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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May 25. 2020

카네이션과 원피스

내년에 뭐할지 걱정하는 기획 쟁이 딸


  매년 돌아오는 기념일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매년 고민했던 기념일은 특히 어버이날. 아주 속물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내 생일이 있는 달에 어버이날이 함께 있다 보니 부모님의 생신 달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내가 먹은 나이만큼 어버이 날을 맞이했고 그만큼의 선물 고민을 했다. 유치원 시절에는 꼬물꼬물 색종이를 오리고 붙여 만든 카네이션을 난생처음 만들었고 부모님이 굉장히 기뻐하셨던 기억이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카네이션은 때마다 생화가 되었다가 화분이 되었다가 조화가 되기도 하고 브로치가 되기도 하였다. 최근 몇 년은 트렌드를 반영하여 꽃이 아닌 케이크나 뽑으면 휴지 대신 돈이 나오는 티슈 곽, 지폐가 말려있는 박스 등으로 변화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올해,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할머니 칠순잔치 겸 여행도 미뤄지고 가족 간의 모임도 확 줄어든 요즘, 이벤트를 좋아하는 나는 화훼농가 돕기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익숙한 꽃다발 대신 생화를 보내서 직접 꽃꽂이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이를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스프레이 카네이션을 찾아 두 단을 배송시켰다.


  막상 배송시켰을 때는 내가 예상한 스펙터클한 반응은 없었는데, 물을 주면 피어나는 꽃몽우리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활짝 피는 꽃처럼 부모님의 반응은 가히 역대급이었다. 직접 꽃을 꽂으시고, 그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셨다. 그리고 꽃이 활짝 피었다며 또 보내주셨고 마지막으론 당신의 얼굴과 함께..! 마지막 사진을 받는 순간 나는 동생에게 카톡을 했다.


내가 어마어마한 효도를 했나 봐 동생아




  그리고 엄마에겐 원피스를 따로 드렸다. 엄마가 원피스를 입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좋아하실까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다. 역시 우리 엄마도 예쁜 옷을 좋아하고 꾸미는 걸 좋아하는, 엄마이기 전에 사람이었다. 내 눈앞에서 엄마가 원피스를 입고 신나 하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내가 더 신이 났다.


  ‘입을 일이 없어서’, 라는 말을 하는 엄마를 보며 내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친구들과 맛있는 곳 예쁜 곳 좋은 곳을 많이 찾아다니는데 나는 엄마랑 왜 이렇게 데이트를 안 했을까. 그리고 이런 감정들과 동시에 세상 모든 죄를 뒤집어쓴 것만 같은 기분이 찾아왔다.


  옷을 한번 입어보더니 얼른 찍어서 동생에게 보내자고 들뜨는 엄마. 몇 번이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치마를 팔랑팔랑. 소녀 같은 우리 엄마의 모습이 낯설지만 참 좋았다. 그렇게 한밤중의 패션쇼를 끝내고 다시 잠옷으로 환복 한 후 엄마는 말했다.


   옷을 입으니까,  좋은 곳에 가야만   같아. 당장 외출해야  것만 같아.”라고. 진짜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여주고 싶은 마음. 내가 본 넓은 세상을 엄마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너는 모르지 동생아,

누난  그런 죄책감을 안고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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