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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Feb 16. 2020

'술 달력' 2개월 차 진행 현황

이렇게 하면 적게 마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스무 살이 되면 술을 마셔 봐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되던 1월 처음 술을 마셨다. 그때 마셨던 주종이 뭐였더라. 소주였나? 맥주였나. 아니면 막걸리였던가.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저런 주종을 마셨다. 하지만 술이 맛있었다기보단 함께 마시는 친구들과 대화가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덧 사회에 나와보니 내가 마시고 싶다고 마실 수 있는 게 아니고, 안 마시고 싶다고 해서 안 마실 수 있는 게 아닌 게 '술'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도 오늘같이 눈이 내리는 날에는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술을 마시고 싶으니까. 2020년 건강한 음주습관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을 공유해본다.


1. 술 달력을 쓰게 된 계기


     작년 12월, 미루고 미루던 건강검진을 했다. 입사 후 처음으로 하게 된 건강검진인 터라 수면내시경까지 예약해서 몹시 겁을 먹었었다. 겨우 예약한 병원에는 나처럼 올해 건강검진 막차를 타신 분들이 많았고, 나는 문진표라는 것을 작성하게 되었다.


     주어진 문항에 하나둘 씩 답변하다가 음주 습관에서 숨이 턱 막혔다. 이거.. 도대체 어디까지 솔직하게 적어야 하는 거지? 마시는 술의 주종, 주량. 몇 잔을 마시는지 몇 병을 마시는지 하다못해 몇 cc 혹은 ml을 마시는지  세가면서 마시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아니지 아니지, 내가 언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술꾼이 되었지?


     대학교 때만 해도 소주의 쓴맛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나였는데, 어느덧 술자리가 익숙해져 버린 내 몸뚱아리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아, 건강검진 망했다' 그렇게 여기저기 이끌려 다니며 건강검진을 받은 후 싹 잊고 있었다. 건강검진 결과지가 도착하기 전까지.


     12월은 송년회로, 1월은 신년회로 온갖 것을 핑계 삼아 못 보던 얼굴들을 보며 술자리 겸 약속들이 많았었다. 정신없이 취해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숙취에 해장거리를 찾다가 집에 도착해 있는 건강검진 결과표의 코멘트가 나를 반성하게 했다. '절주하셔야 합니다' OMG


2. 술 달력을 쓰는 방법


     아, 이렇게 살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올해는 좀 덜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1월이니까 금년도 계획을 세우기에 늦지 않았으니까. 피할 수 없는 술자리를 제외하고는 내가 만드는 술자리는 좀 줄여보자, 라는 생각으로 나를 자극할 수 있는 시각적인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휴대폰 앱은 역시 자극적이지 않았다. 손으로 필기하던 세대라, 역시 손으로 직접 적는 방식이 필요했다. 얼마전 자주 가던 카페에서 새로 받은 낱장 달력이 생각났다. 그래, 달력의 새로운 활용처를 만들어주자!


하나. 술을 마신 날짜에 동그라미를 친다. 물론 아주 눈에 띄게 형광펜으로 칠해야만 한다. 그래야 자극을 받아서 덜 마실 테니까.

둘. 혹시라도 필름이 나간 날이면 꼭 표시를 해둬야 한다. 정말 반성할 일이기 때문. 해마 조심 또 조심.

셋. 그리고 뒷장에는 해당 일자에 그 날짜에 왜 마셨는지, 누구랑 마셨는지 간략히 적는다. 예를 들어 부서 회식이었다던가, 동아리 회식이었다던가 등등. 이렇게만 적어놔도 내 카드와 핸드폰 사진첩에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해도 오케이.


3.  술달력을 쓰면서 느끼는 점


     확실히 달력에 마시는 날짜를 표시하다 보니, 시각적으로 내가 얼마나 자주 마시고 있는지 깨닫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굳이 술자리를 추가로 만들려 하지 않는 좋은 습관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주말에 술 약속이나 술을 마시는 일정을 쉽게 잡았을 텐데, 내가 주체적으로 술을 마시는 일정을 조절하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향후에 있을 술 약속이 예상되니까 주 1회 정도로 조절하는 편. 그리고 '취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조금 더 강하게 하게 되었달까.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


4. 술 달력의 향후 보완 방향


     현재는 달력 뒷면에 술을 마신 날짜와 함께 마신 사람 혹은 모임 명만 적고 있다. 그런데 조금 더 기록을 남겨 보기 위해 추가적인 기록을 적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공간이 충분하진 않지만 그날 마신 주종이라던가, 브랜드, 혹은 안주, 갔던 가게들을 적어보면 어떨까. 말 그대로 술 달력으로서 나의 한해 술 생활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기도록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적어둔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얼마나 마셨는지 체크하기는 힘들겠지만 (물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적당히 즐길 정도로만 마실래….) 기록을 남겨둠으로써 단순히 '취해있었던 날들' 이 아니라 '즐겁게 사람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으로 기억, 기록된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2020 건강한 음주습관 형성을 위하여!




술을 좋아한다면 혹은 술을 피할 수 없다면

추천합니다, 술 달력 (이미 주위에 영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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