구가 부모님과 지내는 것을 가까이 보면서 자꾸 가족이 없는 나의 상황이 의식되고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일반 가정에 대한 경험이 저에게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오래 함께 있어서인지 편안하고 오히려 든든해졌어요.
참여하는 모임
소 이프의 허들링 커뮤니티에서 일한 경험과 연계되어 LBTO (Love Beyond the Orphanage)라는 모임을 갖고 있어요. 보육원을 퇴소한 청년들이 명절 때마다 갈 곳이 없음을 착안하여 설날, 추석 때 함께 모이는 활동이에요. 미국에서 후원을 받고 있는데 제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또한 서울시 청년 사회복지사들과 함께하는 공부 모임에도 나가고 있고요.
타인과 관계 맺기 혹은 나에게 몰입하기
직업이 사회복지사이고 돌봐야 하는 대상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타인과 관계 맺기”에 비중이 매우 커요. 주로 그룹홈 퇴소 청년들을 만나고 있는데,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된 친구들이 또 다른 지인들을 한 명씩 소개해 주고 있어요. 사실 저도 처음 만나면 어색하고 어려워요.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자주 연락하고 안부를 물으면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서 편안한 사이가 되어야지 그다음에 비로소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여가와 취미
책을 좋아해요. 집에서 여유만 생기면 읽곤 해요. 좋아하는 서점들도 많아요. 홍대 리브로, 중고서점 YES24에 가면 책을 읽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충전돼요. 조용한 카페에서 책 보고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인상 깊은 책 혹은 영상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게 되었어요. 그 책에 등장하는 한 여자는 어릴 적부터 조부모, 부모의 장례를 다 치르면서 치열하게 성장하게 돼요. 그런 그녀가 “인생은 비스킷 깡통 같다. 내가 지금 맛없는 것을 많이 먹으면 나중에는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을 수 있을 거다. 지금 어려움을 많이 겪으면 언젠가 나중에는 분명히 좋은 일이 많을 거야.”라고 해요. 이 구절이 나에게 하는 말 같이 느껴져서 기억에 남아요.
소비의 원칙, 언젠가 구매하고 싶은 것
쓸모없는 것은 되도록이면 안 사려고 하고 가격이 비싸더라도 오래 간직하고 아낄 수 있으면 사곤 해요. 가끔 첫눈에 정말 마음에 들고 반하게 되는 물건들이 있어요. 그중 하나가 무인양품의 블루투스 스피커인데 일 년을 고민하다가 드디어 샀어요. 저에게는 무엇보다도 삶의 질을 높여주는 소중한 물건이에요. 또한 대부분의 경우 물건에 딱히 욕심이 없는데 그래도 꼭 갖고 싶은 것은 “집”이에요. (웃음)
그리고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요. 마다가스카르. 꿈에서 어떤 나무를 봤는데, 뒤집혀 있어 보여서 무서웠어요. 어느 날 TV를 통해 그게 바오바브나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언젠가 꼭 마다가스카르에 가서 바오밥나무를 한 번 직접 보고 싶어요.
주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보통은 걸어 다니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주로 이용해요. 홍대에서 밥을 먹으면 북가좌동 집까지 한 시간 삼십 분쯤 걸리는데 천천히 걸어와요. 그 정도는 보통 걸어 다니고 가끔은 두세 시간 걷기도 해요.
가장 관심을 가지는 사회 문제
“보호종료 아동”이 역시 저에게는 가장 큰 사회문제예요. 그중에서도 “보호종료 5년 이내”라는 법령의 기준이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에요. 보호 종료 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시설을 떠나야 해요. 시설을 떠나지 않고 계속 거주하는 것을 “보호연장 아동”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연장이 되려면 보통 직업훈련을 받고 있거나 대학생이어야 하고, 그게 아니면 지자체에서 인정할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대부분의 시설에서는 보호 연장에 대한 고지를 아이들에게 하지 않아요.
보호연장이 안 되어 만 18세에 보호종료 아동이 되면 그때부터 “보호종료 5년 이내”라는 조건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LH 주거지원 등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요. 벅찬 생활비를 이겨내며 숨 가쁘게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그야말로 바로 “자립”에 직면하죠. 하지만 보호연장 아동이 된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요. 즉,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보호종료가 된다면 그때부터 “보호종료 5년 이내” 조건이 적용되기 때문이지요.
저는 보호 종료 시점에 맞추어 조건을 적용하기보다 현실적으로 모두 동일하게 나이에 맞춰서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 18세뿐만이 아니라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도 스스로 완전히 홀로서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