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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May 31. 2020

생일날 떠오르는 사람

페이스북의 N년전 오늘이 들려준 그녀의 목소리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접속했다.

타임라인 상단에 동영상이 올라왔다.

8년 전 오늘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집 근처 공원에서 동아리 사람들이

생일파티를 해주는 영상이었다.

동영상속의 나는, 당시 내가 좋아하던 블라우스를

입고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케이크를 안고 있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고 (훨씬 이었나?) 제법 앳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생글생글 잘도 웃는 초여름밤 공원의 나.


'동영상인가요?' 라며 멋쩍게 웃는 내 질문에

영상을 찍어주던 동아리 부회장 언니는

'네, 그렇습니다'라며 그녀답게 화통하게 웃었다.


아마도 내가 가진 유일한 언니의 목소리.


당시 부회장이었던 언니는,

내가 꿈꾸던 부회장의 모습이었고,

언니는 막내 기수인 말괄량이 우리들을

넓은 마음으로 그렇게 품어주었다.

내가 투정을 부리면 부리는대로,

화를 내면 같이 화를 내주고

허허실실 그렇게, 아마 그녀는 그녀대로

속이 문드러졌겠지만 내가 보는 그녀는

엄마, 그래 엄마 같았다.


이 동아리에 꼭 필요한 사람.

막내 기수였던 나에겐 꼭 그렇게 보였던 사람이었다.


나름 공원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살던 사이어서 가끔씩

연락이 이어지곤 했다. 언니가 동아리를 졸업한 이후

내가 언니의 자리에 가게 되고, 그리고 우리가 모두 졸업해 OB가 되고 나서도 아주 가끔 우리는 명절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새해 인사를 나누며 그렇게 나이가 들었다.


그녀가 취업준비를 하고, 나도 취업준비를 하고,

서로가 해외에 나가며 모든 20대가 그렇듯

각자의 삶의 속도와 방법과 길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며

그렇게 우리는 적당한 온도로 식어갔다.


나는 그때 모든 사람들로부터 숨었으니까.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우연이었다. 스터디를 마치고였나,

우연히 강남이었는지 신천이었는지 창가를 보며 베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 한 컵을 먹던 중 지나가던 그녀를 발견했다. 나는 너무나 반가워서 친구에게 '잠시만'이라고 말한 뒤 가게를 뛰쳐나가 그녀를 불렀다. 그렇게 껴안고 '조만간 봐요'라고 말한 뒤 우리는 조만간 만나지 못했다. 또다시 서로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으니까.


그렇게 나는 입사를 하고 건너 건너 언니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니, 중간에 연락을 했었던가? 그래 한두 번쯤은 연락을 주고받았던 것 같다. 나도 살던 동네를 떠나오고 나니, 더욱 얼굴 보기가 힘들어져서 그렇지.


그러던 작년, 갑작스럽게 언니의 부고를 접했다.

주말이었다.

토요일 저녁 거실에서 뒹굴거리던 나는

다음날 아침 발인이라는 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렇게 언니를 보냈다.


추운 날씨였다.

한 번이라도 더 연락할걸, 많은 후회를 했다.

그리고 지금도 언니가 생각날 때마다 한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서른 전에 지인을 보내는 일이 생길 줄 몰랐었다.

그리고 점점 죽음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문득 올해 생일, 페이스북이 보여준 영상을 보고

언니가 많이 떠올랐다. 그뿐이다.  





오랜만에 동영상을 재생했다.

언니의 목소리는 아직도 동영상 속에서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다.

나와 함께 찍은 사진 속 언니도 선명하게 웃고 있다.

그녀는 아직 존재한다, 여전히,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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